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집 ~ 구례 지리산 천은사

 


' 구례 지리산 천은사(泉隱寺) '
구례 천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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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제국(帝國)을 몰아내고 천하를 해방시킨 봄이 슬슬 세력을 다지던 4월 중순에 구례 천은
사를 찾았다. 원래는 하동 쌍계사(雙磎寺)와 불일폭포(佛日瀑布)를 찾을 요량으로 부산서부터미
널에서 하동(河東)행 직행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수시로 떠나는 진주행 버스를
타고 진주에서 하동행 직행버스로 환승하여 하동에 발을 내린다. 그런데 쌍계사행 차 시간 또한
인연이 닿지 않아 일단 구례(求禮)행 직행버스를 타고 화개(花開)까지 들어가기로 했다. 화개에
서는 하동 외에도 구례에서 들어오는 버스도 있기 때문이다.
허나 벚꽃과 매화의 향기에 이끌려 찾아온 상춘객들의 수레들로 19번 국도는 평일임에도 극심한
정체를 빚는다.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蟾津江)을 위안 삼으며, 간신히 화개까지 오긴 했지만 쌍
계사로 가는 길 또한 완전 주차장이다. 들어갔다가 자칫 오늘 내로 못나올 듯 싶어서 단단히 꼬
리를 내리고 일정에도 없던 구례까지 밀고 들어갔다.

거의 8년 만에 발을 들인 구례, 허나 이미 갈 곳은 정해져 있어 방황은 하지 않았다. 바로 천은
사이다. 그곳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다. 그래서 구례터미널 부
근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점심을 먹고 천은사행 군내버스를 탔다. 이 버스는 천은사를 거쳐 광의
면을 순환하여 구례로 돌아오는 노선이다.

구례터미널을 출발하여 15분 정도 가니 드디어 이 땅의 성산(聖山)인 지리산의 품으로 들어선다.
'노고단로'라 불리는 길을 쭉 오르면 성삼재와 노고단(老姑壇)으로 통하는데, 천은제(泉隱堤)란
호수가 나타나면서 일주문과 닮은 거대한 산문(山門)이 모습을 비춘다. 바로 천은사의 산문이다.
도로에 산문을 두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바로 옆에 얄밉게도 천은사 매표소가 있는 것이다. 천
은사에 볼일이 없는 사람은 안내도 되겠지만 검문소 마냥 오는 수레들을 일일이 멈추게 하니 그
것도 은근히 짜증나는 일이다.
내가 탄 버스에는 승객이 모두 3명이 있었다. 게다가 이날은 월요일이니 방심에 빠진 매표소 직
원은 버스를 그냥 들여보냈다. 덕분에 거액의 입장료는 기분 좋게 물지 않게 되었지~~

산문을 통과한 버스는 3거리에서 천은사 주차장으로 들어가자마자 항아리 겉 돌듯 바로 차를 돌
려 나를 뱉어내고 외마디 부릉 소리를 남기며 속세로 나갔다. 천은사가 구례의 주요 명소임에도
정류장 시설은 커녕 표지판도 없다. 그냥 삼거리와 가까운 주차장 변두리에서 대충 시간을 계산
을 해서(구례터미널에서 20분 정도 추가) 버스를 기다려야 된다. 그만큼 버스 이용객에 대한 배
려가 없다. 적어도 정류장 시설은 해줘야 되는 거 아닐까?


▲  평일이라 텅 빈 천은사 주차장
구례읍으로 나가는 군내버스는 사진에 보이는 왼쪽 가로등 주변에서 기다리면 된다.
물론 버스를 탄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정차를 하여 문을 열어준다.
안그러면 그냥 통과~ 대중교통 이용객에 대한 배려가 시급하다.


