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자라는 곳, 천안 광덕사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숨쉬고 있는 곳 ~
천안 광덕사(廣德寺)'

천안  


* 이글루스 블로그는 문장 배열이 엉망으로 나와 읽기가 다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아래 다음블로그 글을 참조해 주세요.
http://blog.daum.net/snowlove78/13756837


계절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5월의 마지막 날, 아산에 사는 어여쁜 후배 여인네와 천안의 명
찰(名刹) 광덕사를 찾았다.이곳은 광덕산 북동쪽 자락에 안긴 오랜 절로 우리나라 호도의 주
산지(主産地)인 광덕면 서남쪽에 자리해 있다.천안의 명물인 호도의 고향답게 광덕면은 그야
말로 호도나무가 천지를 가득 메운다.

천안 제일의 고찰로 손꼽히는 광덕사는 조계종 소속으로 공주에 있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
(末寺)이다. 신라 진덕여왕 5년(眞德女王,652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 천안 지역은 엄연한 백제의 영토였다.

600년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 무왕(武王)이 백제 30대 제왕으로 등극하면서 백제와 신라는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무왕은 50년 가까이 신라에게 망신 당한 자존심과 영토를 회복하
여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자연히 처가댁
(그의 부인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
이다)인 신라와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1년이 멀다하고 두 나라는 치열하게 맞짱을 떴다.오
죽하면 바다건너 당나라까지 혀를 내두르겠는가? 상황이 이러한데 신라 불교의 1인자 자장율
사가 어찌 적국의 땅에 절을 세우겠는가? 아무리 고승(高僧)이라 할지라도 적국의 승려가 자
기 땅에 절을 세우는 것에 대해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1680년 안명로
()가 쓴 '사
적기(事蹟記)'에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다.

신라 흥덕왕 때는
진산대사(珍山大師)가 석가의 치아 1매와 사리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
嶺), 불좌(佛座) 1병을 봉안하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하는데 안명로의 언급대로 실제 창건 시
기가 이때일 듯 싶다.

그후 600년에 세월이 흘러, 1464년 온양온천으로 놀러간 세조(世祖)는 광덕사에 부처의 치아
와 사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환궁하는 길에 이곳을 잠시 들렸다.세조는 광덕사 승려의 부역
(負役)을 면해주고 절에 위전(位田)을 하사하는 교지(敎旨)를 내렸는데, 그것이 바로 광덕사
소장면역사패교지
(廣德寺所藏免役賜牌敎旨, 보물 1246호)이다.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8방
(), 89개 암자, 9개의 금당(),80칸의 만장각
(), 3층의 천불전(殿)을 세워,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가장 큰 절로 성장하게 된다.
허나 임진왜란으로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 간신히 대웅전과 천불전 등을 다시 지었으나, 19세
기 이후 문닫기 직전에 이른 것을 1981년 김동진(金同珍) 주지승이 크게 불사를 일으켜 비록
옛 명성만은 못하지만 천안 제일의 사찰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과 보화루, 적선당, 명부전, 산신각 등 7~8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보물 1246호),
노사나불괘불탱(蘆舍那佛掛佛幀, 보물
1261호)
등의 국가지정 보물 2점과 천연기념물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400년 먹은 호도
나무가 있고, 대웅전과 부도, 석사자 등 지방문화재 6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 보물 390
호인 고려사경(高麗寫經) 6권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울 조계사(曹溪寺) 불교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산사(山寺)의 그윽한 향기와 정취, 정적(靜寂)이 가득 깃들여져 있으며, 호도의 향기까지 듬
뿍 가미된 광덕사 경내를 하나씩 둘러보도록 하자.


※ 천안 광덕사 찾아가기 (2009년 7월 기준 / 서울 기준)
* 서울(청량리, 서울역, 용산)에서 1호선 천안,신창행 전철이 거의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용산역에서 급행전철이 1~2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서울역(지상역)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한
  해 급행전철이 운행된다
* 서울역(경부선 열차)과 용산(호남, 전라, 장항선 열차),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가 1시간에 4~5회꼴로 떠난다.
* 부산, 동대구, 대전, 광주, 목포, 마산, 포항, 전주, 군산에서 천안행 열차가 있다.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 남부터미널에서 천안행 고속/직행버스가 자주 떠난다.
* 대전(유성,동대전), 광주, 대구(동대구), 성남, 수원, 청주, 전주, 마산, 구미에서 천안행
  고속/직행버스가 운행된다.
*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에서 천안시내버스 600, 601번이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50분 정
  도 걸린다. 1일 29회 운행(600번 25회, 601번 4회)
* 승용차로 가는 경우
경부고속도로 → 천안나들목 → 천안시내(천안대로 경유) → 남부대로 → 광덕방면 629번
   지방도 → 풍세 → 광덕사

* 광덕사 종점에서 계곡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광덕사가 나온다.

