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포천 백운산 백운계곡 (흥룡사)



' 포천(抱川) 백운계곡, 흥룡사 여름 나들이 '

▲  포천 백운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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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제국(帝國)이 한참 번영을 누리던 7월 한복판에 수도권 피서의 성지(聖地)로
격하게 찬양 받고 있는 포천(抱川) 백운계곡을 찾았다.
그날은 백운계곡 외에도 피서의 새로운 성지로 주목 받고 있는 비둘기낭폭포도 염두에 두
고 도봉동 집을 나섰다. 허나 비둘기낭폭포는 교통이 매우 좋지 않은데다가 포천시청에서
불과 5분이란 시간 차이로 그곳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그 다음 차는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되기에 그 폭포는 포기하고 백운계곡으로 길을 잡았다.
이제 피서철의 시작이고 그날은 평화로운 평일이라 사람도 별로 없으므로 혼자 가도 전혀
꿀릴 것은 없었다.

오전 11시에 집에서 포천시내버스 72-3번을 타고 의정부시와, 경기도2청사, 축석고개, 송
우리를 지나 포천시청에 두 발을 내린다. 여기서 달랑 5분 차이로 비둘기낭폭포(대회산리
)로 가는 버스를 놓쳐 바로 백운계곡으로 눈을 돌렸다. 하여 이동으로 가는 포천좌석버스
138-5번(도평리↔의정부역)을 잡아 타고 1시간을 정신 없이 내달려 이동에서 발을 내린다.
이동(二東)은 갈비와 막걸리로 유명한 포천 동북부 끝 동네로 수많은 명산과 계곡을 품고
있다. 그래서 수도권 피서의 성지이자 소고기, 술의 성지로 일찌감치 명성을 날리고 있으
며, 전방과도 가까워 군부대도 많이 포진해 있다. 

이동에서 백운동(백운계곡)까지는 7km 남짓의 가까운 거리이나 시내버스는 겨우 하루에 5
~6번 밖에 없고 시간도 전혀 맞지가 않는다. 그러니 천상 화천군 사창리로 넘어가는 직행
버스의 신세를 져야 된다.
이 직행버스(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는 40~6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운이 좋은지 딱 5~
6분 만에 그 반가운 모습을 비춘다. 그래서 그 버스를 잡아타고 10분 정도를 달려 백운동
에 발을 내린다. 이 노선은 이동 외에도 도평리 버스종점과 일동에서도 승차가 가능하다.


 

♠  백운계곡(白雲溪谷), 흥룡사 입문

▲  백운교에서 바라본 백운계곡 (광덕고개, 사창리 방향)

▲  백운교에서 바라본 백운계곡 (도평리 방향)

경기도(京畿道) 북부권(의정부, 동두천, 연천, 포천)과 동부권(남양주, 가평, 양평)에는 기라
성 같은 계곡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단연 으뜸이자 명성이 자자한 계곡은 아무래도 포천 백
운계곡이 아닐까 싶다.
이 계곡은 영평8경의 하나로 조선시대부터 썩 잘나갔던 명소였다. <선유담(仙遊潭)이 영평8경
의 일원임> 그 전통과 위엄은 여전히 녹슬지 않아 지금도 수도권의 이름난 계곡이자 피서의 성
지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것을 반영하듯 372번 지방도(포화로)와 나란히 흐르는 계곡
주변에는 식당과 숙박업소, 캠핑장이 즐비하며, 주말과 피서철에는 등산과 나들이, 피서 수요
가 급증해 여전히 2차선을 고수하고 있는 372번 지방도는 물론 인근 이동, 일동까지 차량들로
단단히 몸살을 앓는다.

백운계곡은
백운산 서쪽 자락에서 발원(發源)하여 흥룡사를 경유하는 계곡과 광덕고개 서남쪽
에서 발원하여 372번 지방도를 따라가는 물줄기('선유담계곡'이라고도 함)를 일컫는데, 이들은
백운교에서 하나가 되어 도평천(都坪川)이 되고, 수입리에서 수입천(水入川)과 합쳐져 영평천
(永平川)으로 간판을 바꾼 다음, 전곡 동쪽에서 한탄강(漢灘江)과 합쳐진다.