♠  천은사를 들어서며

▲  천은사 계곡물이 잠시 쉬어가는 푸른 호수, 천은제

넓다란 천은사 주차장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거의 텅 비어있다. 주차장에 쉬고 있던 수레는 기껏
해봐야 3대 정도. 주차장 옆에는 잔잔한 은빛 물결의 푸른 호수, 천은제가 있다. 성삼재 부근에
서 발원(發源)하여 큰 세상을 향해 흘러가던 천은사 계곡물은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다가 정든
고향을 등지고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호수 주변에는 푸르름에 젖은 젖은 수목들이 호수에 비친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한쪽에는 찻집이 자리하여 천은사를 찾은 중생을 유혹한다. 부처의 세계를
목전에 둔 속세의 마지막 유혹의 현장으로 유혹에 일부러 빠지며 차 1잔의 여유를 누려보는 것
도 괜찮을 것이다.


▲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일주문 가는 길

주차장을 지나면 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어느 길로 가든 상관은 없다. 단 왼쪽은 수레들을 위한
길이고 오른쪽은 원래의 길로 일주문으로 통한다. 기왕 절에 왔으니 속세와 불계(佛界)의 경계
이자 절의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일주문까지는 박석(薄石)이 깔린 길이
곧게 펼쳐져 있고 순백의 종결을 지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봄의 향기를 건넨다. 알록달록
연등이 길 양쪽으로 일주문까지 이어져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중생을 인도한다.


▲  천은사 일주문(一柱門)

천은사의 정문인 일주문은 양 옆구리로 낮은 담장을 둘렀다. 담장은 속세와 불계의 경계선 역할
을 하고, 일주문은 두 세상을 이어주는 관문인 셈이다. 보기만 해도 육중한 팔작지붕을 받치는
공포(空包) 덩어리에 고색의 떼가 가득해 오래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는데, 18세기 경에 지어진
것이다.


▲  수기가 서려있다는
일주문 현판 글씨

세로로 쓰인 현판(懸板)에는 이 절의 정체를 알려주고 있는데,
조선 후기 명필가(名筆家)로 명성이 높은 원교 이광사(圓嶠 李
匡師, 1705~1777)가 썼다고 한다. 그는 마치 물이 흐르듯 수기
(水氣)를 불어넣은 수체(水體)로 글씨를 썼는데, 이 현판을 내
건 이후부터 절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일주
문 밑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현판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소
리가 들린다고 하니 여유가 된다면 한번 귀를 기울여보기 바란
다. 나는 듣지 못했음~~
또한 일주문을 들어서기 직전 오른쪽 산자락에 비석과 부도(浮
屠)가 있는 부도군이 있다. 이들은 2기의 비석과 10여 기의 부
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선 후기와 왜정 때 조성된 것이다.


▲  일주문의 뒷모습과 담장

▲  일주문를 지나면 잠시 갈라졌던 길이 다시 합쳐진다.


  지리산 자락에 안긴 남방 제일의 선찰(禪刹),
천은사(泉隱寺)의 내력


▲  서서히 모습을 비추는 천은사의 외부 (수홍루와 다리들, 천왕문)

지리산 서쪽 자락, 성삼재 밑에 둥지를 튼 천은사는 남부지방 제일의 선찰로 조계종(曹溪宗) 소
속이다. 가까운 곳에 있는 화엄사(華嚴寺)의 말사(末寺)로 화엄사,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사찰로 꼽힌다. 청정하기로 명성이 높은 천은사계곡이 절 옆구리를 흐르고 있고 우람한 봉우리
가 절을 포근히 감싸고 있어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

천은사는 신라 후기인 828년(흥덕왕 3년)에 인도 승려인 덕운(德雲)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는
당나라를 거쳐 신라(新羅)로 건너와 절을 세울 명당을 찾아 전국을 주유하던 중, 지리산에 들어
와 천은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허나 극락보전 상량문(上樑文)에는
'唐 僖宗 乾符二載 緣起相形而建設 德雲因勢而增修... (당 희종(熙宗) 건부2년(875년)에 연기(
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했다...'

