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서라벌의 오랜 꿀단지, 경주 남산 나들이 (보리사, 미륵곡 석불좌상)

 


경주 남산 나들이 (동남산 미륵곡, 보리사)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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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新羅) 1,0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땅 경주(慶州), 그 두 자를 들으면 나도 모
르게 가슴이 시려온다. 경주는 밤하늘에 흐르는 별만큼이나 온갖 문화유산이 반짝이고, 융
단처럼 부드러운 잔디의 잎파리만큼이나 깃들여진 신화와 전설이 속삭이는 마음의 고향 같
은 곳이다.

경주는 늘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이며, 나에게 늘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 아낌없는 포
만감을 안겨주는 풍요로운 곳이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이 큰 곳 또한 경주이다. 그곳에 서
린 문화유산을 개미목보다 짧은 지식과 하찮은 작문 솜씨로 감히 다룬다는 것이 은근히 두
렵고 떨려 주저한 적도 적지 않았다. 허나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도 그만큼 많이 찾은 곳이
또한 경주이다.

경주 땅 한복판에는 이름도 친근한 남산(南山, 468m)이 길게 누워있다. 바로 옛 금오산(金
鰲山)으로 경주는 물론 신라에서도 꽤 비중이 높아 '남산에 오르지 않고선 경주를 봤다고
우기지 마라~!'
는 의미심장한 말이 있을 정도로 경주의 필수 답사 코스로 꼽힌다.

신라의 시작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나정, 서출지, 포석정)을 넉넉히 품고 있으
며, 신라의 많은 제왕(박혁거세, 일성왕, 정강왕 등)이 그의 품에 앞다투어 잠들어 있다.
게다가 골짜기가 깊고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는 등, 자연미도 풍부하며, 남산을 불국토
(佛國土)로 여긴 신라 사람들이 여기저기 빚어놓은 불교 문화유산이 아낌없이 함축되어 있
는 그야말로 보물의 산이다.
남산에는 40여 곳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에 깃들여진 절터만 100곳이 넘으
며, 80여 개의 불상, 70여 개의 석탑 등이 살아 숨쉬고 있어 그야말로 거대한 야외 박물관
을 이룬다. 그러다보니 남산 전체가 사적 31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처럼 뫼 전체가 통
째로 사적으로 지정된 예는 오로지 이곳이 유일하다. (낭산 등의 조그만 산은 제외)
남산은 위치상 통일전과 보리사가 있는 동남산, 포석정과 배리삼존불, 삼릉이 있는 서남산
(西南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에 문을 두드린 곳은 동남산(東南山) 구역 보리사이다.

동남산 밑에는 갯마을이란 시골 마을이 있다. 그 옛날에 형산강(兄山江) 나룻배가 여기까
지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마을 입구에는 보리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마을
남쪽에는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이 넓게 자리를 닦고 있어 동네가 온통 푸르다. 토함산(
吐含山)에서 발원한 남천(南川)은 동남산 주변을 부드럽게 감싸돌며 '배반평야'라 부르는
너른 평야를 촉촉히 어루만진다.

걷는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조용함이 깃든 갯마을을 벗어나면 대나무로 창창한 오르막길이
나온다. 그 길의 끝에는 미륵곡 석불의 거처인 보리사가 자리해 있다. 절까지 걸어서 12분
정도 걸리는데, 보리사를 중심으로 남천으로 흐르는 계곡을 미륵골(彌勒谷)이라 부른다.


▲  대나무숲이 터널을 이루는 보리사, 미륵곡 가는 길
남산이 베푼 산바람이 이곳을 스치면서 대나무의 향연이 그윽히 울려 펴진다.