직행버스가 바퀴를 멈춘 백운동 정류장은 백운교에서 동쪽으로 약 230m 지점에 있는데, 여기서
찻길을 따라 백운교로 가는 것보다는 정류장 남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 가기를 권한다. 차량 왕
래가 빈번해 그들의 눈칫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약한 매연까지 무심히 떠넘기고 가
버리니 청정한 계곡과 삼삼한 숲으로 이루어진 이곳까지 와서 그런 굴욕을 당하기는 싫다.

백운교 남쪽에는 이동갈비집이 쭉 늘어서 있는데, 그 남쪽에 차량들이 바퀴를 뻗으며 자는 주
차장이 넓게 자리한다. 허나 피서철 직전이고 주중이라 빈 공간이 90%를 넘으며, 식당들도 사
람보다 빈 자리가 훨씬 많아 매우 한산하다. 다들 피서철 대목을 꿈꾸고 있을텐데, 날씨가 그
들의 마음을 몰라주고 비를 마구 퍼부으니 그들도 참 속이 탈 것이다.

백운계곡 주차장을 지나면 삼삼한 숲에 묻힌 오솔길이 나온다. 그 길을 접어들면 채 2분도 안
되어 흥룡사 표석이 있는 흥룡사입구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 왼쪽 계단길을 오르면 바로 흥
룡사 경내가 펼쳐진다. 이곳은 그 흔한 일주문(一柱門)도 아직 갖추지 못하였으나 계곡과 삼삼
한 숲이 속세의 기운을 털어버리기에 딱 그만이라 이것으로도 일주문의 대체 역할은 충분하다.


▲  흥룡사입구

▲  금색 피부를 지닌 포대화상(布袋和尙)과 깨알같은 불전함

흥룡사 경내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금빛 피부를 자랑하는 똥배 포대화상이 불전함을 들이밀며
돈을 요구한다. 어떻게 절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돈부터 요구하고 있는지 절에 대한 이미
지를 순식간에 부정적으로 몰아놓는다.
그런 포대화상을 지나치면 정면에 우람하게 생긴 대웅전이, 왼쪽에는 요사와 찻집이, 오른쪽에
는 샘터와 공양간이 자리해 있다. 그럼 여기서 잠시 흥룡사의 내력을 더듬어 보도록 하자.

※ 백운계곡을 옆에 낀 심산유곡의 절집, 세속화된 불교의 씁쓸한 흑역사를 보여주었던 현장,
   ~~ 백운산 흥룡사(白雲山 興龍寺)
부드러운 백운산 봉우리와 삼삼한 숲, 그리고 청결하고 수려한 경치의 백운계곡을 든든한 후광
(後光)으로 삼은 흥룡사는 백운산 자락에 둥지를 튼 조그만 산사(山寺)이다.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신라 말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여 내원사(內院寺)라 했다고 우
기고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창건 설화에 따르면 도선은 절 자리를 잡고자 나무로 3마리의 새
를 만들어 날려 보냈고 그중 하나가 앉은 자리가 마음에 들어 절을 세웠다는 것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절에서 지은 설화일 뿐이며, 조선 초기까지 적당한 기록과 유물이 전혀
없어 도선국사 창건설의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그나마 오래된 유물은 17세기 승탑이고, 몇줄
전해오는 조선 초기 기록도 딱히 신빙성은 떨어져 보이니 아마도 조선 초/중기에 조촐한 암자
나 수행처 수준으로 법등(法燈)을 연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고려 태조 때 비보사찰로 창건되
었다는 설도 있으나 역시나 물음표일 따름..)

