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의 속살처럼 아름다운 비경의 폭포 ~ 삼척 미인폭포 (여래사, 통리협곡)


' 삼척의 비경, 미인폭포(美人瀑布) 나들이 '
삼척 미인폭포
▲  얼어붙은 미인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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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한복판이자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날 연휴에 친한 후배와 강원도 태백(太白)을 찾
았다. 태백터미널 인근에서 하룻밤 머물고 아침 일찍 당골행 태백시내버스 7번을 타고 태백산
(太白山)의 품으로 들어갔다, 원래 계획은 태백산(1567m) 꼭대기까지 오르는 거였으나 후배가
전혀 등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조금만 오르다 발길을 돌렸다.

당골에서 단군성전(檀君聖殿)과 석장승, 석탄박물관, 축제 준비에 물이 오른 눈꽃축제장을 둘
러보고, 식당이 가득한 당골 종점으로 내려와 곤드레밥과 파전, 동동주로 배가 터지게 점심을
먹었다. 배는 포만감에 가득해 쾌재를 부르고, 식당에서 제공한 커피로 식곤증의 희롱을 뿌리
치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 시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에 여유가 있어 당골입구까지 소화 좀 시
킬 겸 걸어갔다.

당골입구에 다 왔을 무렵, 당골로 들어갔던 택시가 나오면서 우리를 의식한 것인지 가까운 곳
에 4발 바퀴를 접고 움직이질 않았다. 마침 당골에서 시내버스가 나올 시간인데, 정류장은 보
이지 않아 조금은 초조하던 상황이었다. 택시를 타자는 후배의 권유로 그 택시로 다가서니 택
시 운전사는 우리가 올 줄 알았다면서 빙그레 웃는다.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갈까 궁리를 하다가 운전사한테 이렇게 눈이 많이 쌓였는데, 미인폭포 관
람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러자 운전사는 폭포 옆에 절이 있고 그곳까지 길이 놓여져 있다면서
들어갈 수 있다고 그런다. 그래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미인폭포로 가달라고 했다.
태백의 중심지인 황지(黃池)와 하늘 아래 첫 동네라 일컬어지는 통리(通里)를 지나 통리3거리
에서 우회전하여 신리 쪽으로 800m 정도 가니 미인폭포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차를 돌리기가
힘들어 조금 더 전진했다가 도로 폭이 잠시 넣어지는 곳에서 유턴하여 폭포 입구에 우리를 내
려 놓는다. 당골입구에서 여기까지 택시비가 13,000원 정도 나왔다.

미인폭포 입구에서 폭포로 가는 길은 눈이 무려 무릎까지 쌓였다. 아무리 길이 닦여져 있어도
눈이 그렇게 포진하여 행패를 부리니 제아무리 문명의 이기(利器)인 수레라 할지라도 뚫고 갈
재간이 없다. 마침 수레 3대가 폭포 입구에 바퀴를 접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그중에서 경기도
차적에 차량은 얌체같이 폭포로 들어가는 길을 거의 가로막고 사람들의 통행까지 방해하고 있
었다. 어찌 저렇게 수레를 세울 수 있는지, 어쩔 수 없이 두툼한 눈밭을 밟고 지나야 된다.


♠  은빛세계를 거닐다 (여래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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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인폭포로 가는 길 ~ 1 (내리막 길)

마치 은빛세계로 들어온 듯한 미인폭포(여래사)로 가는 길은 지구 북반구의 장쾌한 설림(雪林)
이나 설원(雪原)을 거니는 기분이다. 겨울의 제국(帝國)이 내린 하얀 눈옷을 갑옷처럼 두룬 키
다리 수목들이 수해(樹海)를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 난 길은 눈이 성인의 무릎 높이 만큼이
나 두툼해 기를 질리게 한다. 다행히 수레 1대가 용케도 눈밭을 뚫어 눈 사이로 소중한 바퀴자
국을 남겼다. 바퀴가 지나간 자리는 눈이 움푹 들어가 통행에 크게 불편은 없으나, 나머지 부분
은 무릎에 닿을 정도로 설피(雪皮)를 이루고 있어 발을 들이기도 겁이 난다. 간간히 잘못 들인
듯한 발자국이 보일 따름이다. 길을 벗어난 숲 부분은 거의 1m 가까이 쌓였다.

