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서의 성지를 찾아서 ~~~ 미인을 닮은 아름다운 폭포, 삼척 미인폭포 (통리협곡, 여래사)



' 백두대간에 숨겨진 아름다운 비경,

삼척 미인폭포(美人瀑布) '

▲  미인폭포
* 네이버블로그글 보러가기 http://blog.naver.com/py1978/220765114392



예전 설날 연휴에 삼척(三陟) 미인폭포를 찾은 적이 있었다. 허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태백 일대에 쏟아진 지독한 눈폭탄으로 눈이 첩첩산중으로 쌓여 폭포까지 내려가지도 못
하고 폭포 남쪽 여래사에서 휴전선 너머의 북한 땅을 대하듯 바라봐야 했다.
'폭포가 바로 저 앞인데.. 7~8분만 내려가면 폭포인데..' 얼마나 서운했던지. 하지만 무
심한 폭설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폭포로 가는 길이 썩 좋은 편도 아니고 그렇다
고 겨울 산행에 걸맞는 장비도 갖추지 못한 터라 자칫 무모하게 굴었다가는 몸만 상한다.
하여 절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일단 만족하고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억지로
두 발을 돌렸다. (☞ 미인폭포 겨울 여행기 보러가기)

그 이후 미인폭포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애타게 기회를 엿보던 중, 드디어 기
회가 찾아왔다. 멀리 남동임해(南東臨海)지역의 아는 이들이 6월 끝 무렵에 단체로 그곳
으로 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하여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 폭포 인근 통리3거
리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다시금 찾아온 미인폭포와의 인연, 그 인연의 줄을 꽉 잡으며 아침 일찍 정동진(正東津)
으로 떠나는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거의 3시간 50분을 달려 고원의 도시 태백(太白
)의 관문, 태백역에 두 발을 내렸다. 그런 다음 태백역전에 있는 태백시외터미널에서 물
흐르듯 자주 있는 태백시내버스 4번을 타고 통리(通里)로 넘어갔는데, 아직 시간이 넉넉
하여 오랜만에 통리역을 만나보기로 했다.


 

♠  통리역에서 여래사까지

▲  영동선 통리역(通里驛) 왕년의 모습 (2012년 6월)

한때 통리의 관문이었던 통리역은 1940년 8월에 문을 열었다. 이 땅에서 2번째로 높은 곳에 자
리한 철도역으로 비록 역사(驛舍)의 규모는 작으나 태백 지역의 수많은 석탄과 화물을 취급했
고, 청량리와 동대구, 부전, 강릉으로 가는 열차가 꼬박꼬박 바퀴를 멈추었던 역이다. (새마을
호와 무궁화호 일부는 통과함)
특히 통리역에서 심포, 흥전, 나한정을 거쳐 도계로 내려가는 길은 우리나라 철길 가운데 가장
험난한 코스로 흥전과 나한정 사이에 스위치백(Switch-back) 구간을 두어 열차가 5분 정도 뒷
걸음질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통리역은 해발 680m, 통리재 밑에 자리한 도계역(삼척 도계읍)은 약 240m로 무려 440m의 해발
차이가 난다. 그러다보니 완전 하늘과 땅을 오가는 기분이다. 승객들이야 이 재미난 풍경에 신
이 나겠지만 열차와 그것을 움직이는 기관사는 그야말로 진땀을 뺀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큰
사고로 이어지는 난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눈칫밥을 줄이고자 1999년 12월 철
도 개량 사업에 들어갔는데, 워낙 큰 공사라 무려 12년 7개월의 대공사 끝에 2012년 6월 27일
솔안터널(16.7km)이 개통되었다. 개량사업의 99%는 바로 이 터널이다.

솔안터널은 동백산역에서 도계역으로 이어지는 이 땅 최대의 땅굴로 동백산~도계 구간 운행시
간이 36분에서 16분으로 20분이나 단축되었고, 운행거리는 19.6km에서 17.8km로, 선로 용량은
1일 30회에서 35회로 증대되어 열차 여객 및 물류 수송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 개량 사업으
로 겨우 '강릉~영주' 완행 무궁화호 열차가 1회 멈추던 동백산역은 크게 덕을 보아 통리역 열
차가 거의 그대로 동백산역에 정차하게 되었다.
허나 양지가 있으면 반드시 음지도 있는 법이라 통리역은 그 반대로 개량 사업의 철저한 음지
가 되었다. 솔안터널 개통과 함께 통리역을 거치던 여객열차는 더 이상 이곳으로 바퀴를 굴리
지 않고 동백산역에서 바로 터널로 빠지기 때문이다. 하여 통리역의 여객 업무는 모두 동백산
역에 넘어갔고, 통리역은 간이 화물역으로 존재감이 크게 하락하였다.