조선 초에는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중창했다고 하며, 1407년에는 왕실의 복을 비는 88개 자복
사(資福寺)의 하나로 선정되었는데, 이때 잠시 천태종(天台宗)의 일원이 되었다고 전한다. 또
한 세조는 그의 어필족자(御筆簇子)를 하사했다고 하나 아쉽게도 그 족자는 어느 세월이 잡아
갔는지 전하지 않는다.
그나마 기록과 유물이 보다 확실해지는 시기는 조선 중기 이후이다. 1638년 무영
(無影)이 제자
시십(時什), 인해(印海) 등과 법당과 시왕전 등 14채, 500여 칸의 건물을 중건했다고 하며, 불
상을 개금(改金)하고 종을 만들어 창건 당시보다 절이 컸다고 전한다. 1639년에는 무영의 제자
지혜(智惠)가 100여 칸의 상선암(上禪庵)을 지었으며, 1648년에는 청암(淸巖)이 50여 칸의 보
문암(普門庵)을 지었고, 1786년에는 태천(泰天)이 절을 중건하고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로 갈
았다.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로 이름을 고쳤다가 얼마 안가서 흥룡사로 갈았
으며, 6.25때 절이 잿더미가 된 것을 1957년 지금의 위치에 관음전을 지어 절을 재건했다. 이
후 1982년에 백운당을, 1987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했으며, 1990년에 요사인 원각당을 새로 지었
다. 그리고 1993년에는 기존의 대웅전과 백운당을 싹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너른 크기의 대웅
전을 지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저 평범한 내력을 지녔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우려
하는 종교의 지나친 세속화, 그리고 종교 단체들의 지나친 재물 욕심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
적인 사건이 바로 이곳에서 터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자고로 승려란 부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의 뜻에 따라 자신을 불태우며 중생을 챙기고 깨달음을 향한 수행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거늘 그것을 역행하는 땡중과 절이 너무 많다.
때는 1987년, 절 주변이 백운계곡 관광지로 지정되자 흥룡사 주지는 크게 돈 욕심을 내며 종단
(宗團)의 승인 없이 멋대로 개발업자와 손을 잡고 그들에게 절 땅을 빌려주었다. 허나 개발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개발업자 또한 하나 같이 비리비리하여 개발 주체가 계속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절과 개발업자와의 손실과 갈등이 커지면서 2015년까지 무려 30여 건의 소송에 휘
말렸고, 개발 실패에 따른 손실이 무려 11억에 이르렀다.
욕심꾸러기 주지는 그 부채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법원은 절과 절 토지(약 20만 평)를 경매
에 넘기겠다고 통보를 했다. 그러자 주지는 울상이 되어 흥룡사를 관리하는 윗 사찰인 봉선사
(奉先寺)에 애걸을 했고, 봉선사는 절의 정상화를 위해 심사숙고 끝에 그 돈을 치뤄주고 절을
살렸다. (그 돈도 대부분 중생들이 내준 시주금임)
그런 흑역사를 겪은 흥룡사는 그렇게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 땡중들의 돈 욕심에 중생들의 피
땀어린 시주로 이룩된 절이 자칫 홀라당 날라갈 뻔한 것이다.

조촐한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각당, 요사, 공양간, 청산다원 등 6~7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은 포천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청암당승탑이 고작이다. 그외에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묘화당승탑이 있는데, 이들 승탑이 경내에서 그나마 가장 오래된 존재이
자 조선시대 유물로 그들 외에는 고색의 내음은 찾기 힘들다.

삼삼한 백운산 숲에 둘러싸여 청정한 기운이 가득하며, 백운계곡의 청아하고 낭랑한 계곡 소리
에 아무리 무서울 게 없다는 번뇌도 염통이 쫄깃해져 좌불안석이 된다. 첩첩한 산주름에 묻힌
깊은 산골의 절집으로 절 바로 밑에까지 식당과 숙박업소가 즐비하게 들어섰지만 그들 사이에
짧게나마 숲이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어 산사의 분위기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또한 길손들을
위해 찻집과 쉼터 등을 갖추고 있어 백운계곡 나들이나 백운산 등산 때 잠시 두 발을 쉬어가기
에 좋으며, 원각당 옆에는 불교용품과 전통차를 파는 찻집이 있어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도 누
릴 수 있다.

