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의 향연 속으로 ~ 강화도 선원사 (논두렁연꽃축제)

 

' 강화도 선원사(禪源寺) 연꽃 나들이 '
선원사 수련
▲  선원사 논두렁에 피어난 수련
* 다음블로그 글 보러가기 ☞ http://blog.daum.net/snowlove78/13757262


여름의 제국(帝國)이 절정에 이르는 7월에는 연꽃이 천하를 곱게 수 놓는다. 연꽃의 절정기에
맞쳐 연꽃을 테마로 한 지역축제가 곳곳에서 열리는데, 강화도(江華島)의 선원사 연꽃축제 역
시 그중에 하나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선원사의 연꽃축제는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하여,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많은 이들이 찾아오면서 이제는 강화도 굴지의 축제로 굳게 자리매김하였다. 초반에는 논두렁
연꽃축제라 불렸으나 2009년부터 연음식을 테마로 내건 세계연꽃음식축제로 이름을 갈았다.논
두렁에 주렁주렁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들의 향기가 천하 곳곳을 누비면서 많은 중생을 이곳으
로 한없이 유혹한다.

오랜만에 발걸음을 한 선원사, 강화도로 폭풍처럼 밀려가는 피서객들로 집에서 선원사까지 무
려 4시간 반의 시간을 길거리에 내던져야 했다. 거리는 길게 잡아야 70km 정도인데, 체감거리
는 그 배가 넘는 서울~대전보다 훨씬 멀었던 것이다.

강화도와 한반도 사이를 가르는 강화해협(江華海峽)울 건너 강화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강
화터미널에서 선원사로 가는 무료셔틀버스를 기다린다. 축제안내문에는 5~10분 간격이라 되어
있는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0여 분을 기다려서야 차를 탈 수 있었다. 그나마 버스
비가 공짜라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논두렁 연꽃의 향기가 그윽한 선원사로 들어선다.

선원사를 지나는 2차선 도로와 주변 농로(農路)는 관광객들이 끌고 온 수레들로 가득하다. 절
에 마땅한 주차장이 없으니 수레들이 도로변을 잔뜩 점거한 것이다. 안그래도 길도 좁은 마당
에 도로 양쪽으로 수레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바퀴를 놓고 쉬고 있으니 선원면사무소에서 절까
지 들어가는 1km 구간이 여간 짜증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연꽃축제 때마다 되풀이 되
는 것으로 선원사과 강화군청의 적절한 조치가 요구된다.본론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선원사
의 내력에 대해 간추려보도록 하자.


♠  팔만대장경을 제조하며 항몽(抗蒙)의 의지를 다진 곳, 폐허 속에서 한 송이의
연꽃처럼 다시 태어난 고려시대 사찰, 선원사(禪源寺)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에는 고려시대 사찰인 선원사의 옛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다. 지금의 선원
사는 옛터 아래쪽에 자리해 있는데 발굴 이후 복원된 선원사의 거대한 옛터를 본다면 정말로 입
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선원사가 세워지던 시기는 고려가 한참 천하 제일의 강국, 몽고와 힘겹게 맞짱을 벌이던 13세기
중반이다. 몽고는 1232년부터 약 40년 동안 6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했는데, 그 시절 고려의
실권자는 최씨정권의 2번째 우두머리인 최우(崔瑀)였다. 최우는 최충헌(崔忠獻)의 맏아들로 몽
고가 바다에 취약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고종(高宗, 재위 1213~1259)을 앞세워 국도(國都)를 강
화도로 옮겼다. <이후로 강화도는 강도(江都)라 불리게 됨> 허나 고려만큼이나 몽고의 공격도
점점 끈질겨지면서 최우는 부처의 힘이라도 빌려볼 요량으로 나라의 재정과 자신의 가산(家産)
을 쏟아부어 1245년 선원사를 지었다.
 
