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속에 숨겨진 아름다운 별천지 ~ 북악산 백석동천

 

' 서울 도심 속에 숨겨진 비밀의 옛 정원. 북악산(北岳山) 백석동천 '
북악산 백석동천 연못
월암 바위글씨백석동천 바위글씨
겨울에 물든 백사골백석동천 사랑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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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snowlove78/13757078


♠  북악산에 숨겨진 비밀의 옛 정원을 찾아서

서울의 영원한 북현무(北玄武) 북악산의 북서쪽 자락에는 백사골(백사실)이란 조그만 계곡이
있다.그곳에는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기 꺼려하며 베일에 싸인 오래된 정원의 흔적이 숨어
있으니 바로 백석동천(白石洞天) 별서 유적이다.

그곳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05년 봄, 그 이전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 지금이야 북악
산 등산이 낮시간에 한해 부분적으로 자유로워졌지만 그 시절에는 청와대와 국무총리공관 등
국가의 예민한 시설을 가득 안은 북악산 출입은 상상 속의 이야기로나 들렸다.함부로 들어가
다 괜히 총 맞기 쉬운 그런 곳에 설마 백사골 같은 곳이 있겠느냐 의심을 품는 건 당연하다.
그러다가 비밀의 옛 정원이 교묘히 숨바꼭질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내심 놀라고 말았다
'북악산에 정말로 저런 곳에 있었단 말인가? 정말로 등잔 밑이 어둡긴 어둡구나.!!'

그래서 처음 찾은 것이 2005년 사월초파일 전날이다.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의 도가니에 깊숙히 빠져들고 말았다. '도심 속에 이런 별천지가?' 백사
골에 단단히 매료된 나는 여러 차례 발걸음을 하여 그곳의 여름과 가을, 늦가을의 모습을 사
진에 열심히 담고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백사골의 감동을 아낌없이 글로 남겼다.
그후로는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1~2번 정도 들어가 그곳의 감동을 온 몸에 싣고 나온다.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백사골의 모습이 아른거려 모니터가 백사골 연못으로 보일 정도이다.

2006년 이후,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글과 언론을 통하여 세상에 그 존재를 조금씩 드러내
면서 찾는 이도 조금씩 늘고 있다. 이제는 부암동 주민만의 명소가 아닌 서울의 명소로 슬슬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휴일에는 답사쟁이와 사진쟁이는 물론 나들이객들로 백사골의 인구밀
도가 늘어나며, 여름에는 도심 속 피서지로 두 발을 의지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파
도를 이룬다.

겨울의 제국(帝國)이 가을을 몰아내고 하늘 아래 세상을 접수한 11월 하순,백사골의 겨울 풍
경을 담고싶어 1년여 만에 다시금 백사골로 발을 들렸다. 수유리에서 서울시내버스 153번(우
이동◀신촌▶보라매공원)을 타고 세검정초교에서 내린다.

육교로 길 반대편으로 넘어가 세검정 방면으로 가다보면
'28 홍지천길'이란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길로 들어서 '혜문사(慧門寺)'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쭉 들어가면, 빌라 옆으로 계
단길이 있다. 그 계단을 오르면 혜문사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백사골 산길이 시작된다.
마치 속세를 벗어나 신선(神仙)의 세계로 들어온 듯, 아랫 세상과 공기부터가 확연히 틀리다.
청명한 산바람과 산내음에 머리와 마음은 말끔히 시원해진다. 부암동과 홍지동이 바라보이는
그 길을 계속 고집하면 현통사와 백사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  서울도심 속의 거의 유일한 자연폭포, 작지만 멋드러진 하얀 반석이
인상적인 ~ 백사폭포(白沙瀑布)

