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봉 정상에 우뚝 자리한 거룩한 석불, 팔공산 갓바위 (선본사)

 


' 팔공산(八公山) 갓바위 '
팔공산 갓바위(관봉 석조여래좌상)
▲  갓바위(관봉 석조여래좌상)의 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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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제국(帝國)이 가을을 몰아내며 천하를 거의 접수하던 11월 끝 주말에 소원을 들어주기
로 명성이 자자한 팔공산 갓바위를 찾았다.
아침 일찍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대구행 일반고속버스를 타고 약 3시간 30분을 달려 서대구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서 경산시내버스 708번을 타고 대구(大邱) 시내를 동서로 가르며
1시간 정도를 달려 경산시 하양읍(河陽邑)에 도착, 다시 갓바위로 올라가는 경산시내버스 803
번(경산역,중산동↔갓바위)을 타고 약 40분을 달려 비로소 갓바위 종점에 이르렀다.

갓바위 종점은 해발 600m 고지로 선본사 바로 밑이다. 시내버스는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지만
일반 수레들은 약 1km 밑에 닦여진 주차장에서 바퀴를 멈춰야 된다. 물론 종점까지 진입도 가
능하나 수레를 세울 공간이 여의치 않다.
이 땅의 주요 불교 성지(聖地)로 격하게 추앙 받는 갓바위와 가까운 곳이라 아랫 세상과 공기
부터가 확연히 틀리다. 청정한 기운이 감돌아 잡다한 번뇌에 유린당한 나의 머리와 마음을 깨
끗하게 정화시켜준다. 물론 속세로 나가면 정화된 번뇌는 다시금 나를 범할 것이다.

갓바위 종점에서 길은 2갈래로 갈라진다. 왼쪽 길은 갓바위, 오른쪽은 선본사로 통하는데, 선
본사는 종점 바로 윗쪽이라 접근은 편하다. 그곳은 갓바위를 보고 내려올 때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무척이나 보고싶은 갓바위로 길을 잡는다. 여기서 갓바위까지 공식적인 거리는 800m이나
체감거리는 그 2배 이상으로 넉넉잡아 30분 정도 걸린다. 게다가 산길이 좀 가파르고 계단 또
한 많아 오르기가 썩 만만치는 않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갓바위를 향한 중생(衆生)들의 발길
을 막지는 못한다.

갓바위를 향해 20분 정도 오르다 보면 칠성각과 요사가 있는 갓바위 하단(下段)에 이른다. 갓
바위를 비롯하여 선본사에서 갓바위로 오르는 길목에 건물들은 모두 선본사 소속인데, 그중에
서 아래쪽에 있는 요사와 칠성각 구역은 하단이라 부르며, 하단과 갓바위 중간의 대웅전 구역
은 중단(中段), 갓바위를 상단이라 부른다. 이들 하단과 중단은 갓바위를 관리하고 그를 찾아
온 중생들의 편의를 위해 조성되었다. 그리고 선본사 경내와 갓바위 일대를 구분 짓고자 편의
상 선본사는 '본절', 갓바위 일대는 '웃절'이라 부른다. 쉽게 풀이하면 선본사는 본점(本店),
갓바위는 일종의 지점(支店)이 된다. 하지만 본점보다는 지점이 훨씬 사람이 많으며 그로 인
하여 지점의 규모는 본점을 훨씬 능가한다.


▲  갓바위로 오르는 산길 (계단길 이전)

◀  갓바위로 오르는 계단길
오색영롱한 연등이 갓바위까지 대롱대롱
이어져 중생들이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인도한다.


