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해송,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 경승지, 부산 몰운대 (다대포해변)

 


' 부산 몰운대(沒雲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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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운대 동쪽 화손대 해변
* 다음블로그글 보러가기 http://blog.daum.net/snowlove78/13757931


여름의 제국이 한참 기반을 닦던 6월의 한복판에 천하 제일의 항구도시인 부산(釜山)을 찾았
다. 경부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경북 청도(淸道)에서 잠시 가던 걸음
을 멈추고 물맞이 명소로 유명한 남산 낙대폭포(☞ 관련글 보러가기)를 만났다. 그런 다음에
다시 남쪽으로 달리는 열차에 의지해 오후 늦게 부산에 진입했다.

부산에 들어와 형님에게 연락을 취하니 남포동 국제시장(國際市場)으로 오라고 그런다. 그래
서 부랴부랴 그곳으로 가 형님을 만나고 그의 지인 3명과 함께 부산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족
발집에서 족발에 곡차(穀茶)를 겯드리며 회포를 풀었다. 알콜이 어느 정도 누적된 우리는 인
근 파전집에서 동동주에 파전을 먹으며 2차를 치렀고, 자정이 넘자 택시를 잡아 타고 서면으
로 이동하여 바(bar)에서 3차를 즐겼다. 거기서는 맥주를 무려 5병이나 섭취했다.

새벽 2시가 넘자 술에 쩔은 몸을 택시에 담고 광안동(廣安洞) 형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
자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보니 글쎄 방바닥에 엎어진 채로 자고 있던
것이 아닌가..? 거실에 덮고 자라며 이불이 깔려져 있었는데, 왜 그 좋은 데를 놔두고 이런
차가운 바닥에서 불쌍하게 자게 된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는 과음으로 3시 이후 필
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라 거실에 들어가 이불을 똘똘 말고 몇시간을 더 취침하니 술에서 완전히
해방된 듯 정신이 개운하다. 술은 정말 떡이 되도록 과음을 했지만 부산 소주가 뒷끝이 덜하
다보니 술은 금방 깬다. (서울 소주 같으면 다음날 하루 종일 시체놀이 해야됨)

해가 중천(中天)에서 손짓할 무렵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그날 목적지인 다대포(몰운대)로 출
발했다. 여기서 다대포까지는 거리가 멀어 빠르고 편하게 가고자 급행좌석버스를 이용했는데,
광안역에서 1001번 좌석버스(청강리↔하단,동아대)를 타고 부산역에서 1000번 좌석버스(다대
포↔서면)
로 환승하여 1시간 정도에 다대포해수욕장 정류장에 두 발을 내린다.
여기서 서쪽 백사장이 다대포해수욕장이고, 나무가 우거진 동쪽 언덕이 바로 몰운대인데, 몰
운대는 예전에 2번이나 와본 적이 있어 결코 낯설지가 않은 곳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횟집거
리(몰운대1길)를 지나야 되는데, 이곳은 꼼장어구이가 매우 유명하다.


▲  몰운대 서쪽에 자리한 다대포(多大浦)해수욕장
다대포해변은 곧 다가올 피서철에 대비하여 한참 몸단장 중이었다.
바다 너머 안개 속에 얇게 몸을 드러낸 산은 부산신항만 개발로
한반도의 일원이 된 가덕도(加德島, ☞ 관련글 보러가기)이다.


♠  부산 서남 해안 제일의 경승지 - 몰운대(沒雲臺)
부산 지방기념물 27호

▲  쭉쭉 뻗은 송림의 터널 - 몰운대 산책로

몰운대는 부산 본토 서남쪽 끝으머리에 자리한 해안 언덕(해발 78m)으로 남해바다와 낙동강(洛
東江) 하구가 만나는 부분에 자리한다. 울창한 송림(松林)과 기암괴석,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경승지로 해운대(海雲臺), 태종대(太宗臺)와 더불어 부산 3대(臺)로 꼽히며, 만주에서 시작된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동남쪽 종점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몰운도(沒雲島)란 작은 섬이었으나 낙동강에서 떠내려 온 토사가 쌓이면서 육지인
다대포와 이어져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일부가 되었다. 육지가 된 시점에 대해서는 16세기 정도
로 여겨지며, 고구마로 유명한 조엄
(趙樟)의 해사일기(海槎日記)에는 신라 이전부터 조그만 섬
이었다고 나온다. 그는 몰운대를 두고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을 하는 것 같다'며 찬
사를 아끼지 않았다.