시퍼런 칼을 쥐어든 금강역사(金剛力士)에 오금을 저리게 하는 현통사 대문 아래로 때깔이 고운
하얀 반석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매끄러운 바위 면에는 북악산에서 발원한 백사골이 오랜 세
월 빚어놓은 대작품, 백사폭포가 시원스런 모습으로 신선을 꿈꾸며 찾아온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 폭포는 아직까지는 정식 이름이 없다. 백사폭포란 이름은 백사골의 이름을 따서 내가 지어준
것으로 공식 이름으로 삼아도 손색은 없을 것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백사골의 시냇물은 큰 세
상을 꿈꾸며 졸졸졸~♪ 폭포를 타고 내려와 폭
포 아래에 마련된 담(潭)에서 기나긴 여정을 준
비한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고향, 북악산
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내며 그렇게 길을 재촉한
그들은 홍제천을 따라 한강으로, 다시 서해바다
로 끝없는 여행을 떠난다.
높이가 3m정도 되는 조그만 폭포에는 물을 타고
흘러온 누런 낙엽들로 가득하다. 나무에게 버림
받은 낙엽들은 못에 모여 인생의 마지막 물놀이
를 즐기며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을 원망하는 모
습은 인생무상이 허언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한숨 자고 싶은 하얀 피부의 넓다란 반석, 그리
고 깨끗한 폭포수, 여름에 왔더라면 그들의 강
렬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서울 도심의 거의 유일한 자연폭포로 비록 웅장
하고 수려한 맛은 떨어지지만 도심 속에 소중한
보석과 같은 곳으로 더울 때는 동네 아이들의
물놀이 현장이 되어주는 이색 공간이다.


▲  가을을 속세로 흘려보내는 백사폭포의 아랫 못


백사폭포를 거친 계류는 다리 아래에 조그만 폭포를 통해 아랫 못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다시금
바위를 타고 본격적인 세상나들이를 시작한다. 주변 나무들은 못을 거울로 삼으며 겨울로 초췌
해진 자신의 몰골을 바라보며 우수에 잠겨있다. 잔잔한 수면에는 낙엽들이 둥실둥실 떠 늦가을
의 저물어감을 아쉬워한다. 백사골에 머문 가을은 계곡을 타고 아래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  백사골에 포근히 들어앉은 조그만 절, 현통사(玄通寺)

백사폭포를 굽어보는 현통사는 근래에 지어진 조그만 산사(山寺)이다. 정확한 내력(來歷)은 모
르겠으며, 법당인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산신각(山神閣), 칠성각, 범종각 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기와를 얹힌 불전 아래로는 승려와 신도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슬레이트 지붕집이
한덩어리로 몰려있다.


♠  청정지대 백사골(백석동천)의 속살로 들어서며

▲▼  겨울에 잠긴 백사골
그저 평범해 보이는 저 산길의 끝에는 비밀의 옛 정원, 백석동천이 숨어 있다.
바람의 소리만이 감도는 겨울에 잠긴 계곡은 찾는 이로 하여금 시상(詩想)에 젖게 한다.


오랜만에 백사골을 본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 잡아가며 백사폭포를 지나면 청정내음
으로 가득한 백사골 숲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면 한폭의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처럼 아름답게
다가오는 풍경에 가히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든 백사골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단어로 억지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백사골과 그것을 빚은 대자연에 대한 모독일 수
있을 것이다. 숲에 깃들여진 청명한 기운은 나그네의 속세의 때를 말끔히 씻겨 내리기에 충분하
며, 정갈하게 깔린 산길은 두 발을 즐겁게 한다. 

거의 1급수를 자랑하는 백사골에는 서울에서는 보기조차 힘든 도롱뇽, 가재, 개구리, 맹꽁이 식
구들이 마음껏 뛰어논다. 인간의 마구잡이 개발로 그들이 설 땅은 점점 사라져 가고 이곳은 이
제 그들의 마지막 낙원이 되었다. 만약 그들이 이 땅에서 사라진다면 그 다음은 바로 인간의 차
례가 될 것이다.

겨울에 잠긴 계곡에 벌러덩 누운 바위에는 유
일하게 푸르름을 자랑하는 생물체가 있다. 바
로 지의류(地衣類)에 속하는 이끼이다. 그들이
가득 자라고 있다는 것은 이곳이 그만큼 깨끗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서 저런 무성한 이끼를 만나는 것은 힘들지,
이처럼 백사골은 도심 속에 숨겨진 신선의 세
계처럼 청정함과 순수함을 여실히 간직하고 있
다.