통리역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여객 열차가 들어오지 않으니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타고 내
리던 사람들로 잠시나마 시끌벅적하던 풍경은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통
리 상권도 크게 위축되었다.


▲  통리재 정상인 통리3거리

현역에서 물러나 한가한 신세가 된 통리역을 오랜만에 둘러보고 통리3거리로 이동했다. 여기서
일행들에게 연락을 취해 도착을 알리고 차분히 기다렸다.

통리3거리는 통리재(송이재) 정상으로 해발 720m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도계와 삼척,
동해로 이어지며, 동쪽으로 가면 미인폭포와 너와집으로 유명한 신리(新里), 벽지 계곡의 진수
를 보여주는 동활계곡과 가곡천을 거쳐 동대해(東大海)가 있는 호산으로 이어진다.
하늘 아래 첫 동네다보니 구름과 안개가 가득 끼어 고개 밑 세상은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아
무리 여름의 한복판이라고 해도 태백 지역은 여름 제국(帝國)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다. 그
날 서울은 거의 30도에 이르렀는데 태백은 고작 20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곳은 첩첩
한 고산지대이다.

통리3거리에서 멀뚱히 기다린지 거의 20분 만에 남쪽 사람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내 앞에 그 육
중한 바퀴를 멈추었다. 반가운 마음을 내비추며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미인폭포 입구에 도착
했다. (통리3거리에서 미인폭포 입구까지 약 800m)
미인폭포 입구에서 여래사 사적비까지 차량들이 안심하게 바퀴를 굴리게끔 길이 닦여져 있으나
대형버스가 들어가기에는 많이 버겹다. 그래서 모두 입구에서 내려 걸어갔다.


▲  여래사로 인도하는 숲길

여래사로 가는 숲길은 늘씬하게 솟은 키다리 나무로 가득하다. 백두대간의 힘찬 기운을 무럭무
럭 먹고 자란 탓일까? 울창한 숲을 이루며 하늘을 가린 숲의 기세에 눈에 뵈는 게 없다는 여름
제국도 꼬랑지를 내리고 슬금슬금 피해간다.
숲이 베푼 선선한 바람과 숲내음은 사람들의 안구와 마음을 제대로 정화시켜주며, 길의 경사도
그렇게 각박하지 않아 그리 힘든 것은 없다.

       ◀  혜성사 사적비(慧聲寺 史蹟碑)
숲길을 6~7분 오르면 때깔이 고운 혜성사 사적
비가 마중을 한다. 혜성사는 여래사의 예전 이
름으로 바로 여기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사적비 앞에는 차량이 쉴 수 있는 주차장이 있
는데, 요즘 미인폭포 나들이 수요가 제법 늘어
나면서 관리비 명목으로 주차비를 받고 있다.
(이제는 입장료까지 받고 있음)


▲  사적비(주차장)에서 여래사로 내려가는 산길

지금이야 산길에 이렇다할 방해물이 없지만 2012년 초까지만 해도 짧게 목책이 둘러져 있었다.
절과 폭포로 내려가는 길도 오로지 여기 하나 뿐이고 길 양쪽 또한 각박한 내리막이라 목책을
꽁꽁 닫아걸면 넘어가기도 힘들다.
목책을 설치한 큰 이유는 미인폭포 관람객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폭포를 가려면 무조건 절
을 거쳐가야 되는데 절에서는 기도에 방해가 된다며 관람객들을 차갑게 대해 늘 말썽이 많았
고, 길목에 목책까지 닦아놓아 관람객의 통행까지 방해했다.
이렇게 안좋은 배경을 안고 태어난 목책은 2012년 봄에 새로 부임한 주지승이 절과 폭포를 찾
는 중생의 발걸음을 막는 것이 아니라며 싹 철거하여 예전보다는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여래사로 내려가는 산길

사적비에서 여래사까지는 급한 벼랑을 동반한 내리막길의 숨가쁜 연속이다. 매우 가파른 경사
라 길이 지그재그로 정신없이 이어져 사람들의 혼을 다 빼놓으며, 길 옆은 거의 50~60도의 낭
떠러지이다. 특히 길이 구부러지는 부분은 거의 70~80도의 천길 낭떠러지로 동쪽 굽이 부분은
그나마 통리협곡이 가까이에 보여 덜 아찔하지만 서쪽 굽이 부분은 영동선(嶺東線) 열차도 울
고 넘었던 통리재를 비롯하여 통리재 아랫 세상(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흥전리)이 까마득하게
보여 염통을 제대로 쫄깃하게 만든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보이지 않는 저 고개 밑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
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더욱 조심에 조심을 기해 내려가야 된다.