♠  갓바위 하단 (칠성각, 요사)

▲  'ㄱ' 모습의 요사

갓바위 종점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갓바위 하단에 이른다. 오르는 길은 처음에는 경사가 완만하
지만 중간에 계단길로 돌변하면서 각박한 속세살이처럼 조금 급해진다. 허나 바람이 불면 날아
갈 정도의 허약 체질이 아닌 이상은 누구든 오를 수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갓바위 하단은 1973년에 조성된 것으로 가파른 산자락에 터를 닦아 요사(寮舍)와 칠성각(七星閣
)을 지었다. 요사는 그런 경사에 지어진 탓에 3층이 되었으며, 칠성각과 맞닿은 제일 위층에는
공양간이 있는데, 갓바위를 찾은 중생에게 공양(供養)을 제공한다. 굳이 공양이 아니더라도 두
다리를 쉬며 이야기꽃도 피울 수 있는 휴식처의 역할도 하고 있으며, 갓바위 수요가 많은 탓에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시간은 변동될 수 있음)까지 언제든지 공양을 할 수 있다. (초파일과 대
학입시철, 기타 행사일에는 보통 새벽 1시까지 공양 가능)


▲  3가지의 이름과 용도를 지닌 칠성각(七星閣)

공양간 맞은편 높다란 기단(基壇) 위에는 칠성각이 자리해 있다. 이 건물은 1973년에 지어진 것
으로 1990년에 중수했다.
칠성각이라고 하지만 그건 건물 가운데인 어칸에만 해당되며, 건물이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은 산신각(山神閣), 우측은 용왕각(龍王閣)이다. 건물은 하나인데, 각 칸마다 건물의 이름
을 달리한 특이한 구조이다. 허나 칠성(七星)이 그 건물의 중심이기 때문에 칠성각으로 불린다.

칠성각은 칠성신(七星神)이 그려진 칠성탱화(幀畵)가, 산신각에는 산신탱화와 산신상, 용왕각은
바다를 지키는 용왕의 탱화와 용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산사(山寺)가 별로
연관도 없어보이는 용왕을 위한 공간을 둔 것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1802년 4월 초파일에 제작
된 200년 묵은 신중탱화(神衆幀畵)가 용왕탱 옆에 걸려있으나 건물 접근이 불가하여 보기가 힘
들며, 건물 밑에 촛불이 가득한 곳은 수각(水閣)이라 부른다.
칠성각 좌우로 돌로 만든 12지신상이 건물을 지키고 있고, 각기 모습이 다른 석등이 자리해 있
다. 예전에는 건물에 들어가 예불을 올렸지만 찾는 사람에 비해 건물이 너무 좁아 건물 접근을
통제하고 공양간 사이 뜨락에 넓게 예불 장소를 마련해 예불의 편의를 제공했다.
(매월 초순 음력 1~8일에만 삼성각을 개방함)

▲  칠성각 우측 계단에 늘어선 12지신상

▲  갓바위 하단에서 갓바위로
오르는 계단길


초를 피우는 공간에는 약 1,000개의 초가 앞다투어 자신을 불사르고 있고, 향을 피우는 공간에
는 향을 꽂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무수한 향이 연기를 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초와 향이 가득
한 것은 석가탄신일 외에는 정말 처음 본다. 향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지만, 초는 기도비를 내
야 된다. 물론 그냥 가져가도 된다. 하지만 적지 않게 눈치가 보인다. 시주금은 정해진 것은 없
지만, 많으면 많을 수록 절에서 기뻐할 것이다. 실제로 갓바위에서 일하는 신도 아줌마들이 기
도비를 많이 내라고 종용한다는 내용이 선본사 홈페이지에 올라와 시끄러운 적도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점심시간을 지나 13시이다. 시장한 배를 달래고자 공양간에 발을 들이니 많은 이
들이 공양을 하고 있었고, 공양간 한쪽 구석에는 등산객과 참배객 등이 삼삼오오 앉아 쉬고 있
었다. 공양줄도 길어서 2분 정도 지나야 비로소 공양밥을 가져올 수 있었다. 갓바위를 든든한
후광으로 삼아 수입도 짭짤하므로 공양밥도 제법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밥을 보고 그야말
로 경악을 하고 말았다. 겨우 밥에 씨레기국, 그리고 아주 잘게 썰은 시어빠진 무김치가 전부였
기 때문이다. 예전에 경기도 이천 영월암(映月庵, ☞ 관련글 보러가기)에서 먹은 저녁공양은 반
찬이 무려 10가지에 이르렀고, 다른 절집들도 그런데로 괜찮게 나왔는데, 돈을 그야말로 삽으로
쓸어담는 곳에서 그들의 소중한 손님인 중생들에게 제공하는 공양은 그들만도 훨씬 못한 것이다.
그 돈은 다 어디에 쓰이는지 공양 예산이 기껏해야 얼마나 된다고 중생에게 쓰기가 아까운 것일
까? 그렇다고 상다리가 아작날 정도의 진수성찬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
와야지 달랑 시어빠진 무김치는 뭐라 말인가..? 평소에도 공양밥이 저 지경으로 나오는지? 아니
면 그날의 메뉴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공양밥에 대한 보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고 여겨진다. 그것이 바로 갓바위부처의 뜻일 것이다.