기록이 있으며, 왜정 때 간행된 구례읍지(求禮邑誌)에는 창건주 연기(緣起)는 도선국사(道詵國
師)의 별호(別號)로 이를 잘못 해석하여 덕운이 창건주로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 쓰여 있다. 이
기록을 통해 도선이 9세기 후반에 창건을 하거나 약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되며, 보다
상세한 기록과 물증이 없어 정확한 창건시기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

고려 때는 고려 정부의 지원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5~1308) 시절에는 '
남방제일선원
(南方第一禪院)’이 되기에 이른다. 많은 수도승(修道僧)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수행
을 하면서 제일의 선찰로 우뚝 선 것이다. 허나 조선으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잿더미가 되고 만다.

▲  천은사 수홍루

▲  보제루(왼쪽)와 운고루(오른쪽)

그 이후 1610년(광해군 2년)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다시 절을 일으켜 세웠으며, 1679년 단
유선사<袒裕禪師, 혹은 조유선사(祖裕禪師)>가 크게 중수했는데, 이때 절 이름이 감로사(甘露寺
)에서 천은사로 바뀌었다. 감로사는 이슬처럼 맑은 샘이 있어서 유래된 것인데 숨은 샘이란 뜻
의 천은사로 바뀐 사연은 다음과 같다.

단유선사(조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법당 남쪽 50보 거리에 샘이 있었다. (수각에 있는 감
로샘) 그 물은 맑고 달아서 마시면 정신이 뚜렷해지고 오래 마시면 지병이 완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샘을 지키는 큰 구렁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샘을 지키는 것까지는 좋으나 문제는 사
람을 겁준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구렁이가 어슬렁 밖으로 나왔다가 승려가 던진 돌에 비
참한 최후를 맞았는데, (혹은 승려가 용기를 내서 때려 죽였다고 함) 그 이후로 샘에 물이 솟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여 승려들은 그를 묻어주고 치성을 드렸으나 물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
래서 '샘이 숨은 절'이란 뜻의 천은사(泉隱寺)로 이름을 갈았다고 한다.
허나 이름을 갈아버린 이후에는 이상하게도 화재가 자꾸 일어나 애써 키운 가람이 잿더미가 되
었다. 그래서 승려와 마을 사람들은 절의 수기(水氣)를 지키던 구렁이(혹은 이무기)의 복수라
여기고 해결책을 모색하던 중, 마침 조선 4대 명필가의 하나인 원교 이광사(李匡師)가 놀러왔다.

승려로부터 그 사연을 전해 들은 이광사는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인 수체(水體)로 '지리
산천은사'란 현판을 써 주며 '이 글씨를 일주문 현판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
오~~'
했다. 사람들은 그깟 글씨가 화기(火氣)를 막겠나 싶어 걸어봤더니 정말로 이후로는 화재
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1715년 팔상전에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를 제작했고 1749년 칠성탱화를 조성했다. 1774년(영조
52년) 5월에는 혜암선사(惠庵禪師)가 예전에 파괴되어 방치된 전각을 중수하면서 절을 새롭게
중창했다. 혜암선사는 천은사의 부속암자인 수도암(修道庵)에 머물러 있었는데 당시 남원부사(
南原府使) 이경륜(李敬倫)에게 도움을 청해 지리산에 안긴 여러 절의 협조를 받아 2년 간에 걸
친 중창불사를 이루어냈다. 지금의 가람은 대부분 이때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1776년 신암(信
庵) 등 14명이 참여하여 아미타후불탱화를 그렸으며, 1833년 '천은사제석천룡도'가 제작되었다.

1915년 3월 조선30본산연합사무소 상치원(常置員) 제1회 총회에서 중앙학림(中央學林) 설치문제
를 논의했는데 학림 학생의 모집은 각 본사와 말사의 등급에 따라 모집하기로 했다. 천은사는 5
등급으로 분류되어 학생 1인에 본년도 예비과의 경비로 44원 50전씩 분배했으며, 같은 해 11월
사립중악학림 인가원을 제출해 인가를 받았다.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선방(禪房)의 관례를 보면 선방에 따라 일반적으로 행하는 청규
절목(淸規節目) 18항 이외에 특수한 관례가 있었는데, 천은사에도 특수한 관례가 있었다.
① 호적상 처자가 있는 이들 가운데 가족과 서신 왕래가 빈번하여 선가(禪家)의 도심을 문란케
할 염려가 있는 이는 입참(入參)을 불허한다. 단 발심납자(發心衲子)는 허락한다.
② 좌선할 때 연고 없이 결석하거나 규칙을 문란케 하는 이는 3차례 주의를 하고 이에 복종치
않으면 동거치 아니한다.