※ 포천 백운계곡, 흥룡사 찾아가기 (2016년 7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이동 경유 사창리행 직행버스(30~60분 간격, 1일 20여 회 운행)를 타고 백
  운동 하차 (흥룡사는 도보 6~7분 거리)
* 1호선 의정부역(4,5번 출구를 나와서 가능역 방면으로 도보 5분 거리에 정류장이 있음)과 의
  정부터미널에서 138-5, 138-7번 좌석버스를 타고 이동이나 도평리에서 하차, 백운동으로 들
  어가는 3번 시내버스(1일 5회)나 사창리행 직행버스로 환승
* 인천종합터미널, 안양(WK웨딩하우스 앞)에서 와수리행 직행버스(1일 8회)를 타고, 이동이나
  도평리에서 사창리행 직행버스나 3번 시내버스로 환승
* 승용차로 가는 경우 (경내까지 접근 가능)
① 서울 → 의정부(민락로) → 포천 방면 43번 국도 → 만세교에서 37번 국도로 우회전 → 일
   동교차로에서 이동 방면 47번 국도 → 도평교차로에서 우회전 → 도평3거리에서 좌회전 →
   흥룡사입구(백운교)에서 우회전 → 흥룡사, 백운계곡
② 서울(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 퇴계원나들목에서 이동 방면 43번 국도 → 서파 → 도평교
   차로에서 우회전 → 도평3거리에서 좌회전 → 흥룡사입구에서 우회전 → 흥룡사, 백운계곡
* 흥룡사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38 (포화로 236-73 ☎ 031-535-7363)
* 매년 겨울에 백운계곡에서 '백운계곡 동장군 축제'가 열린다. 보통 12월 말부터 2월 초까지
  열리며, 눈썰매와 전통 썰매, 얼음성 놀이동산, 전통 팽이, 눈사람 만들기, 모닥불체험, 눈
  조각 전시회, 얼음조각 전시회, 향토음식 체험관, 포천농특산물 판매 등의 행사가 있다.
  (축제 문의 ☎ 031-535-7242, 동장군축제 홈페이지는 ☞ 이곳을 쿨하게 클릭한다)
* 흥룡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흥룡사 찻집(청산다원)과 천막 쉼터


 

♠  흥룡사 둘러보기

▲  대웅전(大雄殿)과 5층석탑

이곳의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93년에 옛 대웅전과 백운당
을 부시고 만든 것이다. 바깥 벽에는 부처의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八相圖)와 십우도(十牛圖)
등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 불단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거느리며
아미타3존불을 이룬다. 그래서 건물도 아미타불의 본거지인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바라보고자
서쪽을 향하고 있다. (지형상의 이유도 있음)

▲  흥룡사 원각당(圓覺堂)
종무소와 요사(寮舍)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건물로 문수원(文殊院)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  석조지장3존상
대웅전 곁에는 지장보살입상(地藏菩薩立像)이
경내를 굽어본다. 그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
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나란히
자리하여 야외 지장전의 역할을 한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5층석탑과 뜨락

대웅전 뜨락에 심어진 5층석탑은 근래에 조성되어 피부가 매우 하얗고 부드럽다. 기단부(基壇
部)에는 8명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한 자리씩 차지해 앉아 있고 1층 탑신(塔身)에는 사방불
(四方佛)을 새겨 절과 탑의 영원한 안전을 염원한다. 그렇게 철통 같이 지켰건만 내부의 적으
로 인해 절이 경매에 넘어갈
했으니 그들의 가호도 다 부질 없었던 모양이다.


▲  대웅전 아미타3존불과 조그만 원불(願佛)의 금빛 물결
아미타3존불은 1999년에 조성된 것으로 그 좌우에는 원불로 조성된 조그만 원불이
금빛 대물결을 이룬다. (아마도 3천불은 될 듯..? 저게 도대체 다 얼마야..?)

▲  흥룡사 샘터<수각(水閣)>
백운산이 베푼 옥계수로 그의 넉넉한
마음을 보여주듯 물이 늘 넘친다.

▲  가까이서 본 샘터(수각)의 위엄
석조 위에 지붕을 씌우고 조촐하게
수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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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 끝에 자리한 삼성각(三聖閣)

경내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삼성각이 새롭게 터를 다졌다. 이 건물은 최근에 지어진 것
으로 단청(丹靑)을 칠하지 않아 조금 오래되어 보일 뿐, 대웅전과 원각당에 비해 한참 후배이
다. 내부에는 대웅전에 얹혀살던 산신탱을 비롯하여 독성탱과 칠성탱을 봉안되어 있어 삼성각
이란 이름값을
다.

