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서울 북촌 산책 (가회박물관, 삼청동, 인사동...)

 

' 한여름의 북촌 나들이 (가회박물관 ~ 삼청동 ~ 인사동) '
가회박물관 어락도
▲  민화의 하나인 어락도(漁樂圖)
* 다음블로그 글 보러가기 ☞ http://blog.daum.net/snowlove78/13757285


서울 도심 속의 한옥마을인 북촌은 서울 도성(都城)의 북부 지역으로 조선시대 때 사대부(士
大夫)와 돈 꽤나 주물럭거리던 부자들이 주류를 이루며 살던 곳이다. 청계천(淸溪川)을 경계
로 그 북쪽을 북촌, 남쪽은 남촌(南村)이라고 하지만 북촌의 영역은 경복궁과 창덕궁(昌德宮
) 사이를 일컬으며, 가회동(嘉會洞)을 중심으로 삼청동(三淸洞), 계동(桂洞), 안국동(安國洞
), 재동(齋洞), 원서동(苑西洞)에 넓게 걸쳐져 있다. 또한 경복궁 서쪽을 서촌(西村)이라 부
르며, 북촌과 구분을 짓는다.

조선 후기 한옥부터 왜정 때 지어진 개량 한옥, 현대에 지어진 한옥까지 대략 900여 채의 한
옥이 진하게 남아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한옥박물관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한옥은 윤보선(尹
潽善) 전 대통령이 살았던 안국동 윤보선가(家, 사적 438호)로 서울에 제대로 남아있는 유일
한 양반가로 가치가 크다.
허나 북촌 한옥은 민속촌과 달리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내부 관람이 지극히 어려운 단점이
있다. 하지만 높은 빌딩과 콘크리트 일색의 밋밋한 서울 도심에 자리하여 크게 돋보이며, 경
복궁, 창덕궁 등의 궁궐과 함께 도심 속의 박힌 보석과 같은 소중한 곳이다. 빛의 속도로 변
해가는 시내와 달리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곳을 거닐고 있으면 시간이 딱 멈추거나 과거
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진하게 풍긴다. 여기가 과연 21세기 한복판의 서울이 맞는가 싶을 정
도로 말이다.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길을 걷는 운치도 그윽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다양한 테마의 박
물관과 미술관 등의 전시공간, 공방(工房), 문화유적 등을 숨바꼭질 하듯 찾아다니는 재미는
북촌의 가장 큰 매력이다. 북촌에 둥지를 튼 박물관(갤러리, 공방은 제외)은 대략 20여 곳이
넘는데, 상당수는 규모가 작은 개인박물관으로 입장료도 다소 얄미운 수준이다.  (성인 기준
2~6천원선)

북촌 답사의 기점인 안국역에서 16시경에 후배 여인네를 만나 북촌 나들이를 시작했다. 원래
는 북촌 구석구석을 돌려고 했으나 철을 녹여 먹을 정도로 날씨가 무더워 북촌 일주 대신 시
원한 실내의 박물관을 찾기로 했다. 북촌에 널린 수많은 박물관 가운데 이번에는 가회박물관
이 무척 땡겨서 그곳에 가기로 했다. 안국역에서 그곳까지는 600m 거리로 걸어서 7~8분 정도
이다.


♠  민화(民畵)와 부적(符籍)을 테마로 한 이색박물관 ~
가회박물관(嘉會博物館, 가회민화공방)

▲  가회박물관 내부

▲  가회박물관 외경과 정문

가회박물관(가회민화박물관, 가회민화공방)은 백성들의 삶과 소망이 담긴 민화와 부적을 테마로
한 개인박물관이다. 북촌에 뿌리를 내린 박물관답게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002년에 문을
열었다. 이곳에는 250점의 민화와 750점의 부적, 150점의 서적, 기타 민속자료 250점 등 1,500
점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100점 정도만 속세에 공개하고 있다.