뼈대만 앙상히 남은 가지를 하늘로 높이 쳐올
리며 애타게 봄을 열망하는 나무들 사이로 낙
엽으로 살포시 뒤덮힌 계곡은 수량이 적어 졸
졸졸 노랫 소리도 듣기 힘들다.


▲  언제나 달을 그리는 바위, 월암(月巖) 바위글씨

백석동천 유적을 코 앞에 두고 오른쪽 산자락을 바라보면 언덕 정상으로 커다란 바위가 어렴풋
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바위에 바로 달의 바위, 월암이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교
묘하게 숨어 숨바꼭질을 즐긴다.

바위 한가운데에 높이 110cm, 가로 155cm 크기의 네모난 홈을 만들어 그 안에 월암(月巖)을 새
겼다. 이 바위글씨는 18세기에 백사골의 존재를 기록으로 남긴 바 있는 월암 이광여(月巖 李匡
呂)의 글씨로 추정되나 확실치는 않다.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은 글씨의 힘찬 모습, 가
히 명필 중에 명필이라 하겠다.

백사골은 나무가 울창하여 속 시원히 달님을 구경할 수 없다. 술 한잔 걸치러 이곳에 온 선비들
은 달놀이도 즐길겸 여기까지 올라와 하늘에 걸린 달을 구경했을 것이다. 굳이 이광여가 자신의
호를 새기지 않더라도 달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달놀이 기념으로 글씨를 새겼을 가능성도 충분하
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어두운 밤에 곡차 1병 들고 찾아와 달놀이를 즐기고 싶다.


 ♠  북악산에 숨겨진 옛 별서유적, 북악산 백석동천(白石洞天) -
명승 36호

서울도성의 북서문에 해당되는 자하문(紫霞門)을 지나서면 여기가 서울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
로 기가 막힌 수려한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자하문 너머 동네인 부암동(付岩洞), 홍지동 지
역은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 자락에 안긴 분지(盆地)로 지금은 비록 도시화가 어느 정도 되었
지만 그래도 산림 등의 녹지 비율이 서울에선 매우 높은 편이며, 백사골 등의 깨끗한 계곡이 살
아 숨쉰다.

예로부터 서울 부근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던 이들 지역은 양반사대부와 조선 왕족들의 별서(別
墅, 별장) 및 피서지로 인기가 높았다. 세종의 3자(子)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별장, 무계정사
(武溪精舍)―지금은 '武溪洞'이라 쓰인 각자만 남아 있다―가 인왕산 자락에 있었고, 흥선대원
군의 별장인 석파정(石坡亭), 휴식과 유흥의 장소로 만들어진 세검정(洗劍亭), 연산군(燕山君)
이 사냥과 여가의 장소로 만들었다는 탕춘대(蕩春臺, 지금의 홍지문), 그리고 이곳 백석동천까
지 옛 사람들의 별장, 풍류 유적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백석동천은 북악산 북서쪽의 백사골(백사실) 계곡 그늘진 곳에 묻혀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
한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별장이 있었다고 하여 백사골, 백사실이라 불리며 백사골과 별
서유적 일대를 통틀어 백석동천이라 부른다. 그 이름은 하얀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다워 붙여진
것이다. <동천(洞天)은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붙이는 명예로운 이름이다>

이곳은 19세기 초반(1830년경)에 지어진 600평 규모의 양반 별서이다.
누가 만들고 별서의 이
름이 무엇인지는 전해오는 것이 없다. 이곳에는 별서 주인이 머물던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으며,
정자와 동그란 연못이 있었다. 안채는 4량(樑)집이고, 사랑채는 'ㄱ' 모양의 5량집으로 누마루
가 높았다. 안채는 1917년에 집 한쪽이 기울어져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970년경까지 남아있
었으나 사랑채와 함께 무너져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집 앞에 있는 연못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데, 6.25때 정자가 파괴되고 연못의 기능도 상실되고 말았다. 현재는 사랑채터와 정자
터, 연못, 담장의 일부 흔적, 바위글씨 2개만이 남아 백석동천의 옛 정취를 아련히 전해줄 따름
이다. 이 정도의 별장을 짓고 소유할 정도라면 상당한 재력을 지닌 양반이 분명하다.