드디어 절이 완성되던 날, 성대한 낙성회(落成會)가 열리고 진명국사(眞明國師)를 비롯한 승려
3천 명이 초대되었다고 하니 전시(戰時)에 어울리지 않게 얼마나 호화찬란했는지 가히 짐작이
갈 것이다. 이처럼 최우가 어려운 사정에도 대불사(大佛事)를 강행한 것은 겉으로는 불교의 힘
을 빌려 몽고를 토벌하자는 의도도 있지만 속뜻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과시하기 위함일 것이
다. 강화도 마저 몽고에게 절단이 나면 최씨정권은 그날로 아작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발악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 선원사는 그 발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최우는 친분이 있는 진명국사를 절의 주지로 앉
혔으며 1246년 고종이 친히 절에 행차하였다.
선원사의 규모는 지금보다 더 광대했으며 강화
도의 사찰 중 단연 으뜸이었다고 전한다. 거기
에 최씨 정권의 막대한 시주로 절에 있는 5백
불상 모두 순금(純金)을 입혔다고 하니, 절의
화려함은 가히 극치를 이루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바로 이곳에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만들어지고 보관되었다는 것이다.
 
최우의 지시로 10여 년에 걸쳐 81,000장이 넘는
대장경판(大藏經板)이 만들어졌으며 1398년까지
선원사에서 보관했다. 1290년 충렬왕(忠烈王)은
거란의 공격으로 선원사에서 몇달 머문 적이 있
으며 고려가 망할 때까지 고려 정부로부터 막대
한 지원을 받으면서 고려 최대의 사찰로 아낌없
는 번영을 누렸다.

▲  절터에서 나온 보상화문전(寶相華紋塼)

조선이 개국되고 1398년 5월, 태조(太祖)의 명
으로 선원사의 대장경판을 모두 서울로 옮겼는
데 태조가 친히 용산(龍山)까지 나와 대장경판
을 맞이했다고 한다. 경판은 곧바로 합천 해인
사(海印寺)로 옮겨졌다. 허나 그 이후로 어찌
된 영문인지 선원사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나
오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법등(法燈)이 꺼졌
는지는 현재로써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그 이후 500년 가까이 주춧돌을 외부에 드러낸
채 황량하게 남아오다가 1976년 발굴조사가 이
루어졌으며, 1977년 절터가 사적 259호로 지정
되기에 이른다.

1993년 절터 아래에 조그만 전각을 세워 600년
동안 끊어진 선원사의 유지를 다시 이었으며,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인천광역시의 지원으로
절터를 발굴하여 초석과 건물터 등을 복원하였
다. 경내에는 2층으로 된 큰법당과 요사 등이
있을 뿐, 아직까지는 절집의 면모를 완전히 갖
추지 못했다.


 ▲  선원사의 초대 주지 진명국사의 진영(眞影)

절터 외에 마땅한 매력이 없던 선원사는 논두렁 연꽃축제과 우보살(2010년 구제역으로 살해됨)
을 명물로 내걸며 열심히 동분서주를 벌인 끝에 강화도의 주요 관광지로 연꽃축제는 이 지역의
대표 축제로 성장했으며, 연꽃이 탐스럽게 열리는 여름에는 속인들로 그야말로 발디딜 틈이 없
을 지경이다.

폐허 속에서 한 송이의 연꽃처럼 다시 태어난 선원사, 지금의 선원사는 어디까지나 지금의 모습
일 뿐이다. 600년 전의 모습을 꿈꾸며 계속해서 천천히 복원 불사를 진행하고 있는 선원사는 절
과 속세를 이어주는 도로를 중심으로 서쪽에 절과 절터, 동쪽에 논두렁 연꽃이 자리해 있다.