민화란 이름은 왜인(倭人)
야나기 무
네요시(柳宗悅)가 '민속적 회화'란 의미로 만든 이름으로
그 이전부터 속화(俗畵)란 이름으로 대중과 함께 했다. 민화의 근원은 선사시대 암각화(巖刻畵)
로 고구려, 신라 때 그려진 사신도(四神圖)와 처용도(處容圖)를 거쳐 조선시대에 다양한 소재로
변화했다.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신도(山神圖)와 심우도(尋牛圖)도 민화의 일종이며, 지금
전해오는 옛그림의 상당수는 민화(속화)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박물관 정문은 한옥의 여닫이 대문이다. 문 위에 달린 가회박물관 현판이 아니었다면 여염집으
로 착각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활짝 열린 대문을 들어서면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박물관 내
부가 펼쳐진다. 약간의 규모를 갖추고 있을 거라는 처음 생각과는 달리 상당히 조그만 박물관에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이게 전부란 말인가? 건물 뒤로 다른 전시실이 있겠지?' 싶었으나 그런
것은 절대로 없었다. 문을 들어서 보이는 건물과 뜰이 박물관의 전부였던 것이다. 뜰을 가운데
로 왼쪽은 박물관 사무실, 오른쪽에 툇마루를 갖춘 'ㄱ'자 건물은 전시실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입장료를 받는 곳이나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그냥 들어가도 되나 싶어 주변을
기웃거리니 전시실에선 몇몇 사람이 관람을 하거나 민화그리기 체험을 하고 있을 뿐, 그야말로
번잡하지도 않고 조용했다. 박물관 직원이 인기척을 듣고 달려와 구경을 하려면 입장료를 내라
고 그런다. 얼마냐고 물으니 무려 3천원~~

다소 납득이 가질 않는 관람료에 그냥 발길을 돌릴까도 했지만, 기왕 들어온 거 그냥 나가기도
그렇고 해서 관람료를 내면서 '전시실이 이게 전부에요?'물으니 그렇다고 그런다. 정말 2분이면
다 보고도 남을 전시실인데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쉽사리 떨칠 수가 없었다.

섬돌에 신발을 두고 툇마루를 올라서 한옥 방을 개조한 전시실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많은 박물
관을 찾았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전시실은 처음이다. 너무나 낯선 박물관의 풍경은 이곳이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사랑방에 들어온 기분을 물씬 선사한다.


▲  가회박물관 전시실 내부 (동쪽)

▲  가회박물관 전시실 내부 (서쪽)

드디어 들어선 전시실 내부, 바깥과는 달리 조금은 넓어 보인다. 옛 사람들의 삶과 지혜, 체취
가 아낌없이 서린 민화와 부적, 다양한 그림이 전시실 방을 가득 메운다. 손님이 들어올 때 마
다 직원이 들어와 민화와 부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준다. 전시실에 진열된 유물에 너무
탐이 난 나머지 전시물을 촬영할 수 있냐고 물으니 상업용으로 쓰지 않는다면 가능하다고 그런
다. 그래서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잘 나온 사진은 없음)

'ㄱ'자로 꺾어지는 전시실 가운데 부분에는 민화를 그리거나 부적을 찍고, 부채를 그리는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전시실의 서쪽 끝에는 차를 즐기며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있다. 방이라
그런지 아무데나 털썩 주저앉아서 박물관에서 나눠준 안내문이나 책을 읽으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전시실을 다 둘러보면 직원이 시원한 녹차를 제공한다. 방석에 앉아 관람 끝에 즐기는 차 한잔
의 여유는 이곳만의 강한 매력이다. 차는 무한리필이라 나처럼 본전뽑기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딱 그만이며, 적당하게 마시다가 일어서면 된다.

우리는 녹차를 여러 번 비우며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를 제대로 누렸다. 전시실 구경은 촬영시
간을 포함하여 대략 10분 정도 걸렸는데,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긴 시간이 거의 1시간이다. 차
의 향기와 차와 함께 즐기는 이야기의 재미에 너무 빠진 나머지 박물관 기둥이 썩는 줄도 모르
고 박물관 폐장시간까지 머물렀던 것이다.

전시유물에 비해 관람료가 좀 밉긴 했지만 그저 수박 겉핧기 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우리의 민화
와 부적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나마 업그레이드 되었으며, 이렇게 본전을 뽑고 나오니 처음과는
달리 아깝다는 생각이 싹 씻겨 내려갔다. 박물관에서 만난 유물은 일부 사진과 간략한 설명으
로 대신한다.