백사골과 관련된 옛 기록으로 18세기에 활약했던 월암 이광여(月巖 李匡呂, 1720~1783)의 이참
봉집(李參奉集)이 있다. 그 책에는 '세검정과 탕춘대 계류 고간(高澗) 세폭(細瀑) 위에 동천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에 허씨의 모정(茅亭)이 있었으며, 모정의 이름은 간정료(看鼎寮)였다'
내용이 있어 지금의 별서 이전부터 별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나를 몹시나 흥분시키고 감동의 도가니로 내던진 백석동천은 2005년까지만 해도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그야말로 숨겨진 명소였다. 지방문화재로도 지정되지 못한 신세로 부암동 사람들만 몰래
아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전용 피서지였다. 허나 아무리 숨어 있어도 휼륭한 재주나 좋은 명소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송곳처럼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내기 마련이다. 2005년에 이르러 문화재청
에서 이곳이 조선시대 별서의 구성 요소를 두루 갖추고 주변 자연환경과 잘 조화를 이룬 우리나
라 전통의 휼륭한 정원임을 인정하면서부터 조금씩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었다.

2005년 3월에는 비지정문화재의 서러움에서 벗어나 바로 사적 462호로 특진되었으며, 2008년 1
월에 명승 36호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2008년까지 제대로 된 안내문이나 변변한
이정표조차도 없었으며, 겨우 2009년에 문화재 안내문과 이정표(하림각 맞은편)를 설치했다. 게
다가 주춧돌에 흉물같은 낙서가 눈에 띄며, 이곳에 놀러 온 이들이 버린 쓰레기들이 심심치 않
게 눈에 띄면서 이곳의 건강도 적지않게 위협을 받고 있다. 문제는 행정기관의 관리소홀과 직무
유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서울 도심 속에 박힌 보석이자 무릉도원 같은 이곳은 여름과 가을에 오면 딱 제격이다. 특히 피
서지로 그만이다. 숲이 제법 무성하여 강렬한 햇빛도 고개를 숙일 정도로 시원하며 나무가 베풀
어준 신선한 공기를 디저트로 삼으며 백사골의 깨끗한 계곡물과 졸졸졸 음악소리를 감상하면서
독서를 하거나 낮잠을 청해보는 것도 괜찮다. 거기에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버린 별서유적을 둘
러보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 신선처럼 살고자 했던 그들(주로 지배층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면
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을까? 상상해보며 그들을 배우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도 의미
가 있을 것이다. 다만 2006년 이후 속인들의 발길이 조금씩 늘면서 이곳의 청정함에 다소 해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이곳은 대중적인 명소보다는 소수의 사람만이 찾는
그런 비밀의 명소로 남았으면 좋겠다.