※ 선원사 찾아가기 (2011년 8월 기준)
* 신촌5거리/신촌현대백화점 중앙차로 정류장(2호선 신촌역 1,4번 출구)에서 강화행 3000번 좌
  석버스가 10~15분 간격으로 떠난다.
* 송정역(5호선, 1번 출구)에서 8, 88, 3000번 시내버스 이용
* 인천터미널역(인천1호선, 1,4번 출구 중간)에서 700, 800번 버스 / 동암역(1호선, 2번 출구)
  에서 700번 버스 / 부평역, 부평시장에서 90번 버스 이용
* 일산 대화역(3호선, 4번 출구)에서 80번 버스 / 일산 마두역(3호선)과 백석역 중앙차로 정류
  장에서 96번 버스 이용 (일산에서는 대화역에서 80번 타는 것이 제일 빠름)
* 강화터미널에서 선원사, 더러미행 12, 13번 군내버스가 1일 12회 운행(휴일 11회)
* 연꽃축제 기간에는 무료셔틀버스가 운행되며 '강화터미널(내부)→선원사→강화역사관주차장→
  강화터미널'을 10~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운행을 안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절에 문의 요망)
* 승용차로 갈 경우
① 서울 → 김포 → 강화대교 → 다리 건너서 강화역사관으로 좌회전 → 해안도로 → 선원사 이
   정표를 보고 우회전 → 선원사
② 서울, 인천 → 양곡 → 초지대교 건너서 우회전 → 해안도로 → 선원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
   전 → 선원사

★ 선원사 관람정보
* 주차공간이 충분치 않으므로 축제기간에는 강화역사관 주차장에 수레를 세우고 가급적 셔틀버
  스 이용을 권한다.
* 연꽃음식축제는 보통 매년 7월 말~8월 초에 열리며 다양한 연꽃관련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692-5 (☎ 032-933-8985)
* 선원사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누른다.


▲  한참 절정을 누리는 홍련


♠  선원사 큰법당 주변

▲  동그란 통 안에 담겨진 앙증맞은 모습의 연잎들
저걸 보며 아비규환의 속세가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절에 생뚱맞게 왠 대포(?)

논두렁 연꽃을 뒤로하고 절 경내로 들어서면 지장보살 부근 우측에 대포가 놓여져 중생의 시선
을 끈다. 선원사를 지키던 대포일까? 아무리 장식용이라고는 하지만 부처의 자비를 강조하는 절
에 어찌 무시무시한 대포가 있단 말인가? 다소 생뚱맞을 따름이다. 그도 혹 연꽃을 보고자 부근
돈대(墩臺)에서 열심히 두 바퀴를 굴려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닐까? 울산바위처럼 완전히 그 자리
에 정착한 모양이다.


▲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2006년 촬영>

대포를 지나면 높다란 연화대(蓮花臺)위에 자리
한 지장보살이 중생을 맞는다. 오른손에는 육환장(六環杖)을 왼손에는 조그만 합(盒)을 쥐어들
며 연꽃의 향기를 따라 동쪽을 지그시 바라본다
. 하얀 피부의 맨들맨들거리는 연화대에는 사람
들의 사진이 군데군데 보이는데 이는 그들의 극
락왕생을 빌고자 단 것이다.

지장보살 뒤에는 둥그런 석조(石槽)와 윤장대가
나란히 있으며 못생긴 용머리가 뿜어준 옥계수
가 부처의 넉넉한 마음마냥 커다란 석조를 한가
득 채운다. 물은 석조에서에 만족하지 않고 아
래 조그만 석조로 떨어지고 거기서 다시 아래로
떨어져 연꽃 논두렁으로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  지장보살상 연화대 아래에 자리한
원숭이들

지장보살상 밑에는 귀여움이 묻어난 4개의 원숭이 조각이 있다. 보살마냥 연꽃이 새겨진 연화대
위에 서 있는 이들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눈을 가리거나, 귀를 막거나, 두 손을 번쩍 들
며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다. 그럼 이들의 자세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냥 눈요기나
하라고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우선 손으로 입을 가린 원숭이는 나쁜 말을 하지 말
라는 뜻이다. 악한 말을 할 바에는 차라리 손으로 입을 막는 것이 좋다. 눈을 가린 원숭이는 나
쁜 것을 보지 말란 뜻이며, 귀를 막은 원숭이는 나쁜 말을 듣지 말라는 의미다. 끝으로 만세를
외치는 원숭이는 속세에 대한 해탈의 환희를 표현한 것 같다.