길은 처음에 약간의 내리막을 이루다가, 조금 오르막으로 변한다. 허나 그리 각박한 경사는 아
니니 힘든 것은 없다. 하얗게 분을 칠한 이곳 풍경 앞에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받은 눈과 마음
은 말끔히 정화되고, 당골에서 호식을 누린 입에서는 감탄사가 연거푸 쏟아져 나온다. 아무리
인간의 언어가 대단하다 한들, 대자연 앞에서는 한낱 개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인간의 단
어로 감히 대자연의 작품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 이런 곳에서
는 괜시리 말장난, 글장난하지 말고 그냥 탄성만 지르자~


▲  미인폭포로 가는 길 ~ 2 (오르막 길)

▲  미인폭포로 가는 길 ~ 3 (오르막 길)

▲  혜성사 사적비(慧聲寺 史蹟碑)

눈길을 6~7분 정도 가면 피부가 고운 혜성사 사적비가 하나 나온다. 혜성사는 여래사(如來寺)의
예전 이름으로 여기까지 수레의 진입이 가능하다. 비석 앞에는 수레 서너 대 세울 수 있는 공터
가 있으며, 여기부터는 무조건 두 발에 의지해서 절과 폭포까지 내려가야 된다.


▲  여래사로 들어가는 문과 속세와 절의 경계를 가르는 목책(木柵)
(사적비 앞 공터에서 바라본 모습)


▲  여래사 쪽에서 본 목책

사적비에서 절로 들어서려면 나무로 엮은 목책 사이로 난 문을 지나야 된다. 이 문이 속세와 여
래사, 미인폭포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로 여래사의 일주문(一柱門) 역할도 겸하고 있다. 여래
사는 아직 그 흔한 일주문도 갖추지 못했다.
목책의 길이는 8m 정도 되는데, 겉으로 보면 좀 엉성하게 지은 듯 하지만 실은 단단하다. 목책
양쪽은 경사가 급한 벼랑이라 보기만 해도 아찔하며, 안쪽에서 문을 닫아 걸면 목책을 넘지 않
은 이상은 들어갈 수 없는 그야말로 요새와 같은 문이다. 번뇌가 아무리 질기다고 한들 저 문을
굳게 닫아두면 감히 넘어오지도 못할 것이다. (현재 목책은 철거해서 없음)


▲  여래사로 내려가는 길

목책에서 여래사까지는 벼랑을 동반한 급한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매우 가파른 경사라 길이 지
그재그로 정신없이 이어져 속인(俗人)들의 혼을 다 빼놓으며, 길 옆은 거의 50~60도의 낭떠러지
이다. 특히 길이 구부러지는 부분은 거의 80도의 천길 낭떠러지로 동쪽 굽이 부분은 그나마 통
리협곡(峽谷)이 가까이에 보여 덜 아찔하지만 서쪽 굽이 부분은 영동선(嶺東線) 열차도 울고 넘
는다는 통리재를 비롯하여 통리재 밑의 세상(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흥전리)이 까마득하게 보여
간을 아주 제대로 쫄깃하게 만든다. 게다가 눈까지 두텁게 포진하여 길을 더디게 만드니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보이지 않는 저 고개 밑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땅
으로 떨어지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더욱 조심에 조심을 기해 내려가는데, 정말 눈과 마
음이 아찔했다.


▲  여래사 남쪽에 놓인 철다리

그렇게 간을 쫄깃쫄깃 구워가며 정신 없이 내려가다보니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여래사가 모습을
비춘다. 절 남쪽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통리협곡에 터를 닦은 여래사에 이르게 된다.