※ 북악산 백석동천 찾아가기 (2009년 12월 기준)
* 백석동천으로 들어가는 산길은 하림각, 세검정초교(현통사), 자하문 등 모두 3개가 있으며 주
  로 하림각과 세검정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자하문은 이들보다 많이 걸어가야 되는데 북악산
  등반을 겯드리는 경우 이용하면 편리하다. 백사골을 알리는 안내문이나 이정표가 변변치 못해
  초행이거나 길눈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동네 사람들에게 문의하거나 이정표가 있는 하림각 코
  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 각 코스별 접근 방법 (자하문 제외)
1. 하림각 코스 - 하림각 건너편에 신도수퍼가 있는데 그쪽에 44번 백석동길 골목이 있다. (백
   석동천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음) 그 길은 경사가 다소 가파른데, 10분 정도를 낑낑대고 오르
   면 그 길의 끝에 백사골로 들어가는 산길이 나온다.
▶ 교통편 : 3호선 경복궁역(3번 출구)에서 0212, 1020, 1711, 7016, 7018, 7022번 시내버스를
   타고 하림각 하차
2. 세검정초교 코스 : 세검정초교 정류장 → '44번 홍지천길'로 쭈욱 올라간다 → 혜문사 입구
   → 현통사 → 백사골(백석동천)
▶ 교통편
① 3호선 경복궁역(3번 출구)에서 0212, 1020, 1711, 7022번 시내버스를 타고 세검정초교 하차
② 2호선 신촌역(1,3번 출구)에서 110번, 153번 버스를 타고 세검정초교 하차
③ 3호선 녹번역(4번 출구)에서 7730번 버스를 타고 세검정초교 하차
* 승용차로 백사골까지 접근도 힘들고 주차 장소도 마땅치 않다. 대중교통 이용이 최선이다.

★ 백석동천 관람정보
* 백사골은 서울시에서 지정한 도롱뇽보호구역
  이다. 조용히 살고 있는 그들을 위해 함부로
  냇물을 뒤집는 행동은 하지 말 것
* 계곡에는 마땅한 먹거리를 파는 곳과 약수터
  가 없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115일대


♠  별서 주인의 정취가 담긴 ~ 백석동천 사랑채 터

▲  사랑채 터(높은 기둥이 있는 곳은 사랑채, 낮은 기둥은 안채로 여겨짐)


월암을 보고 다시 내려와 계곡을 건너면 사랑채로 오르는 돌계단이 나온다. 세월의 태클로 다소
헝클어져 보이지만 계단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면 주춧돌만 앙상한
사랑채터가 나오는데, 연못과 정자가 잘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ㄱ'자형 구조의 사랑채를 만
들었다. 이곳은 별서 주인이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손님을 맞이해 곡차 1잔 즐기던 생활공
간으로 아쉽게도 1970년경에 허물어졌다.

사랑채의 서쪽 부분은 주춧돌의 높이가 동쪽 부분보다 3배 정도 높다. 별서 주인은 언제나 연못
을 바라보며 여기서 지냈을 것이다. 동쪽 부분은 키 작은 주춧돌 6개와 기단이 남아있는데, 안
채로 여겨진다. 사랑채 뒤쪽으로는 엉뚱하게 동네 사람들의 배드민턴장이 들어서 유적의 건강을
위협하며, 어느 몰지각한 자가 주춧돌에 흉물스럽게 낙서의 만행을 저질러 두 눈을 다소 찌푸리
게 만든다. (2007년까지는 낙서가 없었음)


▲  사랑채로 오르는 계단


▲  사랑채의 흔적


▲  연못에서 사랑채로 오르는 계단

비록 기와를 입힌 사랑채는 오래 전에 썩어 없
어졌지만 남아있는 주춧돌은 사랑채의 기품과
분위기를 흐릿하게 전해주고 있다. 딱딱한 주춧
돌에 걸터앉아 문을 열고 연못에 비친 달을 바
라보며 곡차 1잔과 시상에 잠겼을 별서의 주인
머리 속에 그려본다.


♠  물 대신 낙엽으로 가득한 연못과 6각형 정자터(육모정)