▲  서쪽 굽이 부분 - 숲 너머로 통리재가 보인다.

▲  사적비와 여래사 중간 부분 산길
관광객들을 위한 안전시설은 거의 없다. 돌다리도 두들겨 패고 건너는 심정으로
조심 조심 발을 움직이는 수 밖에는~~

▲  여래사 남쪽에 놓인 철다리

그렇게 간을 쫄깃쫄깃 구워가며 내려가니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여래사가 드디어 그 모습을 비
비추고 절 남쪽 계곡에 놓인 철다리를 건너면 여래사 경내에 이르게 된다.


 

♠  하늘의 감옥 같은 통리협곡에 둥지를 틀어 미인폭포의 후광을
단단히 보고 있는 고적한 절집, 여래사(如來寺)

▲  통리협곡에 둥지를 튼 여래사 (겨울 설경)

통리협곡 동쪽 비좁은 곳에 둥지를 닦은 여래사는 1960년 4월에 창건된 조촐한 산사(山寺)이다.
원래 이름은 혜성사(慧聲寺)로 근래에 이름을 갈았으며 가파른 통리재로 이어지는 서쪽을 빼고
는 동/남/북쪽이 완전히 산으로 막힌 하늘의 감옥 같은 곳이다.
처음에는 조그만 기도처로 시작했으나 미인폭포의 덕을 제대로 본 탓인지 신도가 꾸준히 늘어
나 대웅전과 삼성각 등 무려 6~7동의 건물을 갖추며 제법 발전을 보였다. 하지만 터가 협소하
고 경사가 하나같이 급한 곳이라 그런 지형의 눈치 때문에 건물 크기는 모두 작으며, 산자락을
깎지 않는 이상은 경내를 넓힐 수도 새롭게 건물을 놓을 공간도 적당치 않다.

철다리를 건너 요사의 좁은 옆구리를 지나면 경내 서쪽을 이루고 있는 요사(寮舍) 한복판에 이
르게 된다. 'ㄱ'자 모양의 요사와 '一' 모양의 요사가 바로 붙어있어 마치 하나의 건물처럼 보
이는데, 이들 건물은 승려와 신도의 생활공간으로 그들 사이에 좁은 뜨락이 있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요사와 절지킴이 누렁이

좁은 산자락을 비집고 간신히 터를 다진 경내 동쪽에는 법당(法堂)인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
여 삼성각(三聖閣)과 산령각(山靈閣), 범종각(梵鍾閣) 등이 일제히 폭포가 있는 북쪽을 바라보
고 있다. 다들 조촐한 모습으로 건물 현판은 한문이 아닌 한글로 쓰인 것이 눈길을 끌며 건물
앞 뜨락은 매우 가늘고 좁다.


▲  단청이 고운 여래사 대웅전 (겨울에 찍은 사진)

▲  대웅전 옆에 자리한 범종각
범종을 비롯하여 목어(木魚)와 바깥에 매달린 법고(法鼓, 북) 등을 갖추고 있다.

▲  여의주를 머금은 목어의 위엄
미인폭포에 단단히 눈이 먼 것일까? 아니면
폭포 전설에 나오는 미인을 꿈꾸는 것일까?
눈동자가 부었다.

◀  범종각에 안긴 범종(梵鍾)
범종 피부의 여래사의 옛 이름인 혜성사가
쓰여 있다. 저 종을 심산유곡인 이곳까지
어떻게 운반해왔을까?


▲  1칸짜리 삼성각
삼성각은 보통 산신과 칠성, 독성(獨聖)의 보금자리이나 이곳은 산신과 칠성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성은 어디로 마실을 갔으려나..?)