♠  통리협곡에 둥지를 튼 적막한 산사(山寺), 여래사 둘러보기

▲  통리협곡에 조용히 둥지를 튼 여래사

통리협곡 동쪽에 아슬아슬하게 터를 다진 여래사는 1960년 4월에 창건된 조촐한 산사(山寺)이다.
원래 이름은 혜성사(慧聲寺)로 근래에 이름을 갈았으며, 가파른 통리재로 이어지는 서쪽을 빼고
는 동/북/남쪽이 완전히 산으로 막힌 궁색한 곳이다. 처음에는 조그만 기도처로 시작했으나 지
금은 미인폭포의 덕을 본 탓인지 신도가 꾸준하여 대웅전과 삼성각, 요사 등 무려 6~7동의 건물
을 갖추는 등, 사세(事勢)를 늘려나가 적지 않게 약진을 보였다. 허나 터가 너무 협소하고 경사
가 급한 곳이라 그런 지형의 눈치 때문에 건물의 크기는 모두 작다. 그리고 산자락을 깎지 않는
이상은 이제는 경내를 넓힐 수도 새롭게 불전(佛殿)을 세울 공간도 없다.

철다리를 건너 서쪽 요사의 좁은 옆구리를 지나면 경내 서쪽을 이루고 있는 요사(寮舍) 한복판
에 이르게 된다. 'ㄱ'자 모양의 요사와 '一' 모양의 요사가 바로 붙어있어 마치 하나의 건물처
럼 보인다. 요사는 승려와 신도들의 생활공간으로 두 건물 사이에 좁은 뜨락이 있다. 눈도 많고
날씨도 추운 골짜기라 건물 외부를 두터운 비닐을 씌워 건물의 온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까
지 어떻게 운반해왔는지 가스통이 구석에 놓여져 취사를 해결해주고 있다. 난방은 나무나 기름
으로 때고 있으며, 이런 첩첩한 산주름 속에도 전기가 들어와 달빛이 무르익을 때면 경내를 환
하게 밝혀준다.
기와를 입힌 요사 지붕에는 눈이 두터운 솜이불을 이루며 깔려있어 보기만 해도 무너지지 않을
지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눈송이 자체는 거의 무게가 없어 만만하게 보기 쉽지만, 그런 눈이 계
속 쌓이면 kg 단위를 뛰어넘어 톤(t) 단위에 육박하게 된다. 그리되면 제아무리 견고한 건물이
라도 목이 아픈 법, 눈으로 인한 건물이나 비닐하우스 붕괴사고가 종종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
런 것이다. 이곳 요사의 목을 단단히 조이며 지붕에 염치없이 쌓인 눈의 무게는 가히 1톤은 넘
을 것이다. 태백과 삼척 산간지대가 워낙 눈이 많은 곳이다 보니 매 겨울마다 무거운 눈을 이고
살아야 되는 여래사 건물의 말못할 고충이 느껴진다.


▲  대웅전에서 바라본 요사

▲  요사 지붕에 두툼하게 깔린 눈의 위엄

요사에서 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눈 때문에 길이 막혀있다. 그래서 대웅전이 있는 경내
동쪽으로 이동했다. 좁은 산자락에 간신히 터를 다진 경내 동쪽에는 이곳의 법당(法堂)인 대웅
전(大雄殿)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과 산령각(山靈閣), 범종각(梵鍾閣)이 일제히 폭포가 있
는 북쪽을 바라보며 자리해 있는데, 건물의 크기가 모두 작다. 그나마 대웅전이 그중에서 크긴
하지만 다른 절의 법당과 비교하면 작은 체구이다.

불전 현판은 한문(漢文)이 아닌 한글로 쓰인 것이 눈길을 끌며, 건물 앞의 뜨락은 매우 가늘고
좁다. 거기에 눈까지 쌓였으니 마음 놓고 두 다리를 부릴 수 있는 공간은 더 좁아 대웅전의 온
전한 모습을 사진에 담기가 힘들다.


▲  단청이 고운 여래사 대웅전

▲  대웅전 옆에 자리한 범종각
범종각은 비록 작지만 안에는 범종을 비롯하여 목어(木魚)와 바깥에 매달린
법고(法鼓, 북)가 있어 있을 것은 거의 다 있다.

▲  여의주를 머금은 목어의 위엄
미인폭포에 단단히 눈이 먼 것일까? 아니면
폭포 전설에 나오는 미인을 꿈꾸는 것일까?
눈동자가 단단히 부었다.