▲  옛 사람들의 다양한 부적들

▲  호랑이 수염 부적과 고추,도끼 부적 (사진 오른쪽)

사진 오른쪽에 젓가락처럼 길쭉한 것은 호랑이수염 부적이다. 이 부적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난
이야기가 서려 있다.

옛날에 여자 몇명이 호랑이의 용맹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보고자 호랑이를 만나러 갔다. 호
랑이에게 온갖 아양과 서비스(?)를 해주면서 그런 용맹이 어디서 나오냐고 물으니 그는 기분이
너무 으쓱한 나머지 수염에서 힘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를 제대로 구워삶은 여인들은 수염을 얻
는데 성공하여 남자들에게 주니 그들에게 용기와 활력이 생겼다고 한다. 이 전설로 호랑이 수염
은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당상관(堂上官, 종3품 이상)의 무관 모자 장
식에 벽사(僻邪)용으로 달아 무인의 용맹성을 나타내었다고 한다.

호랑이 수염 아랫쪽에 조그만 3가지의 부적이 있는데 아들을 얻을 수 있다는 고추, 도끼부적이
다. 옛부터 도끼 모형의 3개를 끈에 묶어 주머니에 넣고 허리에 차면 정승에 오를 수 있는 아들
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도끼는 관력의 상징으로 세종(世宗)은 임신을 못하는 여자가 도끼부적
을 지니면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어 임신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신하들에게 하사한 바가 있다. 남
자하면 떼놓을 수 없는 고추부적 역시 몸에 지니고 다니면 큰 인물이 될 아들을 얻는다고 한다.


▲  뛰는 잉어가 그려진 그림 ~ 약리도(躍鯉圖)
용이 되기 위해 상류를 향해 열심히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잉어는 출세를 상징하는데,
이를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선비들이 주로 옆구리에 끼고 살던 벽사그림이다.
벽사그림은 주술적 신앙이 반영된 그림을 일컫는다.

▲  무서움보다는 엉뚱한 귀여움에 웃음을 머금게 하는 신라 후기
귀면와<(鬼面瓦), 위쪽의 반원 모양이 귀면와임>

◀  금줄과 온갖 부적이 붙여진 문 모형


▲  글씨를 도식화한 제주문자도(濟州文字圖)

문자도는 민화의 일종으로 충효(忠孝)와 삼강오륜(三綱五倫)의 교훈적 의미나 길상적(吉祥的)인
뜻을 지닌 글자를 통해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서 주로 병풍으로 제작되어 사용되었다. 유
교의 8덕목인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를 압축시킨 8
글자를 회화적 요소를 가미하여 병풍 그림으로 그렸다. 강원도에서 최근까지 그려졌던 양식으로
문자도와 화조(花鳥), 산수도(山水圖)가 혼합 형태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화훼도(花卉圖)

꽃은 수(壽)와 복(福), 부귀(富貴), 다남(多男), 강녕(康寧) 등의 상징성을 갖는다. 화훼도는
꽃잎과 꽃술, 줄기 등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꽃나무 밑에는 2마리의 하얀 토끼와 뛰어다니는
사슴, 소를 탄 목동이 그려져 있다.


▲  꽃과 호랑이가 그려진 민화

오른쪽 그림의 호랑이는 무서움과 용맹은 온데간데 없고 손으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고 싶은 귀
엽고 얌전한 모습이다. 그야말로 호랑이의 탈을 뒤집어 쓴 집고양이 같다. 옛 사람들은 아무리
무서운 호랑이나 악귀라도 귀엽고 친근하게 표현했다.


▲  빛바랜 흔적이 진한 지두화조도(指頭花鳥圖) 8폭 병풍

▲  화사한 색채의 지두화조도(指頭花鳥圖) 8폭 병풍

화조도는 꽃과 새가 그려진 그림으로 부귀와 장수, 시험 합격이나 벼슬 승진에 대한 소망, 혼인
한 부부의 영원한 사랑, 재산 증가에 대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화조도에 등장하는 새는 학, 봉
황, 백로, 기러기, 원앙, 닭, 매, 부엉이, 오리, 꿩, 참새 등이 있다.