만세를 외치는 원숭이를 제외한 원숭이는 속인(俗人)들에게 중요한 충고 3가지를 자세로써 보여
주고 있다. 나쁜 것을 말하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정말 극락처럼 아름다
울텐데 사람은 동물과 신(神) 중간에 위치한 어정쩡한 존재라 좀처럼 지키려고 들질 않는다. 원
숭이의 메세지를 가슴 깊이 새기며 절터로 다가선다.


▲  언제나 물로 가득한 둥그런 석조


▲  윤장대(輪藏臺)

불가(佛家)의 최대 사치품으로 일컬어지는 윤장
대는 원래는 책을 넣어두던 서고(書庫)라고 한
다. 윤장대를 돌리며 소망을 빌면 그 안에 넣어
둔 불서(佛書)의 내용을 모두 이해한 것과 같다
며 동시에 소망이 이루어 진다고 하여 사람들은
윤장대를 한 바퀴씩 돌려보곤 한다. 물론 나도
손잡이를 잡고 열심히 돌렸지. 소원을 빌면서..
영차영차~~
 
그러면 정말 한 바퀴를 돌리면 불서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당연히 말이
안되지. 하지만 그 어려운 불서를 일일이 보고
깨치는 것도 상당히 어려울뿐더러 옛날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전 인구의 9할을 차지하던 시기
였으니 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과정에
'윤장대를 돌리면 불경을 모두 이해 한 것과
같으며 소망도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불교의 대
중화를 꾀했던 것이다.


▲  문들이 정신없이 열려있는 선원사 큰법당

선원사의 큰법당은 2층 규모로 아랫층은 유물전시관으로 2층은 법당으로 쓰인다. 법당 주변으로
연분홍 연등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4월초파일 분위기를 진하게 연출한다. 법당 안에는 석가3존불
과 신중도, 고(故)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연꽃축제를 벌일 때는 첫날에
꼭 박대통령 내외에게 추모제를 올리는데 그 이유는 1976년 절터를 발굴하고 절을 일으켜 세웠
을 때 그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라 한다.

▲ 합장인(合掌印)을 선보이며 중생을
바라보는 석가3존불

▲ 꽉차 보이는 신중도(神衆圖)를 사이에
두고 박정희 대통령과 그의 부인 육영수
(陸英修) 여사의 영정이 나란히 자리한다.


▲  거대한 돌절구 2기

선원사가 파괴되고, 땅 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절터를 발굴하면서 다시금 빛을 보게 된 돌
절구들. 지금은 그저 전시용의 일부로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지만 선원사의 왕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려주는 산증인들이다.


♠  선원사의 800년 역사와 향기가 담겨진 유물전시관

큰법당 1층에는 선원사 800년 역사의 모든 것이 담겨진 유물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절터에
서 출토된 일부 유물이 사람들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전시관 동쪽 구석에는 기념품 가게
가 있는데, 연꽃으로 유명한 절집이라 연잎과 뿌리 등으로 만든 연근차와 차의 티백, 씨앗, 연
꽃 모양의 장식품 등을 팔고 있다.

전시관 내부는 에어컨의 아낌없는 냉풍으로 매우 시원하다. 밖은 거의 33도에 육박하는 찜통..
그래서 그런지 실내로 들어온 사람들은 좀처럼 나갈 줄을 모른다.