▲  천은사 설선당

▲  팔상전과 응진전

넓직한 경내에는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보제루, 명부전, 관음전, 방장선원, 진영각 등 약
20동의 건물이 자리를 빼곡히 채우고 있으며, 상선암과 수도암, 도계암, 삼일암 등을 부속암자
로 거느리고 있다. 그외에 약사암(藥師庵)도 있었으나 지금은 경내에 편입시켜 방장선원(方丈禪
院)으로 삼았다.
소장 문화유산으로 극락보전에 있는 아미타후불탱화(보물 924호)를 비롯하여 괘불탱(掛佛幀,
물 1340호
)과 나옹화상금동불감(보물 1546호) 등 보물 3점과 극락보전, 삼장탱화 등의 지방문화
재 2점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부속암자 4곳을 포함한 경내 전체는 전남 지방문화재자료 35호
로 지정되었다. 또한 오래 전부터 경내 뒤쪽에 야생차밭을 경작하고 있어 봄과 여름에 진행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서 차잎 따기와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다.

번뇌도 쫓아오다 떡실신할 정도로 지리산 깊숙한 곳에 터를 닦아 아늑하며, 속세와도 제법 거리
를 두고 있어 번잡하지 않다. 지리산의 빼어난 풍경과 계곡을 든든한 후광(後光)으로 삼아 속인
(俗人)들의 발길도 상당하다. 예전에는 구례 제일의 벽지로 접근이 불편했으나 성삼재를 거쳐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확장/포장되어 접근이 쉬어졌다. 속세의 짐을 벗고 오염된 마음을
다독거리고 싶거나 속세에서 자신의 존재를 잠시 지우고 싶을 때 무작정 찾아와 안기고 싶은 그
런 산사이다.

※ 천은사 찾아가기 (2012년 4월 기준)
① 버스 이용시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구례행 직행버스가 거의 2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1일 9회)
* 부산서부터미널에서 구례행 직행버스가 1일 10회 다닌다.
* 광주터미널(유스퀘어)에서 구례행 직행버스가 20~50분 간격으로 다닌다.
* 전주와 남원, 순천, 여수에서 구례행 직행버스 이용
② 열차 이용시
* 용산역과 영등포역, 수원역, 천안역, 서대전역, 익산역, 전주역에서 전라선 열차가 거의 1~2
  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광명역과 천안아산역에서 여수행 고속전철 이용)
③ 현지교통
* 구례터미널에서 천은사행 군내버스가 1일 14회(천은사까지 6회, 천은사 경유 노고단 8회) 운
  행되며, 노고단 노선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는 다니지 않는다.
* 구례구역에서 갈 경우 구례읍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구례터미널에서 천은사행 군내버스로
  환승한다. (구례구역에서 새벽 3시 30분에 출발하는 노고단행 버스만 천은사 경유)

★ 천은사 관람정보 (2012년 4월 기준)
* 입장료 : 어른 1,600원 / 청소년 700원(20인 이상 단체 600원) / 어린이 400원(단체 300원)
* 관람시간 : 7시~19시 30분
* 천은사에서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가비는 1박 2일 기준으로 어른 4만원, 청소
  년은 3만원이다. 신청과 문의는 천은사 홈페이지나 전화(☎ 061-781-4800) 요망
① 산사체험 템플스테이 - 매월 운영되며, 1박 2일과 2박 3일 코스로 진행된다. 사찰예절과 아
   침/저녁 예불, 참선, 감로숲 체험, 야생차밭 관람, 차잎 따기와 차 만들기, 다도체험, 발우
   공양 등을 경험할 수 있다.
② 휴식형 템플스테이 - 1년 아무 때나 찾아와 프로그램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머무는 프로
   그램이다. 단 아침과 저녁예불, 공양시간을 지켜야 되며, 최대 4일까지만 머무를 수 있다.
③ 3사3색템플스테이 - 구례와 곡성 지역의 주요 사찰인 화엄사와 천은사, 도림사 3곳의 절에서
   각각 1박 2일씩 총 3박 4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매년 여름에 한시적으로 열린다. 참
   가비는 15만원(초중고생 10만원/초등학교 이하 5만원)이다.
*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70 (☎ 061-781-4800, 팩스 061-781-4801)
* 천은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천은사 극락보전과 앞뜨락