◀  범종각에 안긴 범종(梵鍾)
범종 피부의 여래사의 옛 이름인 혜성사가
쓰여 있다. 저 종을 심산유곡인 이곳까지
어떻게 운반해왔을까?


▲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삼성각과 산령각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인 조촐한 모습이다.

▲  삼성각에 봉안된 산신탱(山神幀)과 칠성탱(七星幀)

왼쪽 산신탱에는 흰 수염의 산신을 비롯하여 호랑이와 동자(童子) 등 그의 식구들이 그려져 있
다. 색채가 무지 고우며, 산신의 왼쪽(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기준)에는 그의 거처인 산이 흑백
으로 그려져 있어 칼라 사진과 흑백 사진을 원근감(遠近感)에 맞쳐 겹쳐놓은 듯 하다. 빨간색
투성이인 오른쪽 칠성탱은 선의 미가 마음껏 묻어나 있어, 여래사에 있는 유물 가운데 비록 근
래의 작품이지만 이들이 단연 돋보인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20세기 후반 불화 양식으로
미술사 관련 서적에 소개될 지도 모른다.


▲  삼성각 추녀 밑에 매달린 풍경
차디찬 바람소리만이 가득한 통리협곡에 그윽하고 잔잔하게 풍경소리를 베푸는 풍경,
풍경 밑에는 물고기 대신 정체가 묘한 모양이 달려있다.


범종각 옆에는 미인폭포로 내려가는 산길이 있다. 요사 뒤쪽으로 난 길보다 상황은 좀 낫다고는
하지만 눈으로 두텁게 쌓인 건 마찬가지라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게다가 후배는 구두 비
슷한 걸 신고 있어서 폭포로 끌고 가기도 그렇다.
그래서 겨울철 안전 사고 방지에 협조하고자 폭포까지 내려가는 것은 과감히 접고 말았다. 다행
히도 대웅전과 범종각 앞에서 폭포가 그리 가깝지도, 그렇다고 그리 먼 것도 아닌 중간 거리로
바라보여 폭포 관람은 그런데로 달성한 셈이다. 폭포에 단단히 눈이 먼 나머지 절을 대충 둘러
보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가득 포진한 눈 때문에 폭포로 내려가지도 못하고, 그나마 대웅전 앞
에서 유일하게 폭포가 보이니 그것을 사진에 담으며, 대웅전 주변을 왔다갔다하면서 자연히 절
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절을 둘러보면서 주춧돌 하나 제대로 얹히기 힘들고 목재나 건설자재 운반도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이런 궁벽한 곳에 어찌 절을 세우고 꾸릴 생각을 다했는지 절을 세우고 건물을 올린 이들
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이곳은 그야말로 인적도 거의 없는 궁색한 산간벽지로 속세의 방해 없이 수행하기가 좋으며 삼
척(三陟) 땅의 가장 외진 곳이자 숨겨진 비경인 미인폭포가 절 앞을 수식하고 있고, 통리협곡
안에 아슬아슬하게 들어앉은 터라 경치도 매우 뛰어나다. 절집의 본분인 기도와 참선을 위해 이
곳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명소와 자연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절을 꾸리려는 의도도 담겨져 있다.
미인폭포는 시간이 지나면 관광지로 얼마든지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곳이라 그 앞에 미리 자리를
맡아놓으면 폭포 관람객들은 좋든 싫든 절을 거쳐가야 된다. 그러다보면 절을 찾는 발길은 미인
폭포의 인기에 정비례하여 늘 수 밖에는 없고, 절이 들어앉은 자리 또한 속세와는 거리가 먼 자
연의 한복판이라 적막하기 그지 없어 조용히 기도와 예불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 명성을 듣고 찾
아온다.
기도를 하며 폭포를 둘러보면 정말 수미산(須彌山)의 기분이 따로 없을 듯 싶다. 그러면 자연스
럽게 수입은 늘어날 것이고 그 수입을 바탕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한 것이다. 게다가 절이
폭포 앞에 들어서면서 사적비까지 수레를 위한 길을 내어 예전보다 접근성이 좋아졌다. 절이 아
니었으면, 폭포 입구에서 실타래처럼 가느다란 산길을 쩔쩔매며 내려와야 했을 것이다. 또한 폭
포 입구를 지나는 도로도 말끔히 포장되어 접근성을 최대한 돕고 있다.