하지만 공양이 저 따위로 나온다고 해서 나에게 꿩 대신 닭을 고를 여유는 없었다. 우선은 시장
한 배를 달래줘야 되니 그거라도 말끔히 먹어치웠다.

이곳은 공양을 마치면 자신이 먹은 그릇과 쟁반, 수저는 씻어야된다. 씻는 곳에도 버젓히 불전
함이 놓여져 애타게 돈을 원한다. 설거지를 하고 그릇과 쟁반, 수저 자리에 놓고 갓바위로 다시
길을 재촉한다.


♠  갓바위 중단 (대웅전, 3층석탑)

▲  갓바위 대웅전(大雄殿)

하단에서 계단을 5분 정도 오르면 가파른 산자락에 터를 닦은 중단에 이른다. 이곳은 해발 750m
고지로 웃절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이 있는데,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2층 규모의 맞배지
붕 건물로 윗층은 대웅전, 아랫층은 갓바위를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다.
이들 모두 근래에 조성되었으며, 조망(眺望)이 일품이라 선본사를 비롯하여 그곳을 둘러싼 산줄
기와 봉우리가 거침없이 바라보여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대웅전 뜰에는 석가탑을 닮은 3층석탑이 서 있으며,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천상세계의 석탑
처럼 장엄하게 다가온다. 대웅전에는 자비로운 모습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文殊
菩薩)과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대동한 3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  대웅전 앞 3층석탑

▲  대웅전 불단에 봉안된 석가3존불


▲  하단에서 중단 가는 길목에 자리한 애자모지장굴

대웅전으로 오르기 직전 오른쪽 바위에 조그만 굴이 있는데, 이를 애자모지장굴이라 그런다. 굴
안에는 유난히도 동자상이 많은데, 굴의 이름도 그렇고, 동자상도 그렇고, 아마도 어린 나이에
죽은 넋들을 달래는 공간인 듯 싶다.
동자상 외에도 다보탑과 부처상, 지장보살상, 금동불 등이 중간중간 자리를 채우고 있으며, 이
들은 모두 중생들이 손수 갖다놓은 것으로 굴 바로 앞에 저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불전함이 옥의 티처럼 놓여져 있다.


▲  대웅전 뒤쪽에서 바라본 능성재 산줄기
능성재에서 서쪽으로 가면 팔공산과 동화사로 이어지며, 동쪽은
은해사(銀海寺)와 백흥암(百興庵)으로 이어진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선본사 남쪽 산줄기

▲  중단에서 갓바위로 오르는 도중에 잠시 뒤를 돌아보다.

저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는 절이 바로 선본사이다. 내가 저기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니 거리는 고
작 800m 남짓인데, 정말 땅에서 하늘로 오른 것처럼 지극히 멀어 보인다. 갓바위는 수레가 오를
수 없기 대문에 저 밑에서 갓바위까지 케이블을 연결하여 물건을 실어 나른다.