▲  삼성각에 봉안된 산신탱(山神幀)과 칠성탱(七星幀)

왼쪽 산신탱에는 흰 수염의 산신 할배를 비롯하여 호랑이와 동자(童子) 등 산신 식구들이 그려
져 있다. 산신 왼쪽(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에는 그의 거처인 산이 흑백으로 그려져 있어
칼라와 흑백 사진을 원근감에 맞쳐 겹쳐놓은 듯 하다.
빨간색 투성이인 오른쪽 칠성탱은 선의 미가 물씬 묻어나 여래사 탱화 중에 단연 돋보인다. 이
들은 모두 20세기 후반 것으로 시간이 100년 이상 흐르면 20세기 후반 불화 양식으로 우리나라
미술사 관련 서적에 소개될 지도 모르니 미리 눈도장을 찍어두자.


▲  경내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한 산령각(山靈閣)

▲  산령각에 봉안된 존재들 (산신과 단종 임금)

산령각은 산신(山神)의 보금자리로 이미 삼성각에 산신상과 산신탱이 있건만 따로 산령각을 만
들어 별도의 산신상과 산신탱을 봉안하고 있다. 그러니까 산신상/산신탱이 각각 2개씩 있는 것
이다. 왜 그렇게 산신으로 도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절이 첩첩한 산주름에 묻혀있다보니 산
신에게 더욱 잘보이려는 의도로 그리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산신탱은 매우 오래된 듯, 꽤 빛이 바래 보이는데 적어도 50~60년 이상은 묵은 듯 싶으며, 그
옆에는 어느 선비가 백마에 탄 곤룡포(袞龍袍)를 입은 제왕에게 무언가를 바치고 있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절에 왠 선비와 왕의 그림일까? 그것은 단종(端宗)과 충신 추익한(秋益漢)의 일
화를 머금은 그림이다.

단종(1441~1457)은 숙부인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世祖)>에게 강제로 왕위에서 떨려난 불운
의 어린 군주로 계속되는 단종 복위 운동으로 인하여 결국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영월
(寧越)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벼슬에서 물러나 영월에서 한가로운 인생을 보내고 있던 추익한은 그 소식을 듣고 자주 단종을
찾아와 문안 인사를 올렸다. 단종이 시(詩)를 좋아하니 그와 함께 시를 지으며 그와 놀아주었
고, 산에서 딴 산머루나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진상하는 등 온갖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추익한은 산에서 단종에게 줄 머루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단종이 곤룡포를 휘
날리며 백마를 타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난데없는 그의 등장에 '이게 뭔일이지..? 유배
가 풀렸나?'
적지 않게 놀랬으나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산머루를 쓱 바치며 '전하 어디로 가십
니까?'
물었다. 그러자 단종은 '태백산에 가는 길입니다. 산머루는 처소에 갖다 두세요' 하고
는 말을 타고 사라졌다.

추익한은 '이거 내가 귀신에 홀렸나? 잘못 본 거 아닐까?' 여기다가 문득 조짐이 좋지 않아 단
종이 머물던 영월읍내 관풍헌(觀風軒)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보니 글쎄 단종은 사약을 마시
고 이미 죽어있던 것이 아닌가 (그때가 1457년 10월 26일) 그 참담한 광경에 충격을 받은 추익
한은 크게 곡소리를 내며 결국 자살하고 만다.

단종은 이승을 떠나자 태백산으로 들어가 그곳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숨
을 거둔 단종에 대한 강원도 남부 지역 백성들의 눈물 어린 동정심은 그를 천하 제일의 성산(
聖山)인 태백산의 산신으로 만들어 길이길이 받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강원도 삼척과 정선,
영월 지역의 많은 사찰에는 단종과 추익한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면을 담은 그림을 봉안하고
있으며, 이 지역 서낭당이나 당집에서도 그 그림을 봉안하며 단종을 신으로 받든다.


▲  범종각 옆에 있는 샘터

여래사에 2번이나 발을 들였지만 샘터는 처음 본다. 그새 새로 만든 것일까? 그건 아니다. 예
전 겨울에 왔을 때는 눈에 완전히 묻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샘터는 미인폭포 계곡에서 끌어올린 맑은 물로 맛이 시원하고 달달하다.