경내 서남쪽 벼랑에는 등잔바위, 범바위 등이 있고, 예전에는 보석의 일종인 자마노(紫瑪瑙)란
붉은 돌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천연기념물인 수달도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만큼 이
곳이 한적하고 청정한 벽지라는 뜻이다.


♠  삼척의 비경이자 통리협곡과 어우러진 미인폭포

▲  미인폭포(美人瀑布)는 어디에 있을까?

통리협곡 동쪽에 자리한 폭포는 평소 시기심이 많은 겨울의 제국이 두껍게 얼음을 입혀 놓아 자
연산 폭포인지 얼음 조각품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경내에서 폭포까지는 대략 300m 거리로 폭
포 양쪽은 대자연이 빚은 협곡의 붉은색 석벽(石壁)이 대장관을 이룬다.

대자연이 오봉산(五峯山)과 백병산(白屛山)의 골짜기가 만나는 곳에 협곡과 함께 빚어놓은 대작
품 미인폭포는 높이가 50m에 이른다. 지역 이름을 따서 심포폭포()라고도 하며, 삼척시
내로 흘러가는 오십천(五十川)의 최상류이기도 하다. 암벽을 타고 내려와 산산히 부서지는 폭포
수는 물안개를 이루며, 오색영롱한 무지개를 자아낸다.

미인폭포를 품으며 든든한 병풍처럼 들어선 통리협곡은 일명 한국의 그랜드캐년(Grandcanyon)이
라 일컬어진다. 이 협곡은 중생대 백악기(白堊紀. 1.4억년 전~6500만년 전) 시절에 퇴적된 역암
층으로 신생대 초기에 심한 단층작용 속에서 강물에 침식돼 270m 깊이로 패여 내려갔다고 한다.
석벽이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는데, 이들은 퇴적암들이 건조한 기후에서 공기 중에 노출
된 채 산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로 굵은 자갈로 된 역암과 모래로 이루어진 사암(砂巖),
진흙이 굳은 이암(泥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발 700m 내외에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안개나 구름이 잦으며, 이때 폭포의 경치가 더욱 아름
답고 신비하게 보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전설에 따르면 일몰 전과 일출 전에 이 폭포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면 풍년이요 찬바람이 불면 흉작을 예측했다고 한다.


▲  빙벽 훈련지로 이름 높은 미인폭포
저기까지 어떻게 내려갔는지. 3명의 빙벽 산악인이 한참 빙벽 훈련에 임하고 있다.


미인폭포는 통리협곡과 한데 어우러져 장쾌하고 남성적인 멋을 진하게 우려내는데, (물론 여성
적인 아름다움도 간직하고 있다) 여성적인 이름인 미인을 칭하는 것이 참 이채롭다. 이처럼 폭
포가 어여쁜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은 미인과 관련된 전설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이렇게 절경인 곳에는 옛 사람들이 붙인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1~2개 씩은 서려 있는
법, 또한 폭포 위쪽 동네인 구사리(九士里)에는 옛날부터 미인이 많이 나와 미인폭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그 인근에 미인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어쨌든 폭포에 얽힌
믿거나 말거나 전설이 여럿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폭포 위쪽 동네에서 태어난 미인(이름은 모름)이 혼인을 했는데,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
나 재가를 했다. 재가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니 고려시대인 듯 하다. 조선시대에도 재가는 가능
했으나 재가한 여인을 천하게 보는 경향이 컸다. (재가한 여인의 자식들은 과거시험도 못보게
했음)
허나 재가를 한지 얼마 안되서 남편이 또 사망을 했다. 아무래도 남편을 잡아먹는 팔자인 모양
이다. 그래서 너무 비관한 나머지 폭포에 뛰어내려 죽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전설에는 남편이
죽자, 재혼할 남자를 찾았지만, 예전 남편만한 사람을 찾지 못해 신세를 비관한 나머지 폭포에
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미인폭포란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전설의 내용을 보면 충분
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이다. 폭포나 수심이 깊은 못에서 신세한탄에 뛰어내린 사람도 많기 때
문이다. 그런데 만약 아리따운 미인이 아닌 괴물급 여인이 뛰어내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과 반대의 의미인 추녀폭포가 되었을까? 아니면 폭포도 자존심이 상해 그 자리를 떴을까?