♠  소원을 들어주기로 명성이 자자한 신라 후기 불상, 약사불의 성지(聖地)로
일컬어지는 갓바위(관봉 석조여래좌상) - 보물 431호

중단에서 5분 정도 오르면 관봉(冠峰, 852m) 정상인 갓바위이다. 선본사에서는 이곳을 상단이라
부르는데, 매서운 산바람이 석불을 희롱하는 800m 고지임에도 영험한 갓바위부처를 친견하러 구
름처럼 모여든 중생들로 갓바위의 열기는 태양처럼 뜨겁다. 이곳은 하늘과도 가깝고 주변이 모
두 눈 밑에 펼쳐진 산봉우리라 마치 수미산(須彌山) 정상의 부처의 세계나 하늘 세계에 들어선
기분이며, 아랫 세상과는 차원이 틀린 청정한 기운이 갓바위 주변을 진하게 맴돈다. 거의 신성
하고 거룩한 성지(聖地) 같은 갓바위부처는 근엄한 표정으로 힘들게 올라온 중생을 맞는다.

중생이 그들의 소망을 들이밀며 켜놓은 촛불은 주변의 산하(山河)를 능히 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하며, 향의 냄새는 관봉 주변을 가득 맴돈다. 촛불에서 녹아 내린 촛농은 하루 몇 가마에 이
를 정도이고. 하루 동안 소비되는 향은 가히 천하 최대급이다. 휴일에는 수천 명이 찾아와 예를
올리며, 평일에는 적어도 수백 명이 다녀간다. 특히 대학입시철에는 자식의 대학 급제를 소망하
고자 수능일 한달 전부터 수험생 부모들이 몰려들어 관봉이 무너질 지경이며, 4월 초파일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상황이 이러니 이곳에 뿌려지는 시주금과 기도금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성수기에는 최대 억단위
의 돈이 움직일 것이고, 비수기에도 최저 수백만 원이 갓바위 주변 불전함에 들어갈 것이다. 갓
바위를 배경으로 그렇게 돈을 쓸어담는 선본사가 중생들에게 제공하는 공양음식은 왜 저 모양인
지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

지금은 갓바위부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불상은 신라 후기
에 만들어진 이래 계속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인근 사람들이나 찾아올 정도로 인지도는 낮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 팔공산 북쪽에서 제2석굴암이 발견되면서 팔공산 일대에 불교문화유산을
본격적으로 뒤적거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1962년 갓바위부처가 발견되었는데, 그 당시 동
아일보를 비롯한 각종 신문들이 갓바위 발견을 특필로 다루었다.
그후 선본사에서 갓바위를 적극적으로 영험있는 석불로 홍보하면서 그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
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금처럼 성지화 된 것은 길어봐야 60년도 되지 않는다.

갓바위부처의 문화재청 지정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峰石造如來坐像)이다. 갓바위란 이름은
불상이 머리 위에 쓰고 있는 넓적한 돌덩이가 갓을 닮아서 유래된 것으로 관봉이란 이름은 갓바
위가 있는 봉우리란 뜻이다. 여기서 관(冠)은 모자, 갓을 뜻한다. 그가 둥지를 튼 관봉은 팔공
산(八公山)의 동남쪽 봉우리로 대구와 경산의 경계선이다. 높이가 852m(어떤 자료에는 851m)에
이르며, 산 정상에 자리하여 조망 하나는 끝내준다.

갓바위의 정체는 약사불(藥師佛)이다. 그의 왼손에 약사불의 필수품인 약합(藥盒)이 들려져 있
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본사는 갓바위를 내세워 약사도량(藥師道場)임을 내세운다. 허나 불상의
정체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미륵불(彌勒佛), 아미타불(阿彌陀佛)이라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슨 대수랴? 갓바위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소모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중생들의 소망
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데에 바쁘다.

