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을 더듬다~~~ 울산 서생포왜성

 


' 울산 왜성(倭城) 나들이, 서생포왜성 '

▲  서생포왜성 내성의 동쪽 성벽


 

♠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자리한 옥의 티 같은 옛 왜성 ~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 울산 지방문화재자료 8호

▲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서생포왜성 외성
푸른 잡초들이 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을 가리느라 부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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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슬슬 기지개를 켜며 천하를 무더위로 내몰던 6월 첫 무렵에 서울에서 머나먼 남동임해
(南東臨海) 지역을 찾았다.
부산에서 먼저 볼일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울산(蔚山)으로 넘어오면서 문득 옛날에 갔었던 서
생포왜성이 생각이 났다. 하여 이유도 따지지 않고 왜성이 있는 진하로 길을 잡았다.

울산의 동남쪽 끝으머리인 서생면 진하(서생리) 뒷쪽 언덕(해발 133m)에는 임진왜란의 쓰라린
흔적인 서생포왜성이 평화롭게 누워 있다.
이 성은 규슈 구마모토(雄本) 지역의 우두머리인 가토기요마사(加藤淸正)가 군사와 지역 백성
을 들볶아서 만든 것으로 1592년 가을에 쌓기 시작하여 1593년에 완성을 본 순수 왜성 스타일
의 성이다. 성 둘레 2.5km(4.2km), 성벽 높이 2~6m, 면적은 대략 15만 2천㎡에 이르며, 이 땅
에 남아있는 왜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성을 지을 때 근처에 있던 만호진성(萬戶鎭城)을 부시고 그 돌을 가져와 축성했는데, 산 정상
에 내성을 쌓고 동쪽 경사면에 복잡한 구조로 3단의 부곽(副郭)을 두었으며, 그 동쪽 산 밑에
드넓은 외성을 설치하니 그 범위는 성내마을(진하 서쪽)까지 미친다.
성 밖에는 2중, 3중으로 호(壕)를 파서 수비에 만전을 기했으며, 외성은 바깥쪽에 돌을 쌓은
내탁식(內托式)으로, 내성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은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성했다. 성벽의
기울기는 60도 정도로 왜성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며, 산 정상에는 왜장이 머무는 천수각(天
守閣)을 두었다.

함경도를 지나 무려 두만강(豆滿江)까지 건너갔던 가토기요마사는 조선군과 강추위에 형편없이
쫓겨 내려와 이곳에 틀어박혔다. 1594년 사명대사(四溟大師)가 4번이나 찾아와 왜장과 교섭을
벌였으며, 1598년 9월에는 김응서(金應瑞)와 마귀(麻貴)가 이끄는 조선,명나라 연합군이 이곳
을 점령하여 울산 왜성의 배후를 위협했다.
1599년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53명의 충신을 배향하고자 창표당(蒼表堂)을 세웠으며 견고하게
축성된 덕에 성을 버리지 않고 1895년까지 조선 수군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사용
되었다.

왜란 당시에 기장 죽도성(竹島城), 울산왜성과 봉화를 주고 받아서 봉화성(烽火城)으로도 불리
며, 16세기 왜성의 양식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산증인이라 왜열도에서도 많은 답사객들이 찾아
온다. 성의 이름인 서생(西生)은 명나라 장수 마귀가 성 서쪽 문을 가리켜 생문(生門)이라 했
는데, 그게 이름이 바뀌어 서생이 되었다고 한다.

왜정 때 사적 54호로 지정되었고, 1963년에 국가 지정문화재 목록을 다시 손봤을 때도 정리되
지 않고 그 지위를 유지했다. 허나 그 자리가 너무 외람되어 1997년 학성(울산왜성)과 더불어
사적에서 정리되었으며, 이후 울산 지방문화재로 살아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4개에 100년이 지났지만 성곽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내성(內城)은 대부분이 남
아 있으며, 외성(外城)은 성곽의 일부가 전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서생포 왜성을 살펴보도
록 하겠다.

※ 서생포왜성 찾아가기 (2016년 6월 기준)
* 태화강역, 울산시외고속터미널 건너편, 학성공원, 울산광역시청, 공업탑에서 715번 시내버스
  (30~40분 간격)를 타고 서생포왜성이나 진하 하차. 진하에서 내리면 정면(서쪽)에 산성 같은
  것이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있다. 거기가 바로 서생포왜성이다.
* 공업탑 남쪽 울산대공원 동문앞 정류장에서 405, 715번 시내버스 이용
* 해운대터미널(부산2호선 해운대역 2번 출구)에서 진하행 직행버스 이용 (50~60분 간격)
* 부산1호선 노포역(1번 출구, 부산종합버스터미널)에서 부산시내버스 37번을 타고 월내초교(
  길천)에서 울산시내버스 715번이나 진하행 직행버스로 환승
* 승용차 (성 아래 조그만 주차장이 있으며, 왜성 정상까지 차량 접근 가능)
① 울산시내 → 남창 → 진하 → 서생포왜성
② 부산시내 → 좌천 → 월내 → 서생 → 진하 → 서생포왜성

*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일원


▲  서생포왜성 남문터

서생포왜성은 2002년 6월에 인근에 살던 여인네와 와본 기억이 있다.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속에 산산히 흩어진 그 시절의 추억을 아련히 되새기며 외성 남문터를 통해 왜성의 품으로 들
어섰다.