▲  산신(山神) 가족의 단란함이 묻어난 산신탱

▲  칠성(七星)이 모두 모인 칠성탱

  동자 2명을 거느리며 여유롭게 앉아있는
독성(獨聖, 나반존자) 가족을 담은 독성탱 -
이들 삼성각 탱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산
신탱으로 무려 2000년에 제작되었다.


▲  삼성각에서 바라본 좁은 천하 (흥룡사 경내)

▲  흥룡사에서 만난 새끼고양이의 위엄
(누런 고양이가 알록달록 고양이에게 시비를 걸다)


내를 둘러보던 중 원각당 옆에서 새끼고양이 3마리가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2마리는 검
은털과 흰털, 누런털이 적절히 섞여있고, 다른 하나는 오로지 누런털 옷을 입고 있다.
이들은 땅바닥에서 풀과 돌을 희롱하고 있었는데, 누런 묘공이 갑자기 풀 희롱에 열중하는 알
록달록 묘공(猫公)에게 시비를 건다. 시비를 건다고 해서 멱살을 잡거나 서로 발톱을 견주며
싸우는 것은 아니다. 그냥 묘공의 흔한 놀이로 쥐나 조그만 동물을 잡기 위한 일종의 훈련도
겸한다.


▲  풀과 나뭇잎을 희롱하다~~

▲  경내 동쪽에 자리한 승탑(부도)들

▲  어깨를 나란히 한 승탑(僧塔)들 - 제일 오른쪽 팔각원당형 승탑이
청암당부도(포천시 향토유적 35호)

경내를 나와 백운계곡 안쪽으로 향하면 왼쪽에 돌담이 둘러진 공간이 있다. 그 안에 3기의 승
탑이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리해 있는데, 이들은 청암당
(淸巖堂)과 묘화당(妙化堂), 운경대선
사자광탑(雲鏡大禪師慈光塔)으로 흥룡사에 왔다면 꼭 봐야되는 이곳의 유일한 고색의 유물이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흥룡사의 오랜 내력이 참 무색했을 것이다. (운경대선사탑은 제외)

그들 가운데 뚜껑처럼 생긴 왼쪽 승탑은 운경대선사의 자광탑으로 1905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
나 2000년 2월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에서 열반에 들었다. 그는 1940년에 잠시 이곳 주지를 지
낸 인연이 있어서 이곳과 봉선사에 승탑을 만들었는데, 왜정 시절에는 독립운동을 하면서 조선
민족해방당을 지원하다 걸려 옥고를 치루기도 했으며, 6.25때 모두 타버린 봉선사를 다시 세우
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운데 자리한 석종형(石鐘形) 승탑은 묘화당의 것으로 조금은 뾰족한 모습인데, 탑신 앞에 '
묘화당 영조(妙化堂 灵照), 강희 20년(康熙二十年)'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어 승탑의 주인과 조
성 연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강희 20년이면 1681년(안내문에는 1781년으로 한참이나 잘
못 나옴)으로 승탑의 높이는 153cm이다.

오른쪽에 자리한 청암당(淸巖堂)승탑은 동그란 승탑에 8각의 지붕돌을 얹힌 일종의 팔각원당형
승탑으로 탑신 중앙에 '청암당' 3글자가 새겨져 있어 승탑의 주인을 알게 해준다. 그는 1648년
흥룡사의 부속 암자인 보문암을 창건했다고 전할 뿐, 딱히 다른 정보는 없으며, 그곳에 있다가
근래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탑의 높이는 156cm이다.

이들 승탑은 길가에서도 매우 잘 보이므로 (탑신에 새겨진 글씨는 잘안보임) 굳이 담장을 넘을
필요는 없다. (담장 내부는 출입 금지를 권하고 있음) 글씨는 카메라로 최대한 줌을 땡기면 왠
만해선 다 보인다.