불상의 조성시기는 선본사의 주장에 따르면 7세기 중반이라고 한다.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
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자 638년(선덕여왕 7년)에 조성했다는 것이다.
의현은 직접 불상을 제작했는데, 밤에는 학이 와서 그를 따스히 감싸주고, 낮에는 식량을 가져
와 먹여 살렸다는 거짓말이 전설로 전해온다. 허나 불상의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신라 후기인
8~9세기 석불로 보고 있다. 허나 그 장대한 세월에 비해 건강 상태는 제법 양호하여 나이에 비
해 많이 젊어보인다.

석불의 높이는 4m로 관봉에 있는 바위를 다듬어서 만든 것이다. 머리부터 그가 앉아있는 대좌(
臺座)까지 모두 하나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광배(光背)는 따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뒤
쪽에 병풍처럼 선 바위가 자연스럽게 광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광배를 만들지 않았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무견정상(無見頂相, 육계)이 큼직하다. 바로 그 위에 두께 15cm 정도의
얇은 돌이 모자처럼 얹혀져 있다. 물론 그 돌과 몸통은 하나의 돌이다. 얼굴은 미소는 전혀 찾
아볼 수 없는 석굴암(石窟庵) 본존불(本尊佛)보다 더 근엄하다. 위엄이 강하게 배여난 그 앞에
서는 감히 시선 조차 나누는 것도 두려울 정도로 나도 모르게 머리가 조아려진다.
얼굴의 양쪽 볼은 두툼하게 살이 있어 풍만해 보이며, 입술은 굳게 다물어 근엄함을 더욱 올려
준다. 눈은 살짝 감고 있고, 눈썹은 무지개처럼 곡선이 졌다. 그런 눈썹 사이로 둥그런 백호(白
毫)가 있다. 두 귀는 중생의 소원을 빠짐없이 듣기 위해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그어져 있다.

그의 어깨는 반듯하고 당당하며,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고
있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과 비슷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이 수인은 석굴암 본존불과 비
슷하다. 왼손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왼쪽 발 부근에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조그만 약합을 들
고 있다.
불상이 입은 옷은 통견(通肩)인데 두 팔을 거쳐 두 무릎을 덮고 대좌 아래로 흘러내렸으며, 가
슴 앞에는 속옷의 일종인 승가리(僧伽梨) 혹은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보인다. 불상 뒷면에는
옷의 표현이 없고 그냥 평면이다. 그가 앉은 대좌는 불상에 비해 작다.

거의 성지나 다름이 없는 갓바위, 허나 찾아오는 길이 쉽지가 않다. 험한 산을 올라야 되고, 그
길 또한 속세살이처럼 가파르다. 갓바위 주변은 바위가 많고 낭떠러지가 많아 늘 산악사고가 도
사렸다. 또한 예전에는 불상 바로 앞에 마련된 공간에서 예를 올렸는데, 그 공간이 매우 좁았다.
그러다가 최근에 석불 전방에 80평의 넓은 공간을 닦았으며, 바닥에 돌을 깔고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그리고 선본사에서 갓바위로 오르는 길을 정비하여 예전보다 많이 넓어졌으며, 계단과
철제 난간을 많이 보완했다. 그래서 예전에 비해 접근하기가 조금은 쉬워졌다.

석불 앞에 넓게 예불 공간을 마련하면서 석불 주변은 출입이 통제되어 그의 앞까지 다가설 수가
없게 되었다. 예불 장소와 석불 사이에는 초와 향을 피우는 장소가 좌우로 길게 마련되어 있으
며, 초를 팔고 그곳을 통제하는 신도 아줌마가 늘 자리를 지킨다. 불상 좌측 바위에는 중생이
붙여놓은 동전이 가득하며, 그 맞은편에 갓바위 주변을 관리하는 절 건물이 있다. 불상 우측에
는 청색을 띈 조그만 동종(銅鍾)이 있으며, 대구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다.


▲  갓바위부처 좌측 바위
중생이 붙여놓은 무수한 동전이 바위 여기저기에 자석처럼 붙어있다.