▲  옥등명문(玉燈銘文)
 1341년(충혜왕 2년), 삼한국대부인 이씨가 선원사에 시주한 옥으로 만든 등잔(燈盞),
등잔 속에 비친 동그란 존재는 해도 아니고 달도 아닌 천정에 있는 전등이다.
 저 고운 옥등을 한번 어루만져봤으면 소원이 없으련만.. 역시 그림의 떡인가 보다.

▲  어처구니가 없는 맷돌

'어처구니'란 맷돌의 손잡이로 궁궐 건축물이나 성문 추녀에 다는 잡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맷돌은 절이 파괴될 무렵, 어처구니를 상실한 것으로 보이며, 오랫동안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
던 것을 2001년 발굴을 통해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다.

맷돌의 새하얀 피부에는 잎줄기 하나가 화석(化石)마냥 들어앉아 있는데 마치 하얀 눈 속에서 
피어난 한줄기 새싹을 보는 것 같다.


▲  절터에서 발견된 수막새 기와
저 보잘 것 없는 깨진 기와 속에도 한 송이에 아름다운 꽃이 피여 있었다.

 ▲  철로 만든 고려시대 발우(鉢盂)

승려들이 식기(食器)로 사용한 발우로 그릇 일부가 깨져서 나갔다. 발우 옆에는 절터에서 나온
깨진 매병(梅甁)과 잔이 놓여져 서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이웃이 되었다.

▲  절터에서 나온 청자(靑瓷) 파편들

청자의 나라답게 이곳에서도 많은 청자 파편이 나왔다. 저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 있었다면
정말로 화려했을 텐데.. 비록 깨져버린 조그만 파편이지만 그들에게는 아직도 청자의 아름다움
이 물씬 배여 있었다.


▲  절터에서 출토된 어룡(魚龍)형 장식기와
물고기와 용의 지느러미 모양의 독특한 장식기와가 선원사의 지붕을 덮고 있었다.


♠  장대한 세월에 묻힌 선원사의 옛터를 거닐다 - 사적 259호

청기와와 어룡기와로 지붕을 수식하며 순금으로 된 5백 불상이 있었다고 하는 선원사, 이제 수
백 년의 기나긴 침묵을 깨고 다시 우리에게 속살을 드러낸 선원사터는 정말 거대하다. 아직 조
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주변 야산과 마을까지 뒤적거린다면 상상 이상의 선원사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파괴의 쓰라린 과정을 거치고 수백 년이 흘러 그 자리에 연꽃으로 다시금 화
려한 창조를 꿈꾼다.

선원사터의 가람배치는 동쪽을 바라보는 동향(東向)으로 회랑 ~ 중문 ~ 금당 ~ 장경각(?) 순으
로 배치되어 있다. 끝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져 제일 위쪽에서는 절터 내부는 물론 연꽃 논두
렁까지 바라보인다. 금당 앞에는 으레 세우는 탑의 흔적이 아직 나오질 않아 탑은 없었던 모양
이다.

조그만 선원사 경내와 길 건너편 연꽃 논두렁은 사람들로 만원이나 절터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크게 대조를 보인다. 다들 연꽃과 음식축제에 눈이 어두워 절터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절터는 발굴 결과를 토대로 주춧돌과 계단, 석축 등을 때깔이 좋은 하얀 돌로 복원한 것으로 그
위로 그 시절에 맞는 건물만 고증에 맞게 세워준다면 선원사의 부활은 이제 시간문제일 것이다.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파괴되었는지 절터는 지금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마도 아픈 추
억을 꺼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넓은 절터를 둘러보면서 절의 주요 폐사(廢寺)요인
자연
재해, 화재, 방화, 전쟁
을 하나씩 접목시키며 절이 파괴되던 그날의 아비규환을 상상해 본다.


▲  절터로 들어서는 1번째 계단

2001년 발굴 이후, 복원된 계단으로 높이가 거의 4m에 이른다. 개성 만월대(滿月臺)의 옛 고려
왕궁의 거대한 계단을 축소해 놓은 듯한 모습으로 계단을 오르면 옛 영화로움을 간직한 선원사
의 옛터가 만주벌판처럼 시원스레 펼쳐진다.