몰운대란 이름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면 그들에 잠겨 대(또는 섬)이 보이지 않는다
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즉
구름에 잠긴 대(또는 섬)란 시적(詩的)인 뜻이 된다. 또한 이순신(李
舜臣) 장군의 부하 장수로 여러 해전에서 이름을 떨친 정운(鄭運)이 몰운대의 이름을 듣고는 몰
운대의 운(雲)과 자신의 이름인 운(運)이 음이 같다며 아몰대(我沒臺)라 했다고 한다. 아몰대는
즉 '내가 사라지는 대'란 뜻이니 그 의미가 대충은 맞아 떨어진 것일까? 1592년 10월 1일 부산
대첩 때 전사하고 만다. 그때 이순신 수군은 바로 몰운대 앞바다에서 왜군을 격파하며 지나갔다.

몰운대 중앙 부분에는 다대포객사가 있고, 남쪽 끝으머리에는 부산대첩 때 전사한 정운의 순의
비(殉義碑)가 있다. 원래 순의비 주변 해안가를 몰운대라 일컬었다. 그리고 동쪽에는 화손대(花
孫臺)가 있는데, 이곳은 몰운대와는 별개의 장소이나 몰운대의 일원으로 묻힌지 오래되었으며,
서쪽에는 넓은 백사장의 다대포해변이 펼쳐져 있고, 육지와 연결된 북쪽에는 횟집거리와 다대1
동 아파트단지가 있다.


참고로 다대포해변과 몰운대 사이에서 신석기시대와 철기시대(鐵器時代)에 만들어진 패총(貝塚,
조개더미)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1934년 홍수로 거진 사라졌으며, 왜정(倭政) 때 발굴
된 유물은 동아대 박물관에 가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 1966년에 발굴조사를 1차례 더 벌였다.


▲  해송(海松) 솔내음이 그윽한 몰운대 산책로
몰운대로 들어서면 해송에서 우러나오는 솔내음의 향이 후각을 즐겁게 해주며
시원한 바닷바람이 땀의 염통(간)을 제대로 쫄깃하게 만든다.


▲  몰운대 시비(詩碑)
조선 선조 때 동래부사(東萊府使)를 지낸 이춘원(李春元)이 몰운대를 찬양하며
지은 시가 담긴 표석으로 1999년 6월 사하지역발전협의회에서 세웠다.

浩蕩風濤千萬里
白雲天半沒孤臺
扶桑曉日車輪赤
常見仙人賀鶴來

호탕한 바람과 파도가 천리, 만리로 이어졌는데
하늘과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 부산 지방유형문화재 3호

몰운대 산책로를 따라 10분 정도 들어가면 다대포객사라 불리는 기와집이 나그네를 맞는다. 몰
운대의 중심 부분에 해당되는 곳으로 객사(客舍)란 제왕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봉안하고 출
장 나온 관리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관사이다. 고을과 규모가 큰 진(鎭)에 설치하는데, 이 객사
는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며, 1825년에 중수했다고 전한다.
원래는 다대포진(多大浦鎭)의 중심지였던 지금의 다대초등학교 자리에 첨사청(僉使廳, 다대포
첨사가 공무를 보던 관청)과 나란히 있었으나 1904년 다대포사립실용학교(현 다대초교)가 들어
서면서 학교 건물로 쓰였다가 1970년 부산시교육위원회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후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했으며, 부산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객사 건물로 가치가 크다.

다대포객사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회원관(懷遠館)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
데 객사와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여 이 건물이 과연 객사(회원관)가 맞는지 여전히 의문의 꼬리
를 가지고 있다. 1970년에 첨사청 건물을 가져와 객사로 둔갑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뻥뚫려
있는 모습은 궐패를 봉안한 정당(正堂)과 좌우 익사(翼舍)를 거느린 객사라기보다는 정자에 가
까운 모습이란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부산시청에서는 '이 건물이 회원관이란 명백한 근거는 없으나 현 객사가 첨사청이
었다는 주장도 일부 주민의 이야기일 뿐, 이를 뒤집을 만한 근거는 안된다'고 해명을 했다. 또
한 객사가 뻥뚫린 모습을 하게 된 것은 1904년 이후 학교 건물로 사용되면서 벽이 개축되어 원
형을 잃었기 때문에 지붕과 기둥만 원형대로 살렸다고 그런다. 즉 이 건물이 100% 객사가 아니
라는 것이다. (첨사청일 가능성도 크지만 객사가 첨사청의 일원인 경우는 그게 그거임, 1980년
대 부산 관련 여행서적에는 다대포객사가 아닌 첨사청으로 많이 나왔음)