▲  보리사 밑에 자리한 부도와 때깔이 고운 비석들


♠  소나무 숲에 터를 돋군 조그만 산사, 남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불
미륵곡 석불을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은 ~ 남산 보리사(菩提寺)

남산에 100곳이 넘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온전하게 법등(法燈)을 이어온 절은 하나도 없는 실정
이다. 지금 절들은 근래 옛터에 다시 지은 것들이며 내가 찾은 보리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남산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튼 보리사는 비구니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으로 불국사(
佛國寺)의 말사(末寺)이며, 남산에 있는 절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절의 창건시기와 구체적인 사적에 대해서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장대한 세월에 묻히
고 역사는 산산이 흩어져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
라 헌강왕(49대, 憲康王)과 정강왕(50대, 定康王)의 능이 보리사 동남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경내에 석조여래좌상과 복원된 3층석탑이 있어 신라 때 절임을 가늠케 할 뿐이다. 허나 정강왕
릉과 헌강왕릉의 위치도 확실한 것이 아니라서 이곳이 신라 때 보리사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五里霧中)이다.

현재 보리사는 1911년 포항 보경사(寶鏡寺)에서 온 박덕염(朴德念) 비구니가 세운 것으로 절단
되어있던 미륵곡 석불의 머리와 광배를 이어 붙였으며, 1932년에는 남법명(南法明) 비구니가 중
수했다. 1977년 추묘운(秋妙雲)이 주지로 머물면서 3~4년에 걸친 불사 끝에 현재의 면모를 지니
게 되었다. 원래는 지금보다 약간 위쪽인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주변이 경내 중심이었으나 1981
년 지금의 자리로 약간 내려왔다.

법당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범종각, 육화당 등 6~7동의 건물을 지녔으며, 비구니 사찰이
라 경내는 깔끔하고 단아하다. 대웅전 앞뜰에는 잔디를 곱게 입혔고 그 사이로 돌을 심어 각 건
물을 이어주는 돌길을 내었다. 자투리공간에는 온갖 화초를 심었으며, 여승의 보살핌을 받은 꽃
들은 한참 꽃망울을 피워 그들의 은혜에 화답한다.


▲  솔내음이 깃든 경내 뒤쪽 부분 (사진 중앙 석불이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남산에서 가장 우수한 명품 석불로 꼽히는 석조여래좌상이 있으며, 경내에
서 조금 떨어진 남쪽 바위에 마애석불이 있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곳에 오르면 배반평야와 낭산(狼山), 토함산이 두 눈에 바라보인다. 비
록 높이는 낮지만, 꽤 높은 곳에 올라 천하를 바라보는 기분이다.
절을 에워싼 싱그러운 소나무의 솔내음과 아늑하고 조용한 산사 분위기, 그리고 미륵곡 석불의
인자함과 우아함이 배여 있는 보리사, 속세에 찌든 마음의 여유를 찾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것
이다.


▲  미륵곡 석조여래좌상에 바라본 보리사 경내

※ 남산 보리사 찾아가기 (2015년 10월 기준)
① 경주까지
* 서울역, 광명역, 천안아산역, 대전역에서 부산행 경부선 고속전철 이용 (신경주역 하차)
* 청량리역,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에서 경주, 부전행 무궁화호 열차 이용 (1일 2회 운행)
* 동대구역, 부전역, 해운대역, 태화강역에서 경주행 무궁화호 열차 이용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에서 경주행 고속/직행버스가 30~50분 간격으로 떠난다.
* 인천, 고양, 의정부, 부천, 성남, 수원, 춘천, 원주, 청주, 전주, 구미, 안동, 창원, 대구(동
  부, 서부), 부산, 울산에서 경주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② 현지교통
* 경주시외터미널 건너편, 경주고속터미널 건너편, 경주역(경주우체국)에서 11번 시내/좌석버스
  를 타고 갯마을 하차, 도보 12분
* 신경주역에서 50, 51, 60, 61, 70, 700번 시내버스를 타고 경주시외터미널 건너편이나 경주역
  (경주우체국)에서 11번 버스로 환승
* 보문관광단지와 불국사, 불국사역에서 10번 시내버스를 타고 갯마을 하차
② 승용차 (경내까지 진입 가능)
* 경부고속도로 → 경주나들목을 나와서 직진 → 고운교 직전에서 문천길로 우회전 → 화랑교
  직전, 갯마을에서 우회전 → 보리사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산 67 (갯마을길 41-30 ☎ 054-748-0794)


▲  대웅전 석가3존불과 후불탱

보리사의 법당(法堂)인 대웅전은 1981년에 지어진 것이다. 불단(佛壇)에는 금동석가3존불과 후
불탱화가 있으며 그들이 발하는 금빛에 가히 눈이 멀 지경이다. 석가3존불 우측에는 육환장(六
環杖)을 든 지장보살의 보금자리가 있으며, 좌측벽에는 신중도(神衆圖)도 걸려있다.