▲  금당으로 오르는 계단(2번째 계단)

▲  우측 회랑(回廊)터 ~ 곱게 입힌 잔디가 예전의 회랑을 대신한다.

▲  허전함만이 감도는 좌측 회랑터

▲  금당으로 오르는 3번째 계단
계단 앞에는 조그만 다리가 놓여져 있고, 좌우로 물이 흐르는 수로(水路)가
놓여져 있다.

▲  금당으로 오르는 3번째 계단 (좌측에서 바라본 모습)

▲  바로 옆에서 바라본 금당(金堂)터

▲  우측 윗부분에서 바라본 금당(金堂)터

▲  제일 위쪽 건물터에서 굽어본 금당터

선원사의 금당은 특이하게 '十'자를 좌우로 길게 부풀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좌우의 길이가 약
15~20m에 이르는 거대한 불전이었다. 마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씨 정권의 권위를 과시라
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허나 지금은 이렇게 잡초만이 가득하니 그들이 내세웠던 권위와 화려함
은 역시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인간의 창조물은 아무리 거대하고 수려해도 자연 앞에서는 일개
장난감에 불과할 뿐..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니 그래
서 사람은 절대로 신(神)이 될 수 없는 모양이다.

금당터 가운데에 두툼하게 솟아난 부분에는 부처를 모신 불단(佛壇)이 있었다.


▲  금당터에 놓인 동그란 주춧돌


▲  금당터 좌측 부분


▲  금당터 우측 부분

▲  금당터 우측 부분의 수로

▲  절터의 가장 위쪽으로 안내하는 4번째 계단

금당보다 더 높은 곳에 그보다 더 중요한 전각이 있었는데, 그 건물의 정체는 8만 대장경을 보
관했던 장경각(藏經閣)으로 여겨진다. 실례로 해인사(海印寺)의 경우에도 법당인 대적광전(大寂
光殿) 위에 8만대장경의 보금자리인 장경판고(藏經板庫)를 두었다.


▲  장경각터로 여겨지는 건물터

 ▲  잔잔한 잡초로 옛터를 따스하게 보듬은 장경각터 우측 부분
2007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여 주춧돌과 건물터를 정리하였다.

 

선원사터를 비롯한 선원사 경내를 천천히 둘러보고 연꽃축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매불망
그리던 그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얼마나 흥분이 되던지. 나의 두 다리도 그들이 빨리 보고 싶은
듯, 나의 통제를 무시하며 엄청난 속보(速步)로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간다.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의 일부가 되버린 선원사 우보살

절터 아래에는 특이하게도 소들의 공간인 외양간이 자리해 있다. 절에서 이렇게 외양간을 접한
적은 솔직히 처음이라 그저 낯설기만 한데, 그 안에는 우보살, 신우보살, 광양우보살이라 불리
는 우공(牛公)들이 기거하고 있었다.

이들이 우보살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과 이곳에 들어오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2003년 어느 날, 선원사 주지 성원은 꿈 속에서 목탁소리를 내는 소를 만났다. 몹시 의아해하면
서 시간을 보내던 중, 전남 곡성(谷城, 경남 고성이란 말도 있음)에서 목탁소리를 내는 소가 있
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소 주인과 협상하여 그 소를 사려고 했으나, 주인이 팔려고 하질 않는 것이다. 그래서 몹시 난처해하던 중, 그 옆집에서 목탁소리를 내는 송
아지를 밴 2살짜리 소를 발견하고 아는 승려에게 급히 1,000만원을 빌려 값을 치르고 선원사로
데려와 우보살이란 법명(法名)을 주었다. 그리고 2004년에는 목탁소리를 내는 소 2마리를 데리
고 와 각각 '신우보살','광양우보살'이란 이름을 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아무 때나 목탁소리를 낼까? 그건 아니다. 사람들이 반말을 하면 꿈쩍도 안하
다가 합장을 하며 존대말을 하면 혀를 입천장에 부딪쳐 목탁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또한 승려가
염불을 외우고 목탁을 치면 그 소리를 따라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어쩌면 불심(佛心)이 상당한
소 같기도 한데 그가 왜 난데없이 목탁소리를 내는지는 소가 이야기를 해주질 않아 그저 기이할
따름이다. 우보살을 2006년 이후 2번이나 친견했으나 그들의 특기인 목탁소리는 아직까지 듣지
도 못했다.