사랑채에서 바라보이는 연못은 물고기가 수영하고 연꽃이 두둥실 떠있는 물 대신 나무에게 버림
받은 낙엽들로 연못을 이룬다. 그야말로 낙엽들의 마지막 보금자리인 셈이다. 봄과 여름에는 푸
른 잡초와 들꽃들의 조그만 나라가 된다. 옛날에는 백사골의 물을 끌여들여 보름달처럼 둥그런
연못을 채웠다. 보름달이 그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을 것이요. 별서 주인은 작은 배
를 띄워 뱃놀이과 달놀이를 즐겼을지도 모른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그 현장, 허나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든 6.25전쟁은 조용하던 이곳까지 총탄을 선사하여 정자가 파괴되고 연못은 그 기
능을 잃고 말았다. 땅을 파고 연못 주변에 두른 석축과 6각형정자(육모정)가 이곳이 예전 연못
임을 알려줄 뿐이다. 하지만 여름과 가을 비가 많이 쏟아질 때는 겉으로는 죽어있던 연못은 자
연의 위대한 힘에 의해 예전에 가까운 모습으로 잠시나마 되살아나기도 한다. 위에 사진 정도면
조그만 조각배 하나 띄워놓고 가볍게 뱃놀이를 즐겨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만약 개미였다면
나뭇잎을 하나 장만하여 뱃놀이를 즐기고 싶다.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듯, 처량함과 공허함이 가득한 연못, 허나 저 연못에도 자연의 생명력이
싹트고 있고, 또한 자라나고 있다. 게다가 빗물이 모이면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연못티를 풍겨
대며, 잡초로 가득한 연못의 모습도 나름대로 초록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아직까지 자신의 건
재함을 과시한다.

연못의 둘레는 대략 100m 정도로 주변은 나무가 울창하여 한여름에도 뜨거운 햇빛이 닿기가 힘
들다. 서울 도심 속에 숨겨진 신선의 세계, 예전에 이곳에서 받은 감동이 슬슬 되살아나기 시작
한다. 이곳을 서울 도심 속의 보석으로 칭한 이유는 흔히 울창한 빌딩숲과 수천만의 사람들, 4
발 수레가 내뿜는 매연, 그런 것들만 잔뜩 연상되는 서울 도심 속에 마치 그런 것을 비웃듯 버
젓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거의 오염되지 않은 계곡과 창덕궁의 후원도 질투할 정도로 울창한 삼
림은 이곳을 찾은 속세인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하다. 만약 이곳이 서울이 아닌 지방의 어느 시골
에 있었다면, 그 감동은 그리 크지 못했을 것이다.

연못 우측으로는 높이가 대략 20m에 이르는 물푸레나무가 연못에 그늘을 드리운다. 수령(樹齡)
은 약 150~2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  물푸레나무 밑에 벌러덩 누운 바위
별서를 만들 때 주변에서 가져온 바위를 따로
손질을 가하지 않고 나무 밑에 그냥 두었다.
자연물에 인공을 가하지 않고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살려 정원을 꾸민 옛 사람들의 조
경(造景) 기법이 잘 드러낸 예라 하겠다.
이 바위는 어쩌면 별서 노비들이 신세 한탄을
하며 주인 몰래 연못에 돌을 던지던 자리가 아
닐까 싶다. 그들은 주인처럼 사랑채나 정자에
서는 놀지 못하니 이곳에 앉아 애꿎은 연못에
돌을 던지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것이다.


▲  주춧돌과 돌계단만 덩그러니 남은 6각형 정자터(육모정)

연못에 발을 담구며 아무런 내색도 없이 정자를 떠받치던 6개의 돌기둥들, 그러나 지금은 저렇
게 허전한 대머리가 되어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마음으로 그 허전함을 달래주고 싶구나.
 
별서 주인은 돌계단에 신발을 벗어놓고 정자에서 혼자 혹은 벗들과 시를 읊거나 세상사를 이야
기하며 차나 술을 마셨을 것이다. 또한 정자 난간에 팔을 기대며 연못을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물고기와 연꽃을 바라보았겠지. 그가 풍류를 좀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기생(妓生)들을 불러
정자 안에서 얼씨구~ 춤과 노래, 시를 즐겼을 것이고, 아~ 생각만 해도 정말 부러울 뿐..


▲  정면에서 바라본 6각형 정자터


♠  백사골 상류 (백석동천 바위글씨)

 
새하얀 바위들이 계곡 주변에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  겨울의 정령이 깃들인 백사골(백석동천)의 호젓한 숲길
 동화 속에 나오는 숲길도 저 곳만은 못하리라.. 쓸쓸한 분위기가 감도는 숲길을 거닐며
겨울의 시련을 견디는 나무들과 잠시나마 말벗이 되어 본다.