▲  갓바위에서 바라본 천하
선본사 북쪽 산줄기와 남쪽 산줄기 사이로 갓바위지구(경산 쪽)가 보인다.


갓바위를 보러 멀리서 왔으니 인사는 해야겠지, 그래서 향을 피우고 초에 불을 심어 거기에 소
박한 소망을 하나 붙여 인사를 올린다. 이렇게 하면 소망이 접수되는 것일까?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그 지성에 정도가 궁금하다. 정말 108배나 3,000배를 해야
소원이 접수가 되는 것인가? 그것도 아리송하다. 주변을 보니 방석을 펴고 염불을 외며 온종일
절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초는 갓바위 좌측 건물에 있는데, 시주금을 내고 가져 가라고 쓰여 있다. 나는 가난한 중생이라
그냥 가져와서 사용했다. 설마 소망도 돈을 낸 만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아무리 영험하다고 해도 예불을 하고 싶지 않다. 부처가 언제부터 돈장사를 했단 말인가?
부디 소망이 처리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기도로 뜨거운 성스러운 현장 갓바위를 떠났다. 그가
정말 명성대로 무병장수를 비롯한 소원 하나는 꼭 들어주는지는 알 수 없다. 소망이 이루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절반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안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 소원
은 이루어지지 않았음ㅠㅠ) 하지만 그들의 소망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갓바위 부처에게도 은근
히 부담이 될 것이다. 괜히 선본사에서 요란하게 홍보한 탓에 갓바위만 피곤하게 된 것은 아닐
까 싶다.

참고로 믿거나 말거나 설화를 더 덧붙이자면 갓바위 밑동네인 와촌에 가뭄이 들면 팔공산 관봉(
갓바위)에 불을 지르고 새까맣게 태운다. 그러면 용이 갓바위를 씻고자 비를 내린다고 한다. 또
한 갓바위(양)와 불굴사(음)를 같은 날에 찾아 예불을 하면 소원성취를 한다고 한다. 왜냐면 풍
수지리적으로 갓바위는 팔공산의 양의 기운을 품고 있고, 불굴사(佛窟寺) 자리는 팔공산의 음의
기운을 품고 있는 요지라서 그렇다고 한다.


▲  갓바위를 뒤로하고 선본사로 내려가다.


♠  갓바위를 후광으로 든든하게 절을 꾸리는 오랜 절집
약사도량을 표방하는 ~ 팔공산 선본사(禪本寺)

갓바위 종점과 지척인 선본사는 팔공산에 둥지를 튼 오랜 절집의 하나이다. 조계종(曹溪宗) 소
속으로 갓바위를 든든한 밥줄로 삼아 절을 꾸리고 있는데,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여러 건물
들은 모두 선본사 소속이며, 갓바위 역시 이곳에서 관리하고 있다. 선본사란 절 자체는 작지만
그 범위는 상당하며, 갓바위 지구와 구별하기 위해 선본사를 본절(본점), 갓바위를 웃절(지점)
이라 부른다. 허나 지점이 더 손님이 많고 수입이 훨씬 많다. 그리고 건물의 규모도 본점을 능
가한다. 그에 비해 본점은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본점보다는 지점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
고 있는 실정이다.

선본사는 신라 소지왕(炤知王) 13년인 491년에 극달화상(極達和尙)이 세웠다고 한다. 허나 이를
입증할 증거를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나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극달화상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며, 그 시절에는 신라에 고구려 불교가 전파되긴 했으나 서출지(書出池)의 전설처럼 고구려
불교는 한참 축출되던 시기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어찌 신라의 영역인 이곳에 절이 세워질 수
있겠는가? 참고로 산 너머의 대구 제일의 고찰 동화사(桐華寺)도 극달화상이 창건했다고 우기고
있다.