♠  천은사 둘러보기 (1) 수홍루와 감로샘

▲  천은사의 고운 얼굴, 수홍루(垂虹樓)과피안교(到彼橋)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려면 천은사계곡을 건너야 된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는 2개가 있는
데, 그중에서 앞쪽에 나온 2층 누각을 지닌 무지개 다리가 단연 으뜸이다. 이 다리는 피안교라
부르는데, 피안은 번뇌에 사로 잠겨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는 고해의 언덕 건너편에 있는 언
덕을 뜻한다. 이는 천은사가 절을 찾은 중생들에게 다리를 건너면서 번뇌를 내던지고 마음을 가
다듬어 들어올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피안교는 티끌 없이 맑은 천은사계곡 하류에 자리해 있으며, 계곡과 호수인 천은제의 경계 역할
을 한다. 천은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살짝 둥지를 튼 수홍루는 19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과 측면이 각각 1칸인 팔작지붕 2층 누각이다.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며 절경을 이루는 수홍루와
피안교는 계곡과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한폭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으며, 여기서 바라
보는 천은제는 은빛물결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또한 천은사를 소개하는 글이나 안내문에 단골
로 등장하는 천은사의 고운 얼굴로 누각 정면에 걸린 현판은 염제(念齊)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  수홍루의 정면

▲  수홍루의 뒷면


▲  피안교(수홍루)에서 바라본 은빛물결의 천은제
잘 익은 물고기들이 꼬랑지를 흔들며 방황하는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

▲  계곡물을 하염없이 흘러보내는 피안교(수홍루) 안쪽의 돌다리

▲  기념품가게와 수각(水閣)

수홍루의 아름다운 풍경의 감동을 안고 다리를 건너면 수각과 기념품가게가 나온다. 기념품가게
는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다른 관광지 절과 마찬가지로 불교용품과 기념
품, 차와 음료 등을 판매한다. 그의 곁에는 수각이라 불리는 고운 추녀의 건물이 있는데, 그 안
에는 천은사의 명물인 감로샘이 있다. 수각은 감로샘의 보금자리로 기와지붕을 얹힌 건물을 만
들어 그를 살핀다.


▲  감로샘을 품은 수각

▲  감로샘(甘露泉)

샘을 지키던 구렁이의 전설이 담긴 감로샘으로 천은사의 오랜 명물이다. 원래는 천왕문 안쪽에
있는 회승당 남쪽 밭 한가운데에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그러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져 어엿한 석조로 변신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석조가 워낙 크다 보니 그 안
에 담긴 물도 상당하여 석조가 와장창 깨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이다. 가뭄 때도 물이
늘 가득하며, 절을 찾은 중생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준다.
산사(山寺)에 왔으니 샘물은 한번 마셔봐야 되겠지. 놀고 있는 바가지를 취해 물을 한가득 담아
마시니 몸속의 떼가 싹 가신 듯 목구멍이 즐겁다고 쾌재를 외친다. 물맛도 달콤한 이슬이란 뜻
에 걸맞게 조금 담백한 것 같다.


♠  천은사 둘러보기 (2) 천왕문, 보제루

▲  천왕문(天王門)과 계단

감로샘에서 물 한잔 마시고 길을 재촉하면 경내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 위쪽에는 사천왕
(四天王)의 보금자리인 천왕문이 높직하게 들어앉아있다. 문 좌우로는 경내가 보이지 않게 담장
을 빙 둘렀으며, 경내와 변두리의 구분을 짓는다.