▲  옛날 시골 부엌처럼 정겹기 그지 없는 여래사 부엌

옛날 시골 부엌을 재현한 듯 꽤나 정겨운 모습이다. 이제는 희미한 추억이 되버린 나의 단양(
丹陽) 외가 시골집도 저랬었지. 장작으로 불을 떼는 부뚜막과 쇠솥을 보니 모락모락 연기가 피
어오르는 쌀밥과 누룽지 생각이 간절해진다. 그래도 완전한 옛날 방식을 고집할 수는 없었는지
현대의 이기(利器)인 가스통과 가스레인지도 들여와 부뚜막과 함께 취사를 해결한다. 부뚜막은
여전히 나무로 불을 떼며, 식수는 미인폭포 계곡에서 파이프를 연결하여 가져온다.


▲  여래사 북쪽에 병풍처럼 들어선 미인폭포 서쪽 석벽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위대한 작품 앞에 그저 탄성만 연거푸 나올 뿐이다.
하늘을 이고 있는 석벽에는 세월이 달아놓은 주름선이 첩첩이 그어져 있다.


여래사는 인적도 거의 없는 궁색한 산간벽지로 수행하기는 참 좋은 곳이다. 삼척 땅의 가장 외
진 곳이자 숨겨진 비경인 미인폭포가 절의 듬직한 후광이 되어주고 있고, 통리협곡 안에 아슬
아슬하게 들어앉은 탓에 경치도 아주 뛰어나다. 절집의 본분인 기도와 참선을 위해 이곳을 선
택한 것도 있겠지만 폭포와 자연의 덕을 톡톡히 보려는 의도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미인폭포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든지 관광지로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곳이라 그 앞에 미리 자리
를 맡아놓으면 관광객들은 싫든 좋든 절을 거쳐야 된다. 그러다보면 절을 찾는 발길은 미인폭
포 인기에 정비례하여 늘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수입은 늘어날 것이고 그 수입을
바탕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절이 이곳에 들어서면서 사적비까지 길을 내
어 폭포에 대한 접근성도 조금 좋아졌다. 절이 아니었으면 폭포 입구에서 실타래처럼 가느다란
산길을 쩔쩔매며 이동해야 했을 것이다. 

절을 기준으로 서남쪽 벼랑에는 등잔바위, 범바위 등이 있고, 예전에는 보석의 일종인 자마노(
紫瑪瑙)란 붉은 돌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수달도 가끔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만큼 이곳이 한적하고 청정한 벽지라는 뜻이다.


 

♠  삼척의 비경이자 통리협곡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폭포, 미인폭포

▲  여래사에서 바라본 미인폭포

통리협곡 동쪽 구석에는 백두대간의 비경인 미인폭포가 수줍은 듯 숨어있다. 여래사에서 폭포
까지는 대략 300m 거리로 폭포 양쪽으로 붉은 피부의 협곡 석벽이 대장관을 이룬다.
대자연이 오봉산(五峯山)과 백병산(白屛山)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 협곡과 함께 빚어놓은 대작
품, 미인폭포는 높이가 50m에 이른다. 지역 이름을 따서 심포폭포()라고도 하며, 삼척
시내로 흘러가는 오십천(五十川)의 최상류이기도 하다. 암벽을 타고 내려와 산산히 부서지는
폭포수는 물안개를 이루며 오색영롱한 무지개를 자아낸다.

미인폭포를 품으며 병풍처럼 들어선 통리협곡은 일명 한국의 그랜드캐년(Grandcanyon)이라 일
컬어진다. 이 협곡은 중생대 백악기(白堊紀. 1.4억년 전~6500만년 전) 시절에 퇴적된 역암층으
로 신생대 초기에 심한 단층작용 속에서 강물에 침식돼 270m 깊이로 패여 내려갔다고 한다. 석
벽이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은 퇴적암이 건조한 기후에서 공기 중에 노출된 채
산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로 굵은 자갈로 된 역암과 모래로 이루어진 사암(砂巖), 진흙
이 굳은 이암(泥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발 600m 내외로 하늘과 가까운 곳이라 안개와 구름의 희롱이 잦은데, 이때 폭포 경치가 더욱
신비하게 보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일몰 전과 일출 전에 폭포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면 풍년, 찬바람이 불면 흉작을 예측했다고 한다.