그럼 언제 창건되었을까? 경내와 주변에 흩어진 여러 석조유물(불상 대좌와 석등, 극락전 뒤쪽
의 오래된 석축)과 절 남쪽 노적봉에 있는 3층석탑을 통해 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3층석탑은 8세기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비록 절과 떨어져있지만 이곳과 관련이 있는 유
물로 여겨진다. 석조유물 역시 8~9세기 것으로 보이며, 절을 세운 극달이란 인물은 신라 후기에
활동했던 승려로 짐작된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는 내력이 남아있지 않으며, 17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사적이 보인다.
우선 1614년에 수청(秀廳)이 절을 중수했다. 1766년 기성화상(箕成和尙)이 중건했으며, 1802년
(순조 2년)에 일암당(日庵堂)이 국성(國成) 등과 함께 신중탱화를 조성했다. 그 탱화는 현재 갓
바위 칠성각에 있다. 그 이후 1820년과 1877년에 중수했으며, 1970년 이후 갓바위 부근에 불전
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산신각과 요사, 선방 등 7~8동의 건물이 있으며, 갓바위 지
구(웃절)에는 8~9동의 불전이 있다. 소장문화유산은 관봉 꼭대기의 갓바위부처(관봉석조여래좌
상)와 노적봉 부근의 3층석탑(경북지방유형문화재 115호)이 있으며, 불상의 대좌와 석등의 좌대
(座臺) 등 신라 후기 석조 유물이 여러 점 존재한다.

갓바위를 관리하는 본절이지만 오히려 갓바위의 그늘에 제대로 가려 경내는 썰렁하다. 허나 고
요하고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제대로 누릴 수 있으며, 사람들로 늘 북적거려 기도를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 갓바위와 달리 마음 편히 예불을 올릴 수 있다.

※ 갓바위, 선본사 찾아가기 (2014년 12월 기준)
① 하양 경유
* 대구 1호선 안심역(4번 출구)에서 55, 508, 518, 555, 708, 808, 814, 818번 시내버스를 타고
  하양터미널이나 하양초교 하차, 길 건너에서 갓바위행 803번 시내버스(30분 간격) 이용
* 동대구역에서 708번(역 맞은편 정류장) / 814, 818번(역 바로 앞) 시내버스를 타고 하양에서 
  803번으로 환승
* 갓바위 종점에서 선본사는 바로 보이며, 갓바위까지 걸어서 30분 소요
② 경산시내 경유
* 대구 2호선 영남대역(4번 출구)과 경산역(경부선)에서 803번 시내버스 이용
③ 대구 갓바위 경유
* 대구 1,2호선 반월당역(2,13번 출구), 대구역(대구역전우체국) 맞은편, 동대구역(북쪽 지하도
  정류장), 1호선 아양교역(2번 출구)에서 401번 시내버스를 타고 갓바위 종점 하차, 갓바위까
  지 등산 1시간 소요
* 주말과 휴일에는 401번 축소판 노선인 팔공2번 시내버스(갓바위↔아양교역↔동대구역 북쪽 지
  하도 정류장)가 추가 운행된다. (평일과 겨울에는 운행안함)
④ 승용차로 가는 경우
* 경부고속도로 → 경산나들목을 나와서 하양 방면 → 금락4거리에서 우회전 → 동서교차로에서
  와촌 방면(한사들길) 좌회전 → 동강교차로에서 갓바위 방면 좌회전 → 신한교차로에서 우회
  전 → 갓바위 주차장
* 포항대구고속도로 → 청통와촌나들목을 나와서 하양방면 → 동강교차로에서 우회전 → 신한교
  차로에서 우회전 → 갓바위 주차장
* 대구시내 → 영천방면 4번 국도 → 동서교차로에서 와촌 방면(한사들길) 좌회전 → 동강교차
  로에서 좌회전 → 신한교차로에서 우회전 → 갓바위 주차장