 ◀  기용화(器用畵)의 하나인 책가도(冊架圖)
책가도는 우리말로 '책거리'라고 불린다. 책거
리의 거리는 구경거리의 뜻으로 이 그림에는 책
과 문방사우(文房四友) 외에도 다양한 생활용품
과 채소, 과일 등도 그려졌다. 책거리는 아이들
의 방 치장용으로 많이 쓰였다. 물론 교육을 위
해서 일 것이다.

   ◀  영적인 동물이 그려진 영수화(靈獸畵)
영수화는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
을 그린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민화에 나타나는
영수는 벽사(僻邪)의 뜻을 가진 그림이다. 벽사
는 사악한 기운을 막고 악귀를 쫓는 것으로 벽
사와 현세의 복을 누리고자 하는 복락(福樂)주
의는 옛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자리해 왔
고 민화에 단골소재로 등장하였다. 벽사의 대표
적인 단골 동물은 봉황, 호랑이, 기린, 신구(거
북이), 해태, 사불상, 불가사리, 삼두독수리 등
이다.


▲  부적 8폭 병풍
우리나라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문양의 부적이 모여 하나의 병풍을 이루었다.


▲  삼재(三災)를 비롯한 온갖 재앙과 부정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지니고 다녔던 종이부적들

▲  머리가 셋 달린 독수리 부적

▲  멀뚱한 표정의 호랑이와 독수리가
그려진 부적


▲  수묵화와 비슷한 산수화(山水畵)

민화에도 산천(山川)과 풍경을 다룬 산수화가 많이 등장한다. 이들을 병풍으로 만들어 사랑방이
나 객실에 두었으며, 산수화에 많이 등장하는 명승지로 우리나라의 관동팔경(關東八景)과 중국
의 무이구곡(武夷九曲), 소상팔경(瀟湘八景) 등이다. 민화라고는 하지만 전통적인 산수화 기법
인 수묵화로 그려진 경우도 많다.

※ 가회박물관 관람정보 (2011년 9월 기준)
* 3호선 안국역(2번 출구)에서 감사원 방면으로 500m 가면 전통병과교육원과 가회박물관을 알리
  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의 안내로 골목을 1분 정도 들어가면 길 왼쪽에 있다. (가급적 대
  중교통 이용 요망)
* 관람료 : 일반 3,000원 (30인 이상 단체 2,000원) / 고등학생 이하 2,000원
* 관람시간 : 10시 ~ 18시 (매주 월요일 휴관)
* 단체관람객은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을 하기 바란다.
* 사진 촬영은 상업용이 아닌 이상은 허가해준다.
* 박물관에서는 부적 만들기, 단청카드 만들기, 귀면과 탁본, 민화부채 그리기, 모란티셔츠 만
  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직원에게 부탁하면 바로 체험,
  실습이 가능하며 체험비는 3천 ~ 1만 2천원 선이다. (단체는 사전 예약 요망)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11-103 (☎ 02-741-0466, Fax 02-741-4766)
* 가회박물관 홈페이지는
이곳을 클릭


♠  저녁과 차를 겯드린 삼청동, 인사동 산책

가회박물관에서 1시간 이상을 머물다가 18시가 다 되어서 나오니 날씨가 조금은 선선해졌다. 북
촌 북쪽 언덕에 자리한 감사원(監査院)을 지나 삼청동으로 넘어가면서 삼청공원(三淸公園)도 둘
러보려고 했으나 너무 시장기가 돌면서 공원은 제쳐두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도심 속의 또 다른 별천지인 삼청동은 볼거리와 즐길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그야말로 삼거리의
동네이다. 예로부터 경관이 아름다운 장안의 명승지로 왕족과 사대부(士大夫)들이 앞다투어 별
장이나 집을 짓고 살았다. 도교()의 태청(), 상청(), 옥청()의 3위를 모신 삼
청전(殿)이 있던 곳이라 하여 삼청동이라 불리며, 산과 물이 맑고 인심이 좋아서 삼청이라
했다는 설도 전해온다.
삼청동을 남북으로 가로지른 삼청동길은 경복궁 동십자각(東十字閣)에서 시작해서 삼청공원까지
이어지는데 분위기를 진하게 내세운 찻집과 까페, 다양한 먹거리의 맛집,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가게와 화랑(畵廊)이 즐비하다.