아무도 없는 대웅전의 고요함을 살짝 깨뜨리며
안으로 발을 들여 향을 피우고 석가3존불에게
예불을 올린다. 예불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소망도 살짝 넣어 그에게 내밀었다. 소망이 과
연 접수가 될련지는 미지수이지만 예불을 한 것
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석가3존불 우측에는 나의 시선을 붙잡아 맨 귀
여운 존재가 있었다. 바로 연꽃을 든 동자상이
다. <거의 동녀(童女)처럼 보임>
그는 자신의 키에 2배나 높은 연분홍 연꽃을 들
고 있는데, 부처의 법을 상징하는 조그만 코끼
리가 그 곁에 자리해 소소하게 동심을 자아낸다.
 

◀  연꽃을 든 동자상과 코끼리상


▲  보리사 3층석탑

대웅전 뜨락 우측에는 누렇게 바랜 3층석탑이 서 있다. 보통 법당 정면에 탑을 세우지만 보리사
는 다소 우측으로 치우쳐진 특이한 배치를 취했다.
이 탑은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끼워맞쳐 복원한 것이다. 없는 부분은 
새롭게 때웠는데, 2중의 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을 얹힌 전형적인 신라 후기 탑으로 하얀 빛
의 상륜부(相輪部)를 제외하고 오랜 세월의 때가 가득하여 제법 고색의 기운을 드러낸다.

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자비롭고 우아한 표정에 가슴을 설레게 하는
신라시대 명품 불상,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 보물 136호


보리사 경내 뒤쪽, 담을 두르고 있는 한층 높은 곳에 보리사에 든든한 밥줄, 미륵곡 석조여래좌
상(석불좌상)이 동쪽을 바라보며 자리해 있다. 동남산을 대표하는 석불로 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1,300년이란 나이가 정말 무색할 정도로 정정한 모습을 지녀 보는 이로 하여
금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 장대한 세월 동안 그를 괴롭힌 존재가 한둘이 아닐진데 어찌 저리 멀
쩡할 수가 있을까?
그의 건강비결이 사뭇 궁금해진다. 물론 그에게도 적지 않은 시련은 있었다. 그를 관리하던 절
보리사로 단정지울 순 없음―
은 거친 세월의 물결에 휩쓸려 가고 현재 보리사가 터를 닦기 전에
는 불상의 머리와 광배가 몸통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기품이 있는 신라의 귀족 여인을 모델로 한 것을 아닐까? 우아한 기품과 인자함이 서린 그의 표
정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기분 같아서는 그를 보쌈하여 우리집에 갖다놓고 싶지
만 그를 업다가는 자칫 내가 그에게 깔려 골로 갈 상황이니 감히 그러지도 못한다.