그리고 또 다른 전설로는 구사리 혹은 심포리에 살던 어느 부부가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
이가 시작부터 너무 이쁘게 생겼다고 한다. 부부는 그런 딸 때문에 신세를 조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는지 생후 3일만에 땅에 묻어 생매장시켰다는 것이다. 그러자 폭포 속에서 용마(龍
馬)가 튀어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니, 아마도 여자 애가 용마로 환생하거나 그가 탈 용마가
너무 열받아서 하늘로 날아간 모양이다. 폭포수가 미끄러듯 내려와 산산히 부셔지는 석벽을 험
풍암(驗豊岩)이라고 부르는데, 미인이 자살할 때 이를 지켜보던 동자승이 돌이 되었다는 동자석
(童子石)이 암벽 꼭대기에 서 있다. 그 동자승은 미인의 자살을 막지 않고 멀뚱히 구경했다는
이유로 하늘에서 벌을 내린 듯 싶다.


▲  설경이 아름다운 미인폭포

마지막으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런 전설도 있다.
옛날 폭포에는 미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날 이 땅에 흔하고 흔한 젊은 된장녀 타입으로
눈이 쓸데없이 높아 왠만한 남자들이 청혼을 해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게 꿈꾸던 이상형
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많이도 흘러갔다. 청정한 물을 쏟아내는 폭포와 더불어 살았으니 시간
관념도 잊은 듯 싶으며, 미모에 대한 지나친 자만감에 자신의 모습도 살피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일기가 화창했던 어느 날, 드디어 이상형의 남자가 폭포를 지나갔다. 이에 미인은 그
사람에게 청혼을 했는데, 남자는 크게 놀라며 확실하진 않지만 이 정도의 말을 했던 모양이다 '
할머니! 저한테 지금 농담하는거죠?'
그 말에 미인은'엥 이게 왠 개소리인가?' 싶어 물 속에
자신을 비추어 봤는데, 그 속에는 남자가 했던 말 그대로의 모습이 비췄던 것이다.
이에 크게 발작한 미인은 치마폭을 뒤집어 쓰고 폭포에 뛰어내려 죽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폭
포의 모습이 여인이 치마를 뒤집어 쓰고 뛰어내리는 모습으로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았음)
미인이 자신의 주제 파악도 못하고 그렇게 골로 간 이후, 백산(통리 남쪽)의 말구리재에서 그녀
의 배필이 될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허나 미인이 죽었다는 소식에 그 또한 발작하여 신기
(도계 북쪽 동네)에서 말과 함께 죽었다고 하며, 미인이 뛰어내릴 때 동자승이 그 모습을 구경
하다가 돌이 되었다고 한다.


▲  여래사 북쪽에 병풍처럼 들어선 미인폭포 서쪽 석벽
대자연이 오랜 세월을 두고 빚은 위대한 작품 앞에 그저 탄성만 연거푸 나올 뿐이다.
하늘을 이고 있는 석벽에는 자연과 세월이 달아놓은 주름선이 첩첩이 그어져 있다.

▲  미인폭포를 등지고 다시 속세로 나가다

여래사에서 미인폭포와 통리협곡을 구경하고 다시 속세로 나왔다. 비록 미인폭포까지 내려가지
못하고 폭포 주변에 있는 동자석을 비롯하여 등잔바위와 폭포 동쪽 너머에 있는 구사리 미륵바
위 등 놓친 것이 많지만 한겨울에 그것도 눈이 가득할 때 왔으니 어쩔 수가 없다. 억지로 폭포
까지 내려갔더라면 엄청 고생하거나 119에 실려서 고통스럽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과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기회는 만들면 또 있을 것이니 그때가 다시 온다면 폭포 앞까지 내려가 청명한
폭포수에 속세에서 오염된 손을 씻고 싶으며, 겨울이 아닌 한여름에 오고 싶다. (그 소망은 5개
월 뒤인 그해 6월 말에 이루었음)

여래사에서 사적비까지는 길이 지그재그이고 경사가 있어 내려갈 때와 달리 좀 힘들다. 사적비
까지 올라와 인적도 없는 겨울의 정령이 가득 깃들여진 오솔길을 걸으며 폭포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아까 택시에서 받은 연락처로 콜택시를 긴급 소환하여 태백역으로 나온다.