현재 외양간에는 우보살은 없다. 2010년 4월 공포의 구제역이 강화도를 유린하면서 강화도의 수
많은 소들이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강제로 죽임을 당했는데, 선원사 우보살 역시 살생
리스트에 오르면서 많은 이들이 그들을 살리고자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4월 12일 광양우보살을 제외한 우보살과 신우보살의 코가 마르면서 입가에 거품이 나는 구제역 증상이 나타났고, 결국
수의과학검역원에서 이들을 모두 죽이기로 결정하고 13일 외양간에서 끌어냈다.
그때 소들이 완강히 저항을 하여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 보다 못한 주지 성원이 슬픔을
억누르고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설득을 하니 그제서야 모든 것을 체념하듯 순순히 외양간을 나
섰다. 그리고 뒷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성원은
'부처보다 인기가 좋았고, 선원사에 가장 힘이 되는 우보살이었기에 가족을 잃은 마음이다. 동
물로 태어나 할 일을 다 했기에 다음 생애엔 꼭 사람으로 태어나길 기원한다'
애써 슬픔을 감추었으며, 죽은지 49일이 되는 5월 31일에 49재를 지내 그들의 혼을 위로했다.

시골에서 평범한 소로 지내던 그들이 목탁소리 하나로 졸지에 선원사의 명물이 되어 보살의 칭
호까지 받으며, 호사를 누리고 살다가 구제역으로 생을 마감했으나 소나 인간이나 인생은 한줌
의 흙처럼 부질없는 모양이다.


♠  어찌 꿈엔들 잊으리요 ~ 연꽃의 즐거운 향연(饗宴)
선원사 논두렁 연꽃


선원사 연꽃 논두렁은 원래 논으로 연꽃의 보금자리로 꾸미면서 연꽃 명승지로 크게 주목을 받
고 있다. 2003년부터 선원사 논두렁 연꽃축제가 시작되어 2009년에는 세계연꽃음식축제로 이름
을 갈았다. 연꽃의 그윽한 향기가 가득 피어오르는 이곳에서는 연을 소재로 한 음식(파전, 국수
, 냉면, 도토리묵, 팔빙수, 아이스크림)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과 왜국,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의 연음식까지 선보인다. 그 외에 도자기 체험과 말타기 체험,
다도 체험 등의 여러 체험코너와 공연단과 유명 트롯트 가수들의 축하공연, 레크레이션 등의 행
사가 축제기간 내내 계속 이어져 선원사와 조용하던 시골마을 지산리가 오랜만에 활기를 띈다.

놀라운 자정능력을 가진 연꽃은 중생을 구하고 세상을 아름다운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만들고자
하는 부처의 마음이자 그의 화신이다.
연꽃은 아침에 보는 것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 1박을
하지 않는 이상은 이른 아침에 여기까지 오기는 힘들다. 수많은 사람과 연꽃으로 복잡하게 뒤엉
킨 연꽃 축제장. 그럼 지금부터 연꽃축제의 주인공. 연꽃들의 즐거운 향연을 감상해보자.