천왕문에는 부처의 경호원인 4명의 천왕, 사천왕(四天王)이 절을 찾은 중생을 마지막으로 검문
하면서 혹여 침투할지 모르는 악의 기운을 경계한다.

▲  광목천왕(廣目天王)과 다문천왕(多聞天王)

▲  지국천왕(持國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  지국천왕 발에 밟혀 울상이 된 악인(惡人)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며 나라를 말아먹는
사회지도층과 권력층을 저렇게 밟아줄 수
있는 영웅은 과연 없는 것일까?


▲  천왕문을 들어서면 넓은 뜨락과 함께 보제루와 운고루가 보인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야트막한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오르면 제법 넓은 뜨락이 나온다. 이제
경내에 다왔구나 싶지만 아직도 경내 외곽이다. 돌로 다져진 석축(石築) 위에 보제루와 운고루
가 높직하게 들어앉아 나를 굽어보고 있으며, 저들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경내의 중
심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반듯하게 터를 닦은 뜨락에는 석등(石燈)과 음료수 자판기, 기와
시주 및 안내를 돕는 안내소(초가 형태의 집)가 있다.

▲  아직도 겨울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방황하는 오래된 은행나무

▲  보제루 곁에 자라난 보리수
나무 밑에 놓인 기와에는 하얀 글씨로
'나도보리수'라 쓰여 있다.


▲  회운당(會雲堂) -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나타나는 건물로 승려의 생활공간이다.


▲  천은사 보제루(菩提樓)

보제루 옆구리 계단을 오르면 보제루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경내의 중심이 속시원하게 펼쳐진다.
흙이 잔잔히 입혀진 뜨락을 중심으로 정면에 법당인 극락보전이 보제루를 바라보고 있으며, 좌
우로 회승당과 설선당이 서로를 마주본다. 법당 앞에 흔히 세우는 석탑이나 석등(石燈)은 일체
없어 법당과 탑/석등을 나란히 세우는 기존의 가람배치를 벗어났다.

보제루는 2층 누각으로 겉만 누(樓)이지 사방이 닫혀진 당(堂)이나 각(閣)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경내를 완전히 가릴 정도로 당당하고 거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이 건물
은 법요식(法要式)을 비롯한 여러 행사 및 교육의 장소로 쓰이며, 내부는 강당처럼 하나의 커다
란 방을 이루고 있다. 또한 우물마루를 깐 대청형식으로 꾸몄다. 건물 어칸에 달린 현판은 조선
후기 호남 제일 명필로 꼽히는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이 1834년에 썼다고 한다.


♠  천은사 둘러보기 (3) 극락보전 주변

▲  천은사 극락보전(極樂寶殿) -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50호

보제루와 마주하고 있는 극락보전은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봉안한
불전으로 천은사의 중심 건물이다. 1774년 혜암선사가 세웠으며, 공포가 촘촘히 박힌 다포계 팔
작지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네모나게 높직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다
졌으며, 비대한 지붕을 받치고자 건물 모서리에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든다. 절
의 법당답게 보제루와 비슷하게 장엄한 모습을 풍긴다.


▲  극락보전에 봉안된 아미타3존불, 그 뒤에 아미타후불탱화(보물 924호)

극락보전 불단에는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취한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觀音普薩)
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이 협시한 아미타3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동그란 눈에 얇게 미소를
드리우며 중생을 맞이하는 그들 뒤에는 아미타후불탱화가 든든하게 자리해 있다. 이 그림은 세
로 3.6m, 가로 2.77m로 삼베바탕에 짙은 녹색과 적색으로 채색되었으며, 1776년 극락보전을 중
수하면서 신암(信庵)을 비롯한 14명의 금어 승려가 제작했다.