★ 광덕사 관람 정보
* 입장료와 관람시간 제한은 없음
* 광덕사 버스 종점에 조그만 주차장이 있다.
* 광덕사에서 광덕산의 가마봉을 거쳐 강당골(외암리 부근)로 내려 갈 수 있다. (2시간 소요)
* 광덕사 천불전에서 10분 정도 산을 오르면 기생 부용(芙蓉)의 묘가 있다.
*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3점은 관람이 불가능하며, 노사나불괘불탱은 석가탄신일이나 기타
  불교 관련 행사일에 운이 좋으면 구경이 가능하다.
*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 041-563-7050 / 567-0050)


♠  오래된 호도나무 그늘에 아늑하게 터를 닦은
광덕사로 들어서며 ~

▲  호도전래사적비(胡桃傳來史蹟碑)

▲  시원스런 모습의 광덕사 일주문(一柱門)
문 뒤쪽에는 '호서제일선원(湖西第一禪院)' 현판이 걸려있다.

▲  광덕사를 알리는 표석 ~ 왼쪽 길로 가도 광덕사는 나온다.

▲  늦봄 한낮의 볕이 극락전 용마루에 머물러 있는
광덕사의 부속암자 안양암(安養庵)


광덕사 종점에서 광덕사로 길은 광덕산이 베푼 계곡을 옆에 끼고 있다. 졸졸졸♪ 노래를 부

르며 오로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에 속세의 근심걱정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듯
하다.나의 마음을 점유하고 있는 온갖 번뇌를 계곡에 띄워 흘러보내고 싶지만 찰가머리처럼
달라붙은 번뇌는 좀처럼 나를 놓아주려 하질 않는다.

길을 가다보면 '이뭣고'라 쓰인 표석이 나그네의 눈길을 모은다.그 뒤로 연꽃의 보금자리인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는데, 즐거운 향연을 펼칠 여름을 기다리며 연꽃은 오늘도 인내의 세
월을 견뎌낸다. 연꽃은 보통 6월에 아리따운 꽃망울을 선보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뭣고 연못을 지나면 절 입구에 으례 심어놓는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우측에는 '호도전
래사적비'가 세워져 이곳이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임을 말해준다.높다랗게 걸린 일주문 현판
에는 '
太華山光德寺(태화산광덕사)'라 쓰여있는데 태화산은 광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문이라고는 하나 여닫는 문이 아닌 뻥
뚫린 형태이다.
절을 찾은 중생들, 산을 찾은 등산객, 부자와 가난뱅이, 그 어느 누구도 가
리지 않고 반가히 맞이해 주는 부처의 마음이 담긴 문이라 하겠다.문 우측에는 광덕사의 연
혁과 가람도 등이 있는 안내문이 있으니 가볍게 읽어 보고 산문으로 들어서면 좋을 것이다.


문을 들어서면 근래에 세운 때깔이 좋은 비석들이 멀뚱히 서 있고 그 뒤로 무려 400살 먹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비석과 그 주변에 아낌없이 그늘을 드리워 준다. 높이는 20m에 이르며

천안시 지정 보호수
이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광덕사를 알리는 거대한 표석(標石)이 나온다.표석에는 좌측길로 가라고
화살표가 되어 있으나 실상은 우측길로 가도 광덕사는 나온다. 우측길로 가면 법등(法燈)의
역사가 짧은 안양암(安養庵)이 나온다. 광덕사의 부속 암자로 안양은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상징한다. 서방정토의 주인은 아미타불(阿彌陀佛)로 그가 봉안된 극락전(極樂殿)이 이 절의
법당이다. 티끌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깃들여져 있으며 하얀 비
단이 깔린 듯한 뜨락을 중심으로 전방좌우 건물들이 자리하여 빈틈이 없을 정도로 안정감이
배어나온다.


♠  광덕사 내부 (호도나무, 대웅전)

▲  광덕사의 명물, 호도나무 - 천연기념물 398호


안양암을 지나면 광덕사가 그 모습을 천천히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절로 들어서는 보화루 앞
에는 푸른 옷을 걸친 거대한 나무가 의연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으니 바로 광덕사의 상징이자 우
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인 광덕사 호도나무이다.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선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
로 분포하며, 4~5월에 꽃을 피우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나무의

높이는 18.2m에 이르
며, 60cm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가슴높이가 각각 2.62m, 2.5m이다.