연못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면 넓은 반석이 나온다. 아직까지 옛날의 운치와 청정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백사골은 계류가 맑아서 도룡뇽을 비롯한 여러 수중동물들이 살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창덕궁 후원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맑은 계곡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삼청공원과 이곳 밖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수질은 예전만은 못할 것이지만.. 바위 곳곳으로 이곳이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 임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푸른 색의 이끼들이 무성히 자라난다.

한여름에는 동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물놀이 현장과 수중생물의 탄압현장(?), 시민들의 조촐한
피서지가 되는 곳으로 옛 사람들은 반석에 걸터앉아 곡차 한잔 걸치며, 시를 읊거나 발을 담구
며 신선놀음을 즐겼을 것이다. 반석에 돗자리 하나 깔고 낮잠 한숨 자면 아주 그만인데 그냥 지
나치기에는 정말로 마음이 시린 풍경이다.


 ▲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졸졸졸~♬ 노래를 부르며 흘러간다.

▲  백석동천 바위글씨 ▼


계곡을 버리고 신선이 나올 것 같은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면 '白石洞天'이라 쓰인 커다한 바위
를 만나게 된다. 동천(洞天)은 신선들이 놀러와 머물다 갈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산천에 붙여지
는 이름으로 아무 산천에나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다. 이곳이 백석동천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것
은 하얀 피부의 바위와 계곡 암반들이 널려져 있기 때문이다.

흰 바위에 새겨진 '白石洞天' 4자의 바위글씨는 정말로 기가 막힌 명필(名筆)임이 틀림없다. 자
연의 일부로 살아가고자 했던 옛 사람들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을 찾아와 그 기념으로 꼭 저렇
게 낙서를 남겨 놓았는데, 백사골 역시 그들의 낙서가 2개나 있으니 그만큼 이곳의 풍경이 그들
을 몹시나 감동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백석동천 바위글씨를 지나 오른쪽 숲길로 2분 가량 가면 속인들의 집이 나온다. 이곳은 백사골
로 들어서는 하림각 코스로 이 코스는 하림각 버스정류장부터 주택가 끝까지 길의 경사가 매우
급하다. 10분 가량 열심히 길을 오르면 백사골로 들어가는 내리막 숲길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바로 하림각으로 내려가도 되고, 산 허리에 둘러진 길을 따라 자하문(紫霞門)으로 가
도 된다. 자하문까지는 넉넉잡아 20분 정도 걸리는데 길 중간에 조망이 좋은 까페가 하나 있으
며, 북악하늘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북악산 등산로가 있다. 그리고 자하문 부근에는 자하손만두
등의 맛집과 찻집 몇곳이 나그네를 유혹한다.


▲  백석동천으로 인도하는 또 다른 입구 (부암동 하림각 코스)

◀  백사골을 품은 북악산 (사적 및 명승 10호)
산을 따라 길게 이어진 것은 옛 서울도성(사적
10호)이다. 하얀 바위가 많아 백악산(白岳山)
으로도 불리는 북악산은 서울을 지키는 영원한
주산(主山)이자 북현무(北玄武)이다. 조선시대
에는 경복궁(景福宮)이, 지금은 청와대(靑瓦臺)
와 국무총리공간이 둥지를 튼 우리나라 정치,
행정의 1번지로 예나 지금이나 일반 백성들은
감히 들어갈 수도 없는 금표(禁標)지역이다.
산자락에는 대은암계곡 바위글씨 등 많은 문화
유산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지만 태반이 출입금
지 지역이라 아쉬움이 상당하다.
북악산은 2006년 이후 개방되어 낮시간에 한해
지정된 코스(자하문~촛대바위~성북동)로만 등
산이 가능하다. 물론 출입금지 구역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며 나라의 예민한 곳인만큼 제약
도 상당하다.
산 위로 하늘을 가른 3줄기의 구름이 북악산의
상공을 멋드러지게 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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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09년 12월 3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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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사골선비 | 2009/12/07 21:01 | 서울 부암동 스폐셜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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