그림의 내용은 아미타불이 극락세계에서 설법을 하는 모습으로 8대 보살과 10대 제자, 사천왕과
호법신중(護法神衆) 등이 그림을 가득 메워 여백이 없다. 특히 등장하는 불보살(佛菩薩)의 광배
(光背) 한쪽에 붉은색으로 네모난 칸을 만들어 흰 글씨로 그들의 명칭을 적어 쉽게 알 수 있게
한 점이 이 탱화의 매력이다. 또한 좌우 하단부에 화기(畵記)를 두어 시주한 사람과 조성시기를
적어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대체로 16세기의 설법도 둥근 원형의 구도를 지녔으나, 이후에는
화면에 꽉차게 온갖 불보살과 신중(神衆)을 배열하는 군도형식(群圖形式)의 불화로 변화한다.
이같은 군도형식의 불화가 가장 안정적이고 전형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천은사 극락보전 아미
타후불탱화이다.

극락보전 내부 좌우 벽에는 1776년에 그려진 삼장탱화(三藏幀畵,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268호)와
1833년에 제작된 신중탱화가 있으니 살펴보기 바란다. 나는 삼장탱화를 지나치고 말았음..


▲  극락보전 뜨락과 보제루
뜨락 가운데에 원래 석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다른 데로 옮겨졌다.

▲  극락보전 뜨락 좌측의 설선당(雪善堂)
설선당은 종무소(宗務所)와 주지실 및 승려의
생활공간인 요사(寮舍)로 쓰인다.

▲  극락보전 뜨락 우측의 회승당(會僧堂)
설선당과 마찬가지로 승려의 요사로 쓰이고
있으며, 'ㄷ'모양을 취했다.


▲  회승당 툇마루에 걸린 조그만 범종(梵鍾)

회승당 툇마루에는 세월의 먼지가 그윽한 조그만 종이 봄날의 단잠을 즐긴다. 이 종은 1778년(
정조 1년)에 조성된 것으로 그의 신상이 적힌 명문(銘文)은 부조(浮彫)된 부분과 점각(點刻)으
로 된 부분이 있는데, 그의 조성시기가 적힌 건륭(乾隆)이란 연호는 부조가 되어있고, 점각 부
분에는 1880년(고종 17년)에 해당되는 연호가 적혀 있어 1880년에 약간의 수리가 가해진 듯 하
다. 그 외에도 '南原泉隱府院中鐘(남원천은부원중종)'등의 내용이 있다.
또한 조그만 총알구멍이 여럿 눈에 들어올 것인데 이는 6.25시절 천은사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
로 입은 상처이다. 다행히 가람이 파괴되는 것을 면했고 종만 약간의 총상을 입은 정도에서 끝
났으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  천은사 명부전(冥府殿)
극락보전 좌측에 자리한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과 10왕, 판관(判官) 등
명부(冥府, 저승)의 주요 식구들이 봉안된 공간이다.

▲  명부전 불단에 봉안된 지장보살과
무독귀왕(無毒鬼王), 도명존자(道明尊者)

▲  천은사 응진전(應眞殿)

극락보전 뒤쪽에는 응진전과 팔상전, 관음전 등의 건물이 자리해 있다. 응진전은 정면 3칸, 측
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석가불을 비롯한 16나한과 인왕상(仁王像) 등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  응진전 불단에 봉안된 석가불

▲  응진전 좌우를 가득 메운 16나한(羅漢)과 나한도(羅漢圖)
그들의 표정과 의상이 천은사를 찾은 중생들의 숫자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  천은사 마무리

▲  천은사 팔상전(八相殿)

관음전과 응진전 사이에 비집고 들어선 팔상전은 극락보전과 더불어 1774년에 세워진 건물로 전
한다. 이 건물은 부처의 일대기를 담은 8개의 그림, 팔상도(八相圖)가 담긴 건물로 불단에는 팔
상도의 주인공인 석가불이 봉안되어 있다.


▲  후덕한 인상의 팔상전 석가불

▲  부처의 주요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

▲  추녀를 시원스레 들어올린 관음전(觀音殿)

▲  관음전에 봉안된 관음보살상
다른 관음보살과 달리 속세만큼이나 복잡한 모습이다. 얼굴은 큰 얼굴과 그 위에 주렁주렁
달린 조그만 얼굴을 포함해 11면을 이루고 있으며, 팔은 합장인(合掌印)을 선보이는
두 팔 외에 수십개의 팔이 거의 아수라(阿修羅)상을 이룬다.