미인폭포는 통리협곡과 한데 어우러져 장쾌하고 남성적인 멋을 진하게 우려내고 있다. 물론 폭
포의 이름처럼 여성적인 아름다움도 간직하고 있다. 폭포가 여성적인 이름인 미인을 칭하고 있
는 것이 참 이채로운데, 이렇게 어여쁜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은 미인과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
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이렇게 절경인 곳에는 옛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달아놓은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여러
개씩은 서려 있기 마련이다. 폭포 위쪽 동네인 구사리(九士里)에는 옛날부터 미인이 많이 나와
미인폭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그 인근에 미인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미인폭포에 얽힌 전설은 여럿이 전하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먼 옛날, 폭포 윗쪽 동네에서 태어난 미인이 혼인을 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재
가를 했는데, 재가를 한지 얼마 안되어 새 남편마저 죽었다. 아무래도 남편을 잡아먹는 기구한
팔자인가 보다. 그래서 신세를 너무 비관한 나머지 폭포에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전설에는 남편이 죽자, 재혼할 남자를 찾았지만, 예전 남편만한 사람을 찾지 못해 신세를 비관
하고 폭포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미인폭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전설의 내용을 보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이다. 폭포나 수심이 깊은 못에서 신세 한탄
으로 뛰어내린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미인이 아닌 그 반대의 여인이 뛰어내렸다
면 사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과 반대의 뜻인 추녀폭포가 되었을까? 아니면 폭포도 자존심
이 상해 그 자리를 접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전설로는 구사리 혹은 심포리에 살던 어느 부부가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
이가 시작부터 너무 이쁘게 생겼다고 한다. 부부는 그런 딸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어 생후 3일만에 땅에 생매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러자 폭포 속에서 용마(龍馬)가 튀
어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니 아마도 여자 아이가 용마로 환생하거나 그 아이가 장차 탈 용
마가 너무 열받아서 하늘로 날라갔던 모양이다.
폭포수가 미끄러지듯 내려와 산산히 부셔지는 석벽을 험풍암(驗豊岩)이라고 부르는데, 미인이
뛰어내릴 때 이를 지켜보던 동자승이 돌이 되었다는 동자석(童子石)이 암벽 꼭대기에 서 있다.
그 동자승은 미인의 자살을 막지 않고 멀뚱히 구경했다는 이유로 하늘에서 벌을 받은 듯 싶다.


▲  통리협곡의 붉은 석벽 (미인폭포 서쪽 석벽)

마지막으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런 전설도 있다.
옛날 이곳에는 미인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날 이 땅에 흔하고 흔한 된장녀 타입으로
눈이 쓸데없이 높아 왠만한 남자들이 청혼을 해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게 꿈꾸던 이상형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많이도 흘러갔다. 청정한 물을 쏟아내는 폭포와
더불어 살았으니 시간 관념도 잊은 듯 싶으며, 미모에 대한 지나친 자만감에 자신의 모습도 살
피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일기가 화창했던 어느 날, 드디어 이상형의 남자가 폭포를 지나갔다. 이에 미인은 그
에게 청혼을 했는데, 남자는 크게 발작하며 확실하진 않지만 이 정도의 말을 했던 모양이다 '
할머니! 지금 저한테 농담하는거죠?'
그 말에 미인은 '엥 이게 뭔소리인가?' 싶어 폭포수에 자
신을 비추어 보았는데, 글쎄 그 속에는 남자가 했던 말 그대로의 모습이 비춰진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크게 발작한 미인은 치마폭을 뒤집어 쓰고 폭포에 뛰어내려 죽었다고 하며, 그래서
인지 폭포의 모습이 여인이 치마를 뒤집어 쓰고 뛰어내리는 모습과도 닮았다고 한다. (그렇게
까지 보이지는 않았음)
미인이 자신의 주제 파악도 못하고 그렇게 골로 간 이후, 백산(통리 남쪽) 말구리재에서 그녀
의 배필이 될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허나 미인이 죽었다는 소식에 그 또한 발작하여 신
기(도계 북쪽 동네)에서 말과 함께 죽었다고 하며, 미인이 뛰어내릴 때 동자승이 그 모습을 구
경하다가 돌이 되었다고 한다.

▲  하얀 명주를 가늘게 늘어뜨린 듯한 미인폭포
여름 제국의 심술로 초여름 가뭄이 극심이라 폭포수의 수량이 썩 많지가 않다.


여래사 요사 북쪽에 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그 문을 열고 산길을 7~8분 정도 두근거리
는 마음을 다독이며 내려가면 꿈에도 그리던 미인폭포 앞에 이르게 된다. 폭포로 인도하는 산
길은 매우 가는 편으로 마치 미인의 얇은 팔이나 다리를 더듬는 것 같다. 그 길을 한 발짝 내
려갈 수록 미인폭포는 점차 가깝게 다가오면서 그 아름다우면서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여래
사에서 보는 폭포와 그곳으로 내려가는 산길에서 바라보는 폭포, 그리고 바로 앞에서 보는 폭
포의 모습은 확연히 틀리게 다가오며, 폭포의 규모가 자못 장대하다보니 그 앞에 흩어진 사람
들이 개미보다 더 작게 보인다.