신라의 미소로 손색이 없으며, 남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 내세워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
는 미륵곡 석불은 신라 불상의 백미(白眉)라 일컬어지는 토함산 석굴암(石窟庵) 본존불과 크게
대비된다. 석굴암 본존불은 미소라기보단 나 같은 범인(凡人)들은 차마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위엄이 서려있다. 그 앞에서는 차마 두려워 머리를 조아리기 바쁠 것이다. 그에 반해 미륵곡 석
불은 그 누구라도 기꺼이 안아주고 보듬어 줄 것 같은 대인적인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그가 앉은 연화대좌(蓮花臺座)도 그를 닮아서인지 돌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아름답다. 마치 살
아있는 연꽃이 하늘로 향해 꽃봉오리를 펼쳐보이는 모습은 진짜 연꽃도 시샘할 정도이다. 대좌
높이는 약 1.35m로 그 밑부분에는 땅을 향해 꽃잎을 펼친 연꽃이 묘사되어 있다. 석불이 잠시
마실을 나간 사이에 살짝 앉아보고 싶지만 그가 좀처럼 일어날줄 모르니,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 있는 그는 앉은키 높이가 2.4m로 그의 머리는 나발(螺髮)
이다. 부처가 인도 사람이다보니 인도 사람의 머리스타일을 취한 것이다.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
가 큼지막하게 솟아 있다.
내면에서 우러나온 미소가 만면에 가득한 그의 얼굴을 살펴보면 가늘고 긴 눈썹 아래로 지그시
뜬 두 눈이 속세를 바라본다. 넓직한 이마 가운데로 둥그런 백호가 있으며, 코는 오목하고 적당
한 크기이다. 미소가 서린 입은 정말 단아한 모습으로 정말 훔치고 싶은 입술이다. 볼은 두툼하
고, 다소 두터워 보이는 목에는 삼도가 획 그어져 있으며, 그의 몸을 걸친 법의(法衣)는 주름이
섬세히 표현되어 있다. 다리 위에 사뿐히 놓은 그의 왼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상징한다.

석불이 기대고 있는 광배(光背)는 높이 2.7m, 폭 1.9m로 석불과는 다른 돌이다. 광배 역시 화려
함의 극치로 당초(唐草)무늬와 보상화문(寶相華紋), 화불 등이 마치 살아있는 줄기를 보듯 유려
(流麗)하게 묘사되어 눈길을 강하게 잡아 맨다.

미륵곡 석불에는 또 다른 불상이 교묘하게 숨어
있다. 분명 겉으로 봐서는 하나의 석불인데, 또
어디에 불상이 있는 것일까? 바로 광배 뒤에 새
겨진 마애불(磨崖佛)이 그 답이다. 자세히 보면
선으로 처리된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두 불상이 등을 맞대며 동거동락하는 신선한 형
태로 광배 뒤쪽에도 불상이 있는 경우는 이 땅
에서는 그 예가 거의 없어 매우 신선하게 다가
온다.
광배에 깃들여진 마애불은 약사여래(藥師如來)
로 그의 왼손에는 약합이 들려져 있다. 그런 이
유로 광배 앞에 있는 석불을 서방정토(西方淨土
)의 주인인 아미타불로 보기도 한다.

얼굴 부분은 마모가 심해 확인하기 어려우며 전
체 높이는 1.3m다. 미륵곡 석불과 마찬가지로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있다. 중생들의
병을 치료할 약이 담겨져 있을 약합을 소중히
간직한 약사불은 동방세계의 주인이다.

석불 부근에는 옛 보리사의 흔적으로 보이는 탑재 일부와 돌덩어리가 놓여져 있으며, 석불 주변
은 소나무가 울창하다.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인 소나무는 솔내음으로 불상 주변을 깨끗히 정화해
주며 그에 대한 흠모의 뜻을 표한다.


♠  보리사의 숨겨진 신라 후기 마애불
보리사 마애석불(磨崖石佛) - 경북 지방유형문화재 193호

▲  바위에 살짝 깃들여진 보리사 마애석불

보리사 경내를 둘러보고 부근에 숨겨진 마애석불을 보고자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마애불을
온몸으로 알리는 이정표의 안내로 청명한 기운이 서린 대나무 숲길을 지나 4~5분 정도 가면 이
정표가 없는 갈림길이 나그네의 마음을 혼돈으로 밀어넣는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마애불이 나
올까?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순전히 나의 판단에 의지해야 된다. 나름 직감이 좋기로 명성이
자자했지만 조금씩 늙어감에 따라 그 직감도 종종 헛탕을 칠 때가 있다.
여기서 확률은 반반. 길의 상태를 보니 오른쪽 길은 가파르고 폭도 가늘어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니 정답은 아닐 듯 싶다. 그에 반해 직선 길은 오른쪽 길보다 폭도 굵고 사람
들의 왕래도 조금은 있어 보였다. 하여 직선 길에 모든 것을 걸고 그만 직진을 해버렸다. 허나
그게 함정이었다.