▲  삼성전(三聖殿)
삼성전은 우리에게 친숙한 3명의 성인, 산신(山神)과 칠성신(七星神), 독성(獨聖)의
보금자리로 보통은 전(殿)보다 1단계 아래인 각(閣)을 붙여 삼성각이라 부른다.
허나 이곳은 삼성전으로 격을 높여 다른 불전과 거의 동등한 위치로 다룬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절에 발자국을 남겼지만 삼성전은 이곳이 처음이다.

▲  삼성전의 중심,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와 칠성탱화

▲  산신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이는
산신상과 산신탱화

◀  천태산(天台山)의 주인으로 백미(白眉)를
지닌 독성(나반존자)


▲  관음전 뜨락에 놓인 조촐한 샘터

▲  팔상전 뜨락에 놓인 엉뚱한 바위
커다란 바위 하나가 팔상전 뜨락에 공기돌처럼 누워있다. 그냥 폼으로 있는 것은
아닐테고 분명 그럴싸한 전설이 하나 있을 듯 싶은데, 그 내막을 모르겠다.

▲  굳게 닫힌 방장선원의 성적문(惺寂門)

▲  담장 너머로 볼 수 밖에 없었던 방장선원(方丈禪院)

명부전 옆에는 굳게 닫힌 문이 있다. 현판을 보니 성적문이라고 그런다. 문은 좌우로 돌담이 둘
러져 속인들의 월담을 경계하고 있는데, 그 문을 들어서면 운수교(雲水橋)란 다리가 나오고,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불전들이 조용히 자리해 있다. 이 공간은 승려들이 수행을 하는 선방(禪
房)으로 방장선원이라 부른다. 원래는 천은사의 부속암자인 약사암(藥師庵)으로 근래에 경내에
포함시켜 선방으로 삼았으며,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마치 휴전선 너머로 들어갈 수
없는 땅을 보듯 담장 너머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된다. (단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은 들어갈 수
있음) 선방의 큰 방에는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의 문수동자상(文殊童子像)을 본 따서 만든 문수
동자상이 봉안되어있다.


▲  천은사의 숨겨진 뒷모습, 한옥마을 골목길 같은 경내 서쪽 담장길
돌담과 비포장 흙길이 어우러져 구수한 풍경을 자아낸다.

▲  천은사 계곡을 뒤로하며...

경내 곳곳을 둘러보니 어느덧 2시간 가까이 흘러가버렸다. 구석구석 둘러봤다고 자부를 하지만
일주문 부근 부도전을 지나쳐버렸고, 비록 통제구역이긴 하지만 방장선원과 야생차밭은 얼씬도
하지 못했다. 부속암자들도 1~2곳 정도 보면 좋겠지만 모두 차로 가야 되는 곳이라 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나를 속세로 데리고 갈 버스 시간이 임박하여 (그거 놓치면 집에 가기 힘들어짐)
이만 천은사와의 짧은 인연을 정리하고 밖으로 길을 돌렸다. 천은사의 얼굴인 수홍루 주변에서
아쉬움을 달래며 열심히 사진을 담다가 주차장으로 나오니 천은제에 내던졌던 번뇌가 왜 이제서
야 오냐며 잔소리를 해댄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에게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는 모양이다.
이래서 부처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버스가 주차장 안쪽까지 들어오질 않아 바깥 쪽에서 기다리니 이내 버스가 나타나 내 앞에서 차
를 돌려 나를 태운다. 버스는 광의면 일대를 강제투어 시켜주며 20분 만에 구례터미널로 나를
데려다 준다.

이렇게 하여 천은사 봄나들이는 휘장을 내린다. 다음에 혹 인연이 온다면 템플스테이나 천은사
암자투어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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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2년 4월 1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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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2/04/25 16:49 | 전남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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