 

♠  백운계곡(흥룡사계곡)에서 즐긴 짧은 피서

이렇게 흥룡사를 둘러보고 백운계곡으로 길을 향했다. 백운계곡 중 흥룡사를 거쳐가는 계곡은
편의상 흥룡사계곡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수도권 제일의 계곡답게 수량도 많고, 물도 깨끗하며, 골도 깊고, 바위와 암반도 많다.
예로부터 경승지로 널리 칭송을 받았으며, 백운계곡의 일원인 선유담(372번 지방도에 있음)이
영평8경의 하나로 추앙을 받고 있다. 흥룡사 역시 이 계곡에 퐁당 반해 계곡 옆에 절을 지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백운산 등산도 아니며, 흥룡사 관람과 백운계곡을 조금 따라 올라가 잠시
발을 담구며 쉬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피서철이 아닌지라 그 좋은 계곡에는 사람이 거의 없
었다. 만약 1주 뒤에 왔다면 평일이라도 무척 미어터져 정신이 없었을텐데, 그 이전에 와서 한
적한 계곡의 모습에 위안을 받는다.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고적한 것이 보기도 좋고, 자연에도
좋다. 사람이 없으니 계곡에 쓰레기도 없고, 그들의 괴롭힘이 없으니 백운산과 계곡도 더욱 신
이 난다. 그만큼 자연에게 있어 인간은 전혀 도움이 안되는 존재이다.


▲  등산로와 나란히 달리는 흥룡사계곡

흥룡사계곡은 승탑을 기준으로 15분 정도만 올라갔다. 그 정도만 가니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하나는 백운산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계곡을 건너는 것이다. 애당초 산을 타는 것
은 염두에 두지 않아 계곡을 건너려고 했으나 전날까지 계속된 장맛비로 계곡물이 늘어 건너는
것이 거의 어렵게 되었다. 물론 무리를 해서 건너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시
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 갈림길에서 과감히 길을 멈추고 거추장스러운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던져 계곡에 꼬
질꼬질한(?) 발과 다리를 담구며 그들을 잠시 호강시켜주었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흘러나온 땀
이 바로 줄행랑을 친다. 비록 온몸으로 계곡과 진한 스킨쉽은 하지 못했지만 혼자 와서 그렇게
노는 것도 좀 처량해보인다. 그냥 발과 다리만 담구며 적절히 피서를 즐기면 그만이다.


▲  내가 잠시 머물던 곳 (이름은 딱히 없음)

▲  바위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 조그만 폭포

계곡에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으려니 여름의 제국이 꽤나 심술이 난 모양이다. 난데없이 소나기
를 퍼붓는데, 좀 내리나 싶더니만 멈추고, 그러다가 또 쏟아지고, 그렇게 심술을 부린다. 허나
다행히 내리는 양은 별로 없어 물가에 앉을 자리를 만들고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며 계곡에 다리
를 담구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거의 15시 40분이 되었다. 거의 1시간 이상을 머문 셈인데 그 사이 지나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완전 나 혼자 이 좋은 계곡을 독점하여 누린 셈이다. 영원히 그러면 좋
을텐데 아쉽게도 일시적인 독점이다. 사람이 없으니 정말 신선(神仙)이 나타나 같이 놀자고 하
거나, 좋은 선녀를 소개시켜주거나, 내기바둑 1판 두자고 청할 것 같았다. 허나 신선은 사람이
만든 상상 속의 존재이니 나타날 일은 없다. 그만큼 이곳은 신선이 반할 경치를 지녔다. 기분
같아서는 속세에서 나란 존재를 잠시 지우며 이곳에 숨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그게 현실이
아님을 알기에 잠시나마 정든 마음을 훌훌 털고 계곡을 등졌다.


▲  녹음이 우거진 백운산 산길

▲  흥룡사계곡

▲  숨겨진 조그만 폭포와 소(沼)

흥룡사에서 저녁공양을 17시부터 8시까지 하는데, 좀만 버티면 그 시간이다. 일반인에게도 밥
을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일행도 없고 나 혼자이니 잘만 구워삶으면 저녁 해결도 가능할 듯 싶
었다.
그래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등산로를 잠시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갔다. 조그만 샛길이
호기심을 자극시켰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내려가니 크기는 작지만 조촐한 폭포와 폭포수가 담긴 소가 있는데, 물의 색깔이 인
간이 만든 비루한 색이 아닌 완전 대자연의 짙은 푸른색이다. 수심은 약 1.5m 내외로 보였는데.
기분 같아서는 정말 풍덩하고 싶은 매혹적인 곳이다. 다음에 여러 명과 피서를 올 일이 있다면
이곳에 진을 치고 놀고 싶으나 과연 그날이 올지는 장담을 못하겠다.