참고로 다대포진은 경상좌도(慶尙左道) 7진(七鎭)의 하나였다. 왜군의 공격을 막기 위한 요새로
다른 진보다 2배의 병선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대포진을 관리하는 첨사(僉使)는 정3품으로 다른
첨사보다 관등(官等)이 높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와 거의 동격인 대우를 받았다. 그만큼 다
대포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1592년 4월 14일, 왜군이 다대포를 공격하자, 당시 다대포첨사(僉使) 윤흥
신(尹興信, ?~1592)이 필사적으로 방어를 했으나 머릿수에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함락되고 만
다. 그는 첨사청(僉使廳)과 객사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마구 던지며 끝까지 분전했으나 결국 장
렬히 산화했으며, 그의 아우 윤흥제(尹興悌)도 난군(亂軍) 중에 전사했다.

객사 주변에는 보호철책을 둘러 속인(俗人)의 접근을 막았으나 근래에 개방하여 신발을 벗고 들
어갈 수 있다. (상황과 시기에 따라 통제될 수 있음) 더운 여름에 객사 마루에 누워 시원한 바
닷바람을 벗삼아 낮잠 한숨 청하면 정말 꿀맛일 거 같은데, 낮잠이나 간식을 먹는 행위는 통제
되어 있으니 결례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  잘 다져진 석축 위에 안착한 다대포객사

다대포 객사를 둘러보고 앞으로 나오면 넓은 공터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동쪽)으로 가면 화손
대와 자갈마당이 나오고, 직진(남쪽)하면 몰운대 남쪽에 자리한 정운공(公) 순의비를 만날 수
있다. 허나 아쉽게도 남쪽 구역은 해군부대가 있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를 못보
는 마음이 무척 아쉽기는 하지만 어찌하리. 남쪽으로 가려는 발을 억지로 멈추고 동쪽으로 방향
을 틀었다.

정운공 순의비는 비록 출입통제구역이지만 1년에 딱 1번 들어갈 수 있다. 바로 그의 향사(享祀)
를 지내는 음력 9월 1일이다. 그날은 그가 부산대첩에서 전사한 10월 1일을 음력으로 계산한 것
으로 사하구청의 주관으로 해군의 도움을 받아 제사를 올린다. 이때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
도 들어가 제향과 순의비를 관람할 수 있으며, 제례에 참여하거나 구경한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
공하는데, 맛이 꽤 좋다고 한다. 다음에 그의 기일(忌日)에 맞춰 이곳을 찾을 생각이긴 한데,
그게 과연 언제가 될지는 장담 못하겠다.

정운공 순의비
▲  속세에 1년에 딱 하루 공개되는 정운공 순의비 - 부산 지방기념물 20호
(부산 사하구청 홈페이지 사진 참조)

다대포객사 공터에서 왼쪽(동쪽) 길로 2분 정도 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바닷가에 있어서 그런지
약간 짠 맛이 나지만 그래도 시원하여 마실만은 하다. 그 약수터를 지나 바다 쪽으로 길게 튀어
나온 곳으로 가니 오른쪽에 자갈마당이라 불리는 자갈밭이 펼쳐져 있다.

자갈들이 곱게 입혀진 자갈마당은 옛날에 친구와 놀았던 추억이 서린 곳으로 바닷가로 내려가는
계단이 태풍으로 망가진 것 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자갈밭 주변 바위
와 벼랑에는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듯 낚시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잡혔으려나..?

자갈밭에서 동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사방이 바다로 막힌 침운대(沈雲臺)가 나온다. 침운대는 구
름이 잠긴다는 뜻으로 대(臺) 정상에는 버려진 군사시설이 있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바다를 바
라보며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분위기를 우려내고 있으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여기서는 구평동 두송반도와 암남공원, 멀리 영도 태종대까지 시야에
들어오며 감천항과 다대항으로 들어서는 배들이 보인다.

이렇게 자갈마당과 침운대 구역을 둘러보고 화손대 방면 오솔길을 거닐어 본다. 자갈마당에서
화손대입구까지는 약 1km, 오솔길 동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길 양쪽으로 숲이 무성하다.
그 오솔길을 절반 정도 가다보면 몰운대의 명물인 구름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약 10m 정도
되는 조그만 다리지만 사람이 건널 때마다 흔들거려 흔들다리라는 흔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런 다리는 송도에 있는 암남공원에도 있으며, 다리 밑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으나 말라버린 상태
이다.