태백역에서 우리가 끊은 청량리행 마지막 열차(18시 23분)까지는 3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나 심신
이 피곤하여 1시간 뒤에 있는 표(16시 36분)로 바꾸고 역에서 지친 두 발을 쉬게 했다. 역 건물
에는 태백산을 오르고 귀가하는 등산객과 설날을 맞이해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하려는 사람들로
또 다른 물결을 이루었다.

1시간을 지루하게 흘려보내니 드디어 강릉발 청량리행 열차가 태백역에 들어온다. 열차에 올라
사북을 지날 무렵 잠이 들어 원주에서 깨고, 태백 출발 4시간 만에 서울에 동쪽 관문인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이렇게 하여 아쉬움이 많았던 태백 눈꽃 나들이는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 미인폭포 찾아가기 (2012년 7월 기준)
① 철도 이용 (태백역이나 동백산역 하차)
* 청량리역과 양평역, 원주역, 제천역에서 강릉행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태백역 하차. 1일 6회(
  휴일에는 7회) 운행. 이중에서 3회가 동백산역에 정차한다. (청량리발 7시, 8시 50분, 14시)
* 강릉역과 동해역에서 청량리, 동대구, 부전행 열차를 타고 동백산역이나 태백역 하차
* 부전역, 태화강역, 동대구역, 안동역, 영주역에서 강릉행 열차를 타고 동백산역 하차
② 시외버스 이용
*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20~4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부산(동부)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6회, 대구(북부)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16회 떠
  난다. (고한 경유 9회, 영주/안동 경유 7회로 고한 경유가 더 빠름)
* 인천, 수원, 안산, 성남, 고양, 의정부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1일 3~6회 내외로 다닌다.
* 원주, 제천에서 태백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1일 10여 회 정도 있다.
* 강릉과 동해, 삼척에서 태백행 직행버스가 25~60분 간격으로 떠나며, 통리에서 내리면 된다.
③ 현지교통
* 태백역전에 있는 태백터미널에서 구사리행 태백시내버스 5번을 타고 미인폭포 입구 하차. 이
  노선은 1일 1회 운행하며, 아침 6시 35분에 출발한다.
* 태백터미널에서 호산행 완행버스(1일 4회/ 8:30, 13시, 15:45, 19시)를 타고 미인폭포 입구에
  서 내려도 된다. (운전사한테 내려달라고 부탁하면 됨)
* 태백역이나 동백산역, 철암역에서 택시를 타고 여래사 사적비까지 들어갈 수 있다. (단 눈이
  많이 쌓였을 경우에는 폭포 입구에서 내린다)
④ 승용차 (여래사 사적비 앞에 주차공간이 있으며, 대형버스 접근 불가)
*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영월 방면 38번 국도 → 영월 → 고한 → 태백시내(태
  백로) → 황지교4거리에서 좌회전 → 통리건널목에서 우회전(철길 건널목 건넘) → 통리3거리
  에서 우회전 → 미인폭포 입구에서 좌회전 → 여래사 사적비
* 동해고속도로 → 동해나들목에서 삼척/태백 방면 38번 국도 → 도계 → 통리3거리에서 좌회전
  → 미인폭포 입구에서 좌회전 → 여래사 사적비
* 미인폭포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 여래사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218-2 (☎ 033-55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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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 촬영일 - 2012년 1월 22일
 * 작성 시작일 - 2012년 2월 11일
 * 작성 완료일 - 2012년 2월 12일
 * 숙성기간 - 2012년 2월 12일 ~ 2012년 6월 28일
 * 공개일 - 2012년 6월 28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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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2/07/03 12:14 | 강원도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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