삼청동도 엄연한 서울 도심이지만 오랫동안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아 조금은 빛바랜 읍내(邑內)
처럼 보인다. 이곳이 이렇게 된 것은 국무총리공관과 청와대, 군부대 등 국가의 예민한 시설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러니 어찌 개발의 칼질이 자유롭겠는가? 조금은 오래된 낮은 건물
과 집들이 가득하여 높은 빌딩이 연상되는 21세기 서울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동네다.
북촌과 더불어 도심의 뒷전으로 물러나 숨죽이던 삼청동이 도심 속의 관광지로 크게 부각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고, 이들을 겨낭한 찻집과 까페가 늘어나고, 음식점과 다양한 가게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증가했다. 특히 양식(洋式)의 까페가 폭풍처럼 늘어나면서 인사동, 북촌과
달리 전통과 옛스러움이 많이 떨어졌다. 너무 돈벌이와 외형에 급급했던 것이다

삼청동의 왠만한 맛집은 다 가본 터라 다른 무엇인가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잠기며 삼청동길을
거닐다가 국무총리공관 부근에 있던 상감마마 떡갈비집에 발을 들였다.
떡갈비집이다 보니 당연히 떡갈비와 관련된 것을 먹어야 될 것이다. 떡갈비 정식메뉴가 여러 가
지가 있는데 우리는 저렴한 것을 먹었다(먹었을 당시는 9,000원). 떡처럼 뭉쳐서 나온 떡갈비 2
덩어리를 중심으로 계란찜과 돌솥밥, 된장찌게, 여러 반찬들(도토리묵, 젓갈, 콩나물, 김치..)이
우리 앞에 깔린다. 그날 점심은 수박이 고작이라 정말 꿀맛을 제대로 느끼며 저녁을 먹었다. 목
구멍도 즐거운지 쾌재를 부른다. 그래도 뭔가가 부족하여 김치말이국수를 먹었는데, 맛은 별로
였다. 다 먹고나니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대머리처럼 허전한 빈 그릇들 뿐..


▲  저녁으로 먹은 떡갈비 정식

녁을 먹고 삼엄함과 엄숙함이 강하게 묻어난 청와대 앞길을 지난다. 길 곳곳에는 지나가는 이
들마다 어디가냐? 왜가냐? 귀찮게 물어대는 경찰들이 가득하여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돈다.

서울의 영원한 북현무(北玄武) 북악산(北岳山) 자락에 터를 닦은 청와대(靑瓦臺)는 경복궁 후원
(後苑)으로 시작하여 왜정 때는 왜국 총독(總督)의 사저가 있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총독의 사
저를 개조하여 대통령의 사저인 경무대(景武臺)로 삼았다.

슬슬 어둠이 내려앉는 청와대를 바라보며 예전과 달리 전제군주의 궁궐같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
다. 북현무처럼 이 나라와 백성을 든든히 지켜주고 보살피는 청와대의 진정한 주인은 언제쯤 나
타나는 것일까? 아직도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지 못한 방황하는 청와대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연민이 몰려온다.


▲  어둠이 내려앉은 청와대와 북악산

▲  인사동 찻집에서 즐긴 차 1잔의 여유

경복궁 서쪽 돌담길을 거쳐 다시금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리고자 인사동(仁寺洞)으로 발걸음을 재
촉했다. 삼청동과 달리 우리 전통과 문화가 진하게 배여난 인사동을 거닐며 예전부터 단골로 찾
던 찻집에 문을 두드린다.

고풍과 정갈함이 가득 배여난 찻집의 분위기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찻집 정문에는 새장이
있어 새들이 방문객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름도 그럴싸한 전통차를 마셨는데, 나는 이름이 정확
치는 않지만 국화꽃잎차를 그는 오미자차를 마시며 다시 일다경(一茶頃)의 여유를 누린다. 옛
선비나 승려처럼 차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후식으로 딸려 나온 떡과 한과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차는 리필이 가능하며 가격은 다소 미운 수준인 6,000원이다. 떡은 리필이 가
능하긴 하나 2번 이상은 눈치가 보인다.
이렇게 여유를 즐기는 사이 도끼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빠르게 흘러 어느덧 9시가 넘었다. 아
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그날의 일정을 세월의 저편으로 흘러 보냈다. 이렇게 하여 북촌 나들이
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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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1년 9월 6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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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1/09/10 16:46 | 서울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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