구름다리를 건너서 10분 정도 가면 화손대 입구가 나온다. 화손대는 몰운대 동쪽으로 길게 튀어
나온 곳으로 낚시터로 명성이 높다. 몰운대를 지금까지 3번이나 발을 들였지만 화손대는 귀찮다
는 명분으로 가지도 않아 이번에 들어가보기로 했다.


▲  바다와 자갈의 속삭임이 살며시 들려오는 자갈마당

▲  자갈마당 너머로 보이는 큰 섬은 쥐섬, 그 옆에 작은 섬은 동호섬이다.

▲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없는 통금의 땅, 몰운대 남쪽이 보인다.

▲  침운대에서 바라본 남해바다
자연이 빚어 띄워놓은 조각배 같은 섬들(동섬, 등대섬)이 앞바다를 수식한다.

▲  등대가 자라고 있는 등대섬
바다에 잠기기 쉬운 한줌도 안되는 바위섬에 뿌리를 내린 조그만 등대.
겉모습은 보잘 것 없지만 몰운대 앞바다를 지나는 배들의 안전을 위해
오늘 밤도 밤길을 비추며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

▲  동섬(왼쪽), 쥐섬(가운데), 동호섬(오른쪽) 형제
아비규환의 속세를 등지고 저런 섬에 숨어들고 싶은 마음이 종종 일어난다.
허나 현실은 그와 반대 ~~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  침운대 바위 해변
바로 가까이에 화손대가 보이고, 그 너머로 두둥실 떠있는 모자섬과 구평동 두송반도가,
저 멀리 희미하게 모습을 비춘 곳은 영도 태종대이다. 이른 피서객과
강태공(姜太公)들이 자리를 점거하며 한가로운 주말 오후를 보낸다.

▲  몰운대 흔들다리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흔들다리를 깨우면 변함없이 삐꺽삐꺽 소리로 약간의 미동을
보이며 화답을 건넨다. 그래서 흔들다리이다.


♠  몰운대의 동쪽을 도맡고 있는 화손대(花孫臺) 둘러보기

▲  화손대로 인도하는 호젓한 숲길

화손대입구에서 오른쪽(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동안 몰운대 속의 미답지로 남아있던 화손대를
가보기로 했다. 그곳으로 가려면 제법 가파른 고개를 하나 넘어야 되는데, 나무가 삼삼하게 우
거져 거의 숲터널을 이루고 있다. 숲터널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군헬기장이 나오고, 여기서부터
내리막 길이 각박한 속세살이처럼 급하게 이어진다. 내리막 길의 끝에는 바다가 눈 앞에 보이면
서 1명 정도 갈 수 있는 해안 벼랑길이 펼쳐지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몰운대의 동쪽 끝인 화
손대에 이르게 된다. 벼랑길은 다소 위험하고 난간 같은 시설이 부족하므로 각별히 주의가 필요
하다.

화손대는 높다란 대(臺)나 정자가 아닌 바위로 이루어진 해안가이다. 남쪽은 벼랑으로 이루어져
있고, 벼랑길 북쪽은 칼로 싹둑 다듬은 듯 넓은 반석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낚시터로 유명하여
강태공들의 발길이 잦으며, 감성돔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예전에는 숭어잡이도 쏠쏠했으나 가
덕도 개발로 이제는 구경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곳에 이르면 다대포항과 구평동 두송반도, 다대조선소 등이 가까이에 보이며, 방파제와 이어
진 팔봉섬을 비롯하여 솔섬과 고래섬 등의 작은 섬이 주변을 수식한다.


▲  유연하게 구부러진 자연터널 숲길

▲  화손대 바라본 모자섬
쥐섬보다 작은 조그만 무인도로 작은 암초를 여럿 거느리고 있다.

▲  화손대에서 바라본 몰운대 남쪽과 침운대
몰운대가 겉으로 보기에는 작아 보이긴 하지만 이렇게 보면 은근 넓은 지역이다.
바다 건너 침운대(자갈마당)에서 화손대까지는 넉넉잡아 20분 거리이다.

▲  화손대 해변에서 바라본 모자섬
이렇게 보니 마치 고슴도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  화손대 해변에서 바라본 풍경
솔섬(사진 왼쪽)이 육지 가까이에 붙어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구평동 두송반도와
암남공원이 보인다. 그리고 저멀리 태종대(오른쪽에 튀어나온 부분)가
살며시 모습을 비춘다.