★ 갓바위, 선본사 관람정보 (2014년 11월 기준)
* 갓바위 지구(경산)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비 있음)
* 갓바위까지 걷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면 경산 쪽을 추천한다.
* 매년 10월에는 선본사와 갓바위 주차장 일대에서 '갓바위 소원성취 축제'가 열린다. 소원기원
  제와 산사음악회, 다례봉행, 법회, 민속놀이와 전통체험, 다례봉행, 승무공연, 연등만들기 등
  의 프로그램이 있으며, 보통 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 선본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587
 (선본사 종무소 ☎ 053-851-1868, 중단 종무소 ☎ 053-853-9877, 갓바위 ☎ 053-851-1869)

* 선본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흔쾌히 클릭한다.


▲  아래서 바라본 선본사 선정루(禪定樓)

경내로 들어서려면 선정루의 아랫도리를 지나야
된다.
이 건물은 가파른 언덕에 지은 것으로 자연히 3
층을 이루고 있는데, 아래층에는 부처의 경호원
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있으며, 건물 위쪽은
부처의 중생구제를 향한 메세지가 담긴 사물(四
物, 범종, 운판, 법고, 목어)의 보금자리로 종
각의 역할을 한다. 이 건물은 1988년에 지어졌
으며, 그 이전에는 계단만 덩그러니 있었다.

▲  선정루의 측면

 


▲  청기와가 입혀진 선본사 극락전(極樂殿)

선정루를 올라서면 극락전 앞뜰이다. 좌우로 종무소와 공양간이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극락전
좌측에는 조촐한 모습의 산신각이 있다.

극락전은 선본사의 법당으로 1985년에 지어졌다. 불단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 아미타불
(阿彌陀佛)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로 대동하고 앉아 있으며, 뒤쪽에 후불탱화가 든든하
게 자리해 있다. 후불탱화 외에 신중탱화와 관음보살도, 문수보살도와 보현보살도 등이 내부를
수식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1987년에 제작되었다. 다른 불전과 달리 푸른 기와가 입혀져 있
어 단연 돋보인다.

▲  종무소(宗務所)

▲  공양간을 갖춘 선방(禪房)


▲  갓바위와 달리 자애로운 모습의 극락전 아미타3존불

▲  극락전 계단 우측의 석등 아랫도리

▲  극락전 계단 좌측의 석등 아랫도리

극락전 계단 좌우에 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석등의 아랫도리가 있다. 윗도리는 장대한 세월의 거
친 흐름 속에 휩쓸려 사라지고 간신히 좌대(座臺)라 불리는 아랫도리만 간신히 남아 신라 석등
의 아름다움과 선본사의 오랜 내력을 가늠케 한다. 기단에는 연꽃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연꽃의 향기가 아련히 풍기는 듯 하다.


▲  단촐한 모습의 산신각(山神閣)

극락전 좌측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단촐한 크기의 산신각이 있다. 예전에는 산령각(山靈閣)
이라 불렸으며 지금의 건물은 1985년에 새로 지었다. 내부에는 산신탱과 독성탱이 나란히 자리
를 지키고 있으며, 건물 왼쪽 벽화에는 조선 철종(哲宗) 때 효성이 지극했던 도효자(都孝子)가
어머니가 원하는 홍시를 구하고자 호랑이를 타고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니 살펴보기 바란다.


▲  산신탱(왼쪽)과 독성탱(오른쪽)

▲  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서로를 등진 석불과 동자상,
이제는 제발 화해를 하고 서로를 챙겨주면 좋지 않을까?


선본사는 갓바위와 달리 관람이 금방 마무리되었다. 종점으로 나오니 속세로 나가는 803번 시내
버스가 막 중생을 태우고 있었다. 다음 차를 탈까하다가 선본사에 더 이상의 미련이 없어 그 차
를 타고 아비규환의 속세로 내려갔다.
갓바위로 들어올 때와 달리 하양을 지나 경산역에서 내렸으며, 경산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무궁
화호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하여 갓바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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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4년 11월 27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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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4/12/07 16:43 | 경북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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