▲  연꽃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들 - 촛불을 켜라, 연꽃이 되었구나

▲  연잎에 담겨진 백련

논두렁을 아름답게 수식했을 연꽃들이 하나,둘 고개를 떨구며 사라져 간다. 고개가 꺾여 잎이
흐트러진 어느 백련이 초라한 몰골로 주변 연잎에 마지막 보금자리를 꾸몄다. 화려함이 사라진
그들의 마지막 모습에 숨쉬며 사는 것에 대한 부질없음이 진하게 다가와 마음이 울적하다.


▲  논두렁에 두둥실 떠 있는 연꽃잎
한 마리의 개구리가 되어 연잎에 걸터 앉아 개굴개굴 노래를 부르고 싶다.


▲  무성하게 자란 논두렁 연꽃잎 ~ 연꽃의 거대한 밀림이다.



▲  끝없이 펼쳐진 연꽃 논두렁 (2장)

논두렁 사이로 베풀어진 흙길을 거니는 기분은 마치 늪지대 사이를 걷는 기분이랄까..? 선원사
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길이다. 단 길의 폭이 좁아 두 사람이 서로 지나갈 경우 자칫 논
두렁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기 바란다.


▲  승마체험을 즐기는 사람들
말을 타며 연꽃 논두렁을 거니는 기분은 어떨까? 이곳의 승마체험은
조그만 백련 논두렁 2바퀴 도는 것이 전부며 이용료가 거의 1만원이다.


▲  굳게 입을 다문 백련
인생의 최대 절정기를 누리고 이제 곧 갈 준비를 하는 홍련들.
자신들을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해 보인다.

▲  어서 꽃잎을 펼쳐보여야 될텐데,
그러나 몸은 그의 마음처럼 잘 따라주질 않는다.

▲  홍련의 연분홍물결

▲  연분홍 아름다운 홍련 ~ 인당수(印塘水)에 몸을 던진 심청이 환생하는 것일까?
보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  순백의 백련들

▲  다소 우울해 보이는 어느 백련
동지들도 하나, 둘 그렇게 지고, 자신도 곧 꽃잎을 접어야 되는 현실에
심기가 편치 않은 모양이다.

▲  백련과 그 너머로 보이는 먹거리 행사장

▲  어여쁜 자태를 뽐내는 홍련

▲  바람에 휘날리며 저물어가는 성하(盛夏)를 아쉬워하는 연꽃들


▲  논두렁 연꽃 곁에 영원히 머물고파 ~ 석불좌상(石佛坐像)

축제 공연장 서쪽, 논두렁 가운데에 떠 있는 동그란 섬에 6각형의 정자가 있는데 그 안에 조그
만 석불이 연화대(蓮花臺) 위로 결가부좌(結跏趺坐)로 앉아있다. 더운 여름날 답답한 법당에서
나와 이렇게 밖에 있으니 얼마나 시원할까.? 게다가 아름다운 연꽃들이 바로 곁에서 향기를 내
뿜으니 정말 극락이 따로 없다.


▲  8월부터 가을까지 연지를 주름잡는 수련(垂蓮)

연꽃 논두렁은 공연 세트장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북쪽은 백련과 홍
련의 보금자리, 그 남쪽은 수련의 보금자리이다. 수련은 보통 8월에 피어나 10월까지 서식하며,
오전 10 ~ 12시에 잎을 펼쳐보여 오후 4 ~ 6시에 잎을 오므리고 잠을 잔다. 그래서 수련(垂蓮)
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  고운 자태의 청자 찻잔이 떠 있는 듯한 수련
슬슬 고개를 떨구는 홍련과 백련과 달리 수련의 표정은 한없이 밝기만 하다.


▲  슬슬 전성기를 준비하는 수련

인생의 절정기로 향하는 수련들.. 자신들을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 오늘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해 보인다.  그러나 10월이 되면 저들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하나, 둘 쓸쓸히 지고 말겠지.. 다시 내년을 기약하면서..
이렇게 하여 선원사 연꽃여행은 대단원의 휘장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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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일 - 2011년 8월 1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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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11/08/15 17:31 | 수도권 사진/답사기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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