▲  바로 앞에서 바라본 미인폭포의 위엄

높은 벼랑에 절벽이 뚫리고 성난 물줄기가 천길 아래로 떨어져 흰 비단을 드리웠다. 폭포는 직
각을 이루며 일직선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 중간에 한굽이 쉬었다가 쏟아지는 형태로 수량이
적다보니 폭포수 소리가 미녀의 목소리처럼 작기만 하다.
폭포수는 폭포 앞 못에 모이는데, 그 못의 수심이 매우 얕아 어린이들이 물놀이하기에 좋으며,
신경통에 좋다는 물맞이 장소로도 손색이 없다. 폭포 아랫도리 암벽에 앉아서 위에서 쉴새 없
이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 되니 정말 피서의 성지가 따로 없다. 미인의 기운이 담긴 폭포수로
얼굴을 씻으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손만 씻었지 얼굴까지는 씻지 못했다.

못에 잠긴 폭포수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속세를 향해 먼 길을 떠난다. 통리협곡이라 불리는 계
곡을 타고 오십천에 합류해 동해바다로 흐르는 것이다. 계곡에는 특이한 돌들이 많이 눈에 띄
는데, 큰 암석에는 다양한 조그만 돌들이 화석처럼 박혀있다. 그 모습이 마치 콘크리트에 박힌
조그만 돌처럼 보이며, 이들은 아득한 중생대 백악기 시절의 온갖 사연을 안고 형성된 것으로
백두대간 지질학 연구에 쏠쏠한 단서를 제공한다.

폭포 앞에 이르니 시원한 물줄기와 번뇌도 싹 털어갈 정도로 청정한 산바람, 그리고 그렇게나
소망하던 폭포 앞에 내가 서있다는 현실에 정말 그곳을 떠나기가 싫었다. 폭포 앞에 작게 움막
을 짓고 아주 잠깐 속세를 등지며 폭포를 벗삼아 살고 싶은 마음도 굴뚝처럼 솟는다. 허나 이
렇게 되면 미인폭포가 나 때문에 이름을 바꿔야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남폭포는 그렇고
추남폭포로 말이다. 그러면 폭포도 발끈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아닐까? 절이 싫으면 중
이 떠나듯이 말이다.

이곳은 통리협곡의 막다른 곳이라 마치 세상의 숨겨진 끝이나 막다른 구석에 들어선 기분이다.
여기서는 오로지 여래사를 거쳐 밖으로 나가거나 계곡을 따라 아득한 북쪽으로 내려가야 된다.


▲  폭포 밑에 마련된 조그만 못 - 수심도 얕고 돌도 매우 곱다.

▲  성나게 쏟아지는 미인폭포의 윗부분

▲  청정한 폭포수로 붉은 피부가
더욱 윤기나게 보인다.

▲  폭포 서쪽 계곡 (통리협곡)


▲  미인폭포를 등지고 다시 속세로 나가다

폭포에서 한 20분 정도 머물다가 다음 일정을 위해 아쉽지만 그곳과 작별을 고했다. 힘들게 찾
아온 폭포라 쉽게 등지기가 싫어 끝까지 남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철수를 했다.

폭포 관람은 수염이 지긋한 산사나이 모습의 여래사 주지승이 직접 해주었는데 그는 2012년 초
에 이곳으로 부임했다. 일행들이 모두 절로 올라오자 요사로 들어와 차 1잔 마시고 가라며 녹
차와 여러 차를 제공했다. 허나 일행 상당수가 절을 나선 상태라 차를 마신 이는 10명 정도로
요사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가재도구와 노트북까지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는 인
터넷까지 버젓히 들어와 고적한 산사에 속세의 소식을 전해주니 이 땅이 정말 인터넷 강국임을
실감케 하며, 요사 내부는 시원하여 한여름에도 선풍기를 틀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주지승이 제공한 차는 시중에서 파는 티백으로 폭포 계곡에서 끌어들인 물을 끓여 티백을 담아
우린다. 순수한 물로 우리다보니 맛도 조금은 다른 것 같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주지승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잠시나마 정들었던 여래사를 떠난다. 주지승도 많이 서운했던지 다음에 꼭
찾아오라며 당부를 건넨다. 