▲  화손대 해변으로 내려가는 벼랑길

▲  낚시삼매에 빠진 강태공들

▲  넓은 반석으로 이루어진 화손대 해변


▲  화손대 북쪽 해변
여기서 더 이상 해변을 타고 가는 건 불가능하다.
산과 바다에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  카메라 셔터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고요하기만 한 화손대
파도소리만이 철썩철썩 고요를 깨뜨리며 바위와 정을 속삭인다.

▲  화손대 앞바다
저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꿈꾸는 무슨 세상이 감춰진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보면 정말 지구가 둥글긴 둥근 모양이다.

▲  몰운대 산책로 (화손대입구에서 몰운대입구 방향)
집으로 몰래 가져와 두고두고 누리고 싶은 산책로이다.

▲  몰운대 산책로 (화손대입구~몰운대입구)
몰운대는 통제구역인 정운공 순의비와 화손대를 제외하고는 산책로가
잘 닦여져 있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  몰운대 횟집거리에서 먹은 꼼장어의 위엄

몰운대를 2시간 가량 둘러보고 속세로 나오니 시장기가 무척 돋는다. 안그래도 밥을 일찍 먹고
나와서 허기가 쩔었는데, 나들이에 따른 허기짐까지 더해지니 견디기가 괴로울 지경이다. 그래
서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다가 다대포의 명물인 꼼장어구이를 먹기로 했다.

꼼장어가 나오기에 앞서 메추리알과 당근, 김치 등의 밑반찬이 깔리자 이들을 주섬주섬 먹고나
니 맵게 꾸며진 꼼장어구이가 나타난다. 조금 맵긴 해도 맛은 그런데로 괜찮았는데, 시장기가
상당하여 꼼장어와 함께 버무러진 파와 양파까지 말끔히 비웠다. 거기에 맥주 1잔 겯드리니 목
구멍이 즐겁다고 쾌재를 외친다.
꼼장어를 다 먹고 밥을 2개 볶아서 먹었는데, 이또한 맛이 일품이다. 밥까지 싹 비우고, 커피 1
잔 마시며 식곤증의 희롱을 잠시 즐기다가 길을 나섰다. 비가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그렇게 걱정
할 수준이 아니라서 서면 근처의 정묘사(鄭廟祠)로 길을 옮겼다. 이후 부분은 사정상 생략하며,
몰운대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몰운대, 다대포 찾아가기 (2013년 7월 기준)
* 부산지하철 1호선 신평역(4번 출구)에서 2, 11, 338번 시내버스를 타고 다대포해수욕장 하차
* 부산지하철 1호선 당리역(사하구청) 5번 출구에서 11번, 3번 출구에서 2번 시내버스 이용
* 부산지하철 1호선 괴정역(6번 출구)에서 96번 시내버스 이용
* 부산서부터미널(2호선 사상역 5번 출구를 나와서 180도 뒤쪽)에서 338번 시내버스 이용
* 부산역(1호선 부산역 5번 출구)에서 2, 1000번 시내버스 이용
* 다대포해수욕장과 몰운대 입구에 주차장(488대 수용) 있음 (몰운대까지 접근 불가)

★ 몰운대, 다대포 관람정보 (2013년 7월 기준)
* 다대포해수욕장 개장시기는 7~8월
* 몰운대 남쪽 정운공 순의비는 제향일인 음력 9월 1일 낮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 다대포의 새로운 명물인 다대포꿈의낙조분수는 음악과 조명에 맞춰 분수 물줄기가 춤을 추는
  부산 최초의 음악분수로 물높이가 최대 55m에 이르며, 시민들의 신청곡 및 사연을 접수받아
  음악분수공연에 반영한다.
* 꿈의낙조분수 공연시간 (2013년 여름 기준, 매주 월요일은 쉼)
① 체험분수 - 매일 6회 (11시, 14시, 15시, 16시, 18시, 평일 야간 음악분수 공연 후 1회 / 주
   말에는 야간 음악분수 1부 공연 후 1회, / 회당 10~20분)
② 음악분수 - 매일 20시 (주말과 공휴일은 20시, 21시로 20분씩 운영)
* 꿈의낙조분수 문의는 ☎ 051-220-5891~2 (낙조분수 홈페이지는 ☞ 이곳을 클릭)
* 몰운대 소재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산144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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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니터 크기와 컴퓨터 사양에 따라 글이 조금 이상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 공개일 - 2013년 7월 1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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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3/07/18 20:32 | 부산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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