남문터는 문을 양쪽에서 붙잡던 성벽만이 잡초를 옷삼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의 담장 신세
가 되버린 성벽은 멀리 보이는 산 정상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옛 위용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
는데, 성내마을에서 내성1관문까지는 넉넉잡아 15분 정도 걸린다.


▲  마을의 담장과 수풀의 수북한 보금자리로 살아가고 있는 외성

▲  남문터 부근에 심어진 조그만 비석 4기
동첨절제사영 동첨절제사의 선정비(善政碑)나 불망비(不忘碑)로 여겨진다.

▲  풍년 예감, 서생리(진하) 들판
왜성 남쪽 산이 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뭇새를 다듬는다.


▲  서생포왜성으로 오르는 길 (마을에서 내성으로)

▲  내성 주출입구 밑 산길

▲  내성1관문(주출입구)
성내마을(진하)에서 15분 정도 오르면 내성 출입구가 나온다. 칼로 싹둑 다듬은 듯,
정연하게 쌓여진 성벽은 400년의 세월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낸다.

▲  내성1관문 안쪽

▲  돌출형 소곽(小郭) - 내성2관문
그 우측으로 성으로 들어서는 작은 출입구가 있다.

▲  잠시 뒤를 살피는 여유 (진하해수욕장)
진하해수욕장과 동대해(東大海), 그들을 후광으로 삼은 진하(서생리) 마을이
저 밑에 바라보인다.

▲  내성3관문 성벽에 뿌리를 내린 돌탑


♠  서생포왜성 내성 부분

▲  내성 중심부로 오르는 산길

내성1관문을 지나 산내음이 가득한 산길을 하나씩 오르면 2관문과 3관문이 차례로 모습을 비춘
다. 비록 문루는 녹아 없어졌지만, 밑을 바라보고 자리했을 문루의 위용이 가히 상상이 간다.
3관문을 지나 성곽이 서로 엇물려진 이른바 엇물림형 출입구를 지나면 왜성의 중심인 산 정상
부에 이른다. 평평한 정상에는 천수각을 비롯해 왜군 숙소, 무기창고가 있었다.


▲  내성의 남쪽 성벽

▲  엇물림형 출입구
왜성의 중심인 천수각을 보호하고 적군을 효과적으로 막고자 성벽을 아주 복잡하게
짜놓았다. 수비하기에는 좋지만 공격하기에는 아주 쥐약 수준으로 만든 것이다.

▲  왜성의 정상부 ▼
녹음이 서린 나무와 잡초가 아픈 역사의 현장을 잔잔히 덮어준다.



▲  왜성의 중심인 천수각(天守閣)이 있던 곳

사진에 보이는 성곽 위에 천수각(텐슈가쿠)이 있었다. 천수각의 모습은 왜열도의 오사까성이나
구마모토성의 천수각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영주(領主) 출신인 왜장들은 그들의 특권을 여기
서도 변함없이 누리며 호화롭게 천수각을 지어 부하들과 지역 사람들을 쥐어짰는데, 그 천수각
은 오래 전에 녹아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지적측량을 위한 지적삼각점이 대신 서 있다.


▲  왜성 정상부의 북서쪽 부분

▲  왜성의 특징이 잘 드러난 내성 성벽 ▼
우리나라 성벽은 거의 80도 기울기이지만 왜성의 기울기는 거의 60~70도이다.
무거운 세월의 때와 자연의 태클에 많이 헝클어졌지만
여전히 옛 모습과 위용을 자랑한다.


▲  내성 서쪽 성벽에서 남쪽 산줄기로 인도하는 오솔길

내성의 서쪽 성벽 끝에 성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있다. 길이 좀 가파르기 때문에 조심을 기
해야 되는데, 그 밑으로 내려가면 조그만 오솔길이 나오며, 그 길을 내려가면 성내마을(진하)
에 이른다.
내려가는 길목에는 약수터가 있어서 나그네의 목을 아낌없이 축여주며 정겹기 그지 없는 흙길
은 속세의 물을 먹으며 점차 콘크리트 길로 변한다.

이렇게 하여 오랜만에 들린 서생포왜성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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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6/06/17 12:58 | 경남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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