▲  마애석불로 가는 대나무 숲길

마애불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를 잔뜩 품으며 열심히 길을 재촉했으나 아무리 가도 나올 생각
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깊이 들어설 수록 길의 상태도 우울해진다. 그런데 어디선가 까마귀 1
마리가 나타나 요란하게 까악까악~~!을 외치며 내 허공을 심상치 않게 맴도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내 머리 위에서 계속 맴돌며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이 수상하다. 내가
그의 영역을 침범하여 뚜껑이 열려 경고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뜻일까?
인적도 없는 궁벽한 산길에서 홀로 까마귀의 난데없는 태클을 받으니 오싹한 기분이 나를 엄습
하고 순간 염통이 쫄깃해진 나는 심상치 않다 여겨 서둘러 길을 돌렸다.

발걸음을 빨리 하여 다시 갈림길에 이르렀는데, 그래도 마애불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여 비탈진
왼쪽(진행 방향 기준)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방금 전만 해도 내 상공을
맴돌던 까마귀가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어쨌든 까마귀의 압박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
며, 산길을 오르니 그 길의 끝에 보리사 마애석불이 잔잔한 미소를 드리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
는 것이 아닌가?
아까 그 까마귀는 혹여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자 이를 알리고자 목을 터지라 소리를 질렀던 것
은 아닐까? 그는 사람 말을 할 줄 모르고, 나는 까마귀 말을 모르니 엉뚱한 길로 빠진 나를 깨
우치고자 까악~ 소리를 높여 갔고, 다시 길을 돌려 맞는 길로 들어서니 그제서야 소리를 접고
사라진 것이다. 물론 그의 영역을 침범하여 나를 쫓아내고자 그리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목적
이야 어찌되었든 까마귀의 경고로 마애불을 찾았으니 그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설마 마애불이
전설처럼 까마귀로 현신하여 길을 알려준 것은 아니겠지? 허나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면 그런
전설이 나돌지도 모르겠다.

보리사에서 남쪽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가파른
산자락에 절벽을 이룬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 바로 결가부좌를 튼 마애석불이 아늑히
들어앉아 속세를 굽어본다.
오르기도 쉽지 않은 비탈진 곳에 숨은 이 불상
은 미륵곡 석불보다 나중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
는 신라 후기 석불로 바위벽을 얕게 파서 불상
의 광배로 삼은 다음 1.1m 정도의 작은 불상을
돋음새김으로 새겼다.

머리 꼭대기에는 육계가 두툼히 솟아있고, 머리
칼은 꼽슬인 나발이다. 무지개처럼 살짝 구부러
진 눈썹 아래로 지그시 뜬 눈이 있으며, 다물어
진 입술에는 그만의 미소가 잔잔히 새어 나온다.
길쭉한 두 뒤는 어깨에 닿으며, 목에는 삼도가
굵직하게 그어져 있다. 법의(法衣)는 그의 몸을
덮고 있으며, 옷주름의 선이 부드럽다. 전체적
으로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선의 굵기가
희미해지고 있으며 아랫도리는 선명도가 좀 낮
다.

그가 앉아있는 대좌는 하늘을 향해 잎을 벌린 앙련(仰蓮)이 희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불상 앞
은 조금의 평지도 허락치 않는 급경사로 절을 하거나 예불을 올리기가 심히 마땅치 않다. 

불상 앞에 이르면 남쪽으로 배반평야가, 동쪽으로 낭산이 두 눈에 박힐 정도로 조망이 좋다. 마
애불의 존재를 아는 이가 적어 여기까지 기를 쓰고 올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보리사 경
내에 있는 미륵곡 석불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석불의 미소에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 보리사, 그의 건강과 단아한 미소가 미륵불이 온다는 56.7
억년 이후까지 지속되기를 소망하며 본글을 마무리 짓는다.


▲  마애석불에서 바라본 배반평야와 경주 남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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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5/10/24 17:25 | 경북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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