예전 겨울에 이루지 못한 미인폭포 관람을 통쾌하게 이루었지만 아직 동자석과 등잔바위, 폭포
동쪽 너머에 있는 구사리 미륵바위 등 못본 것이 참으로 많다. 그들의 정확한 위치도 모를 뿐
더러 주지승에게 문의하니 그 역시 모른다고 한다. 아마도 다음에 또 발걸음을 하라는 미인폭
포의 지극한 뜻이 아닐까 싶다.
여래사에서 사적비까지는 길이 지그재그이고 경사가 있어 내려갈 때와 달리 좀 힘들다. 사적비
까지 올라와 녹음(綠陰)이 깃들여진 숲길을 걸으며 폭포 입구로 나왔다. 입구로 나오니 우리를
태울 관광버스가 낮잠 한숨 자고 기지개를 켜며 우리를 맞는다.

그렇게 사람들을 태운 버스는 태백시내로 넘어갔다. 황지교4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조금 가다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그곳에 우리가 점심을 먹을 식당이 있었다. 식당 이름은 아쉽게도 잊어먹
었는데 돌솥밥이 일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두 돌솥으로 예약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밑반찬이 미리 맛있는 향을 풍기며 대기하고 있었고, 고기부터 생선, 강원도
산 채소까지 찬이 정말 많았다. 돌솥밥도 괜찮았지만 반찬이 더 맛있어 더 달라고 주문을 했으
나 리필로 돌아온 것은 채소 종류 뿐, 골고루 오지는 못했다.
아침부터 굶주려 폭동 직전에 있던 배를 이렇게 달래니 뱃속도 즐겁다며 쾌재를 외친다. 그렇
게 점심을 마치고 후식으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태백의 선선한 기운을 누리다가 다음 행선지
로 길을 떠났다.
 
이렇게 하여 삼척 미인폭포 초여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이후 내용은 본글의 분량
상 별도의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 삼척 미인폭포 찾아가기 (2016년 7월 기준)
① 철도 이용 (태백역이나 동백산역 하차)
* 청량리역과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에서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태백역 하차. (평
  일은 1일 6회, 주말과 휴일은 1일 7회 운행)
* 부전역, 태화강역, 경주역, 동대구역, 안동역, 영주역에서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동백산역 하차
② 시외버스 이용
*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20~4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부산종합버스터미널(노포역)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6회, 대구 북부정류장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14회 떠난다.
* 인천, 고양, 의정부, 성남, 부천, 수원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4~6회 운행
* 원주, 제천에서 태백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1일 10여 회 운행
* 강릉과 동해, 삼척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30~60분 간격으로 떠나며, 통리에서 내리면 된다.
  (통리에서 미인폭포 입구까지 도보 20분)
③ 현지교통
* 태백역전에 있는 태백시외터미널에서 구사리행 시내버스(1일 1회, 6:35분 출발)나 호산행 완
  행버스(1일 4회/ 8:30, 13시, 15:45, 19시)를 타고 미인폭포(여래사) 입구 하차, 운전사에게
  내려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미인폭포 입구에서
* 태백역이나 동백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여래사 사적비(주차장)까지 들어갈 수 있다.
④ 승용차 (여래사 사적비 앞에 주차공간이 있음, 대형버스 접근 불가)
*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영월 방면 38번 국도 → 고한 → 황지교4거리에서 좌회
  전 → 통리건널목에서 우회전(철길 건널목 건넘) → 통리3거리에서 우회전 → 미인폭포 입구
  에서 좌회전 → 여래사 주차장
* 동해고속도로 → 동해나들목에서 삼척 방면 7번 국도 → 단봉3거리에서 태백 방면 38번 국도
  → 도계 → 통리재 → 통리3거리에서 좌회전 → 미인폭포 입구에서 좌회전 → 여래사 주차장

★ 삼척 미인폭포 관람정보 (2016년 7월 기준)
* 입장료 : 1인당 1,000원 (산길 보수를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음)
* 주차비 : 4시간에 1,000원 (대형은 2,000원)
* 비가 많이 내리거나 폭설이 내릴 때는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만큼 험준한 곳이다.
* 미인폭포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 여래사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218-2 (문의재로 77-162 ☎ 033-55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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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6년 7월 14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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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6/07/20 11:21 | 강원도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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