그런 폭포를 뒤로 하고 다시 흥룡사를 찾으니 주춤했던 소나기가 다시 퍼붓기 시작한다. 그런
데 아까와는 달리 매우 쎄차게 쏟아진다. 그래서 비를 피하고자 공양간으로 들어갔는데, (16시
30분 경) 할머니 보살 1명이 열심히 밥과 반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반인도 공양을 할 수
있냐고 물으니 혼자 왔냐고 그런다. 하여 그렇다고 답을 하니 그러면 5시 반에 오란다. 승려가
먼저 밥을 먹고 그 다음 신도나 절과 관련된 사람들이 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마움을 표하고
모락모락 저녁밥을 꿈꾸며 시간이나 때울 겸, 인적이 없는 삼성각에 들어가 50분 정도 시간을
때웠다.
나무로 만든 건물 내부는 매우 시원하며 잠시 졸음의 희롱을 즐기며 벽에 등을 기대 졸기도 하
였다. 절집에서 조촐하게 나만의 극락(極樂)을 즐긴 셈이다. 다행히 그동안 이곳까지 오는 사
람이 없어 그 시간 동안 삼성각을 마음껏 독차지했다. 

17시 20분이 되자 삼성각을 어슬렁 나와 공양간으로 갔다. 할머니 보살이 나를 보더니 어여 들
어오라고 그런다. 안으로 들어가니 승려 3명과 일꾼 2명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합장
(合掌)을 하고, 공양에 들기 시작했다. 이곳 공양밥은 하얀 쌀밥을 기본으로 약 5~6가지의 나
물이 있으며 거기에 무려 김치찌개까지 있다. (물론 고기는 없음) 이들 외에도 보기 힘든 산나
물도 있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그릇에 밥과 나물을 터질 정도로 담아 꾸역꾸역 비벼먹고 거기에 김치찌개까지 겯드리니 이것
이 정녕 흥룡사 공양 스타일이다. 맛도 그런데로 괜찮았다. 그렇게 즐겁게 배를 채우고 할머니
보살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바깥으로 나왔다. 아까만 해도 먹구름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
며 소나기를 내던지더만 이제는 평온하다.

절을 나오기 전, 새끼 묘공이 있던 원각당을 찾았다. 절을 지키며 노느라 지쳤는지 원각당 툇
마루에 서로 부비적거리며 달콤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정처없는 내 마음을 크게 흔든다. 나도 그 틈에 끼어 같이 자고 싶은데, 그건 민폐겠지. 그들
틈에 끼어서 자면 열대야에 도망친 잠도 무척 잘 올 것 같다.


▲  원각당 툇마루에서 주무시고 있는 새끼 묘공의 위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 같다.


이번 나들이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존재는 흥룡사 새끼 묘공과 저녁 공양이다. 공양은 보살의
후한 인심에 다음날 점심까지 밥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배를 채웠고, 새끼 묘공은 묘공 특
유의 귀여움을 보이며 나의 시선을 잡아맸다. 그들이 있어 고색(古色)의 내음도 거의 없고 문
화유산도 빈약하며, 돈 욕심에 얼룩진, 내 입장에서는 썩 끌리지 않는 흥룡사가 또 찾고 싶을
정도로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다음에 간다면 새끼 묘공은 어른이 되어있으려나...?


▲  흥룡사와 백운계곡의 모든 것을 뒤로하며 속세로 다시 나오다.

흥룡사를 나오니 시간은 6시가 넘었다. 더 이상 정처를 둘 곳도 없기에 백운동 정류장으로 미
련없이 나와 바깥으로 나가는 직행버스에 몸을 담고 나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하여 백
운계곡, 흥룡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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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6년 7월 2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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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6/08/01 13:45 | 수도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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