나무의 유래에 따르면 고려가 잠시 몽고(원나라)의 그늘 아래 있던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9
월, 영밀공 유청신(英密公 柳淸臣)이 몽고에 갔다가 충렬왕(忠烈王)을 따라 귀국할 때 호도나무
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 뜨락에
심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확하진 않다. 다만 나무의 나이가 400살 정도 되었다고 하니 그가
심은 나무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 천안시 광덕면은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으로 이 나무가 우리나
라 최초의 호도나무라고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始栽地)로 여기고 있으며, 나무 그늘에는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柳淸臣 先生 胡桃 試植地)'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푸른내음이 가득 서린 호도나무의 위세 앞에 강렬한 햇빛도 고개를 숙였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
과 바람에 머릿속이 싹 정화된 듯 시원함이 솟아오른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호도과자를 전해준
유청신(나중에 역모에 가담하여 멀리 귀양갔다고 한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절 경내로 올라선
다.


▲  광덕사 적선당과 우측 해태상

▲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 보인 귀여운 자태의 좌측 해태상

▲  부처의 중생 구제를 향한 은은한 메세지가 담긴 범종각(梵鍾閣)


2층 누각의 보화루(寶華樓)를 지나면 광덕사 경내가 마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듯 펼쳐진다. 보
화루의 1층은 절과 속세를 이어주는 통로로 2층은 교육, 법회 공간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1층
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돌해태 2마리가 뻐드렁니를 자랑스레 드러내며 절을 찾은 중생들을 검문
한다. 그들은 화마(火魔)와 온갖 악의 기운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배치한 것으로 무서움보
다는 어루만지고 싶은 귀여운 자태를 지녔다. 절을 파괴하러 온 화마도 그들의 귀여움에 반해
그 본분을 잊은 채, 그냥 돌아갈 지도 모르겠다.

보화루 정면으로 놓인 길 끝에는 법당인 대웅전이 보화루와 3층석탑을 굽어보고 있고, 길 좌우
로 선방(禪房)으로 쓰이는 적선당(寂禪堂)과 육화당(六和堂)이 서로 마주보며 자리해 있다. 대
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조그만 돌사자 2개가 자리해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들도 해태처럼 절을 수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머리털은 구름무늬를 띄
고 있고, 입은 약간 벌려 이를 드러냈으나 사실성은 다소 떨어진다.

이 돌사자상은 팔자가 박복한지 여러 차례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간신히 찾아내어 제자리에 갖
다놓기가 무섭게 또 사라지고,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화유산 도난과 파
괴가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어 새삼스러울 것도 못되지만, 구석도 아니고 절 한복판에 덩그러
니 있는 무거운 돌덩어리까지 버젓히 도난의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제자리로
돌아와 주어 그저 다행일 따름이다. 이들 돌사자는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52호

돌사자의 가호를 받고 있는 대웅전(大雄殿)은 조선시대 건물로 1983년 해체복원할 때, 처음보다
크게 지어버려 본래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덩어리
가 촘촘히 박힌 다포(多包)양식이다.


▲  광덕사 대웅전 ~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46호

▲  대웅전 불단에 모셔진 석가여래 3존불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앉아 있으며,
그들 뒤로 1741년에 그려진 탱화가 든든히 자리해 있다.

◀  광덕사 3층석탑 -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120호

대웅전 앞 뜰에는 날렵한 몸매를 지닌 3층석탑이 서
있다. 이 탑은 2중에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
身)을 올린 것으로 1층 탑신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
를 새겨 놓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복발(
覆鉢) 등의 장식이 남아있으며, 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탑 좌측 명부전 앞에는 괘불(掛佛)
을 거는 석주(石柱)와 당간(幢竿)이 하늘을 찌를 기세
로 솟아 있다.


▲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염라대왕 등의 저승의 10왕을 모신 명부전(冥府殿)

▲  명부전과 대웅전은 단청(丹靑)이 곱게 입혀져 있다.
그 화려한 색채에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  광덕사 외곽 부분 (산신각, 천불전, 부도)

▲  광덕산이 베푼 옥계수로 늘 넘쳐나는 광덕사 약수터

▲  대웅전에서 천불전, 산신각으로 가는 길

▲  경내와 조금 떨어져 있는 산신각

▲  천불전으로 가는 다리 앞에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있다.
얼핏 보니 불상보다는 금강역사(金剛力士)나 천인상(天人像)같다.


광덕사는 크게 대웅전과 명부전 등이 있는 중심부와 천불전, 산신각 등의 외곽부로 나눌 수 있
다. 명부전 좌측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그것을 지나치면 천불전,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푸른 내음이 가득 깃들여진 그 길을 따라가면 산신각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는데, 그 계단의
끝에는 시원스레 처마를 들어올린 산신각(山神閣)이 자리해 있다.
큰 새가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날개를 높이 쳐든 인상의 팔작지붕을 지닌 이 건물은 산신각이라
고는 하지만 산신(山神) 외에 칠성신과 독성(獨聖, 나반존자) 등을 모시고 있어 거의 삼성각(三
聖閣)이나 다름없다.

산신각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직진하면 천불전으로 가는 긴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광덕산 계곡과 등산로 위에 걸어놓은 것으로 경내에서 천불전으로 가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그
다리에 끝에는 근래에 새로 지은 천불전(千佛殿)이 있다. 한때 광덕사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3층
규모로 무려 3천불을 모셨다고 한다. 허나 임진왜란 때 한줌의 재로 변했으며, 그후 1층으로 다
시 재건하였다. 1975년에 해체 복원하였으나 1999년 12월 불의의 화재로 조선 중기에 그려진 탱
화 3점과 더불어 다시금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2001년과 2002년에 왔을 때는 터만 덩그러니 있
어 그 허전함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는데, 새로운 천불전이 솟아나 그 빈터를 채워준다. 비록
고색(古色)의 내음과 천불전의 옛 영화로움은 화마(火魔)에 녹아 없어졌지만 말이다. 아직은 미
완의 상태라 단청이 입혀져 있지 않으며, 현판도 없다. 내부는 번데기에서 화려한 나비로 태어
날 그날을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나비처럼 한참 몸단장 중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건물 기둥, 문짝에 색동옷이 곱게 입혀지는 날 천불전의 영화로움은 다시
재현될 것이며, 움츠려든 광덕사의 사세도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다. 이 건물은

충남지방문화재
자료 247호
로 화재로 옛 모습을 잃었음에도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천불전 옆에는 승려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건물인 인광당(忍光堂)이 있고, 그 앞에는 옛 천불
전을 떠받들던 커다란 주춧돌 2개가 옛날을 그리워한다.


▲  2번이나 화재를 만나 전소된 아픔을 간직한 광덕사 천불전

▲  옛 천불전의 주춧돌

▲  승려의 생활공간인 인광당

▲  부여 정림사 5층석탑의 새로운 부활인가? 근래에 새로 심은 5층석탑


천불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산쪽으로 가면 최근에 새로 지은 하얀 피부의 맨들맨들한 5층석탑
이 나온다. 백제탑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 부여 정림사(定林寺) 5층석탑의 후예일까? 그를
쏙 빼어닮은 모습이 우리의 눈길을 단단히 잡아맨다. 660년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망한
이후, 고려시대까지 옛 백제 땅에는 정림사 석탑을 닮은 탑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은 백제를 그
리워한 백제인의 후예들이 세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직도 백제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일까? 광덕사에 21세기형 정림사 석탑이 탄생하였다. (천안 지역도 옛 백제 땅의 일부)

5층석탑 우측으로 산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승려의 묘탑(墓塔)인 부도
를 만날 수 있다. 부도는 모두 4기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지붕을 얹힌 부도 3기가 한 형
제마냥 나란히 서 있고, 뒤쪽 멀리로 석종형(石鐘形)부도 1기가 외롭게 서 있다. 이들은 모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광덕사의 찬란한 역사가 담긴 산증인들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의 주
인은 청상당

(淸霜堂), 적조당(寂照堂), 우암당(牛庵堂)으로 광덕사와 깊은 인연이 있던 승려다.
청상당은 17세기에 활약한 승려로 1671년 군산 은적사(隱寂寺)에서 입적하자 그 제자들이 사리
를 모셔와 1672년에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이들과 조금 떨어진 석종형 부도는 주인을 알 수 없어 무명부도(無名浮屠)라고 부른다. 이 탑은
가운데 받침돌 8면에 신장상(神將像)이 새겨져 있는데 그 수법이 우수하다. 이들 부도는 한 덩
어리로 묶어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85호이며, 이들로부터 산 쪽으로 200m 안쪽에 신라 흥덕왕 때
절을 크게 중창한 진산대사
(珍山大師)의 석종형 부도가 숨어 있는데, 우리는 그 탑의 존재를 알
지 못해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했다. 진산대사 부도는 별도로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53호
이다.

부도군 주변으로는 밤나무가 가득하다. 호도와 밤이 절정을 이루는 가을에 오면 여물어 땅으로
곤두박질 친 밤송이의 거대한 나라로 변해버린다.


▲  팔각원당형 부도 3형제

▲  팔각원당형 부도에서 멀리 떨어진 주인 모를 석종형부도


광덕사 부도를 끝으로 광덕사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진산대사 부도와 보물로 지정된 동산문
화재 3점을 못봐 아쉽기는 하지만, 인연이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다시 종점으로 내려오면서
일주문 부근에서 시내에서 사온 김밥과 간식거리로 허기진 배의 불만을 잠재운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모두 꿀맛인 것 같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어서 그런 것일까?
광덕산을 오를까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구실로 절과 산을 뒤로하며, 가고 싶지 않은 아비규환의
속세로 길을 재촉한다. 이렇게 하여 광덕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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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09년 7월 7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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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09/07/14